2017년 10월 19일 목요일

종교개혁 서설

1517년에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은 인간적인 각성의 결과물이 아니었다. 소수의 영웅들이 주도한 일도 아니었다. 계산된 교감이나 합의도 없이 곳곳에 흩어진 다수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교황의 권력화와 교회의 세속화와 진리의 인간화와 예배의 형식화가 편만한 중세의 황폐한 광야에서 도무지 기대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러므로 개혁은 오직 성경으로 말미암아(sola scriptura) 위로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자비로운 은혜임에 분명했다.

주님은 종교개혁 이전부터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계승한 소수의 경건한 인물들(존 위클리프, 사보나롤라, 로란조 벨라, 얀 후스,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등)을 감동시켜 개혁의 불씨를 준비했다. 그 불씨가 거대한 불로 번지도록 개혁의 바통을 이어받은 주자들이 바로 루터, 쯔빙글리, 칼빈과 같은 분들(필립 멜란히톤, 하인리히 불링거, 윌리엄 파렐, 마틴 부쩌, 윌리엄 틴데일 등)이다.

그러나 개혁의 은혜는 입만 벌리고 있으면 입 속으로 떨어지는 감이 아니었다. 앞장 선 자에게는 사회적인 고립과 정치적인 위협과 경제적인 궁핍과 종교적인 배척과 심지어는 순교의 피까지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숙했던 신앙과 문화와 공동체와 지식과의 단절이 주는 아픔은 실로 막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교리의 독소를 뽑아내고 성경에 근거한 진리의 순전한 액상을 수혈하는 일에 전념했다.

중세의 인간화된 교리에서 나오는 거짓과 왜곡의 촉수는 당시 각 사람의 전인격에 뻗어 있었고 삶의 전 영역을 위협하고 파괴했다. 필요하고 긴급한 개혁은 예배당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의식적인 갱신과 왜곡된 교리의 이론적인 수정만이 아니었다. 각 사람의 의식도 개혁해야 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정과 일터의 개혁도 동시에 필요했다.

그래서 종교개혁 정신을 교회와 학교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전인격과 삶 전체에 배양하고 그 정신의 체계화와 제도화와 교육화와 보편화를 도모할 하나님의 일꾼들(존 녹스, 엔드류 멜빌, 리처드 백스터, 토마스 카트라이트,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 프란시스쿠스 고마루스, 자카라이아스 우르시누스, 아만두스 폴라누스, 윌리엄 트위스, 윌리엄 윌버포스 등)이 필요했다. 종교개혁 정신은 잠시 번뜩이다 소멸되는 순간의 불꽃이 아니었다. 긴 호흡으로 오랫동안 달려야 하는 장거리 경주였다. 그래서 Semper reformanda!

여기에 언급된 인물들이 그림에 다 등장한다. 이름 맞춰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