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5일 일요일

베풂, 부자의 처신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약5:1). 부자가 여전히 부자인 것은 그들에게 맡겨진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히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다. 우리에게 있는 것들 중에 주어지지 않은 것들이 하나도 없다면, 이는 주신 자의 의도가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것들에 연동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부는 소유에서 만족과 희락을 누리도록 주어지지 않았고, 사용에서 가치와 의미를 산출하여 주신 분의 뜻이 실현되고 기념되게 하는 방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다산 정약용의 경제관는 베풂이 부를 관리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진실로 베풂은 동일한 액수로 최고의 가치를 구현하되 어떠한 부작용도 없고 안전한 방법이다. 이 방법에 무관심한 부자들의 종국은 고생과 통곡이다. 여기서 부는 돈이든 지식이든 건강이든 젊음이든 가문이든 환경이든 기회이든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을 포괄한다. 울고 통곡하는 일이 없도록 실컷 나누어야 한다. 귀담아 들어야 할 야고보의 교훈이다.

정약용: "무릇 재물을 비밀스레 간직하는 것으로 베풂만한 것이 없다. 도둑이 뺏어갈까 염려하지도 않고, 불에 타 없어질까 걱정하지도 않는다. 소나 말에 실어 운반하는 수고로움도 없다. 그런데도 내가 능히 죽은 뒤에까지 지니고 가서 아름다운 이름이 천년토록 전해진다. 천하에 이 같은 큰 이익이 있겠느냐? 단단히 잡으려 들면 들수록 미끄럽게 빠져나가니, 재물이란 미꾸라지다."

2016년 6월 4일 토요일

만족의 근거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시17:15).

하나님의 형상을 만족의 근거로 삼은 시인의 마음이 아름답다. 그런 체질의 소유가 경건의 능력이다. 인간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이다. 그런데 천하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근거 찾기에 급급하다. 혹 찾았다 하더라도 그 근거의 희열은 찰나이다. 금새 불만족이 고개를 내민다. 그러면 보다 자극적인 만족의 근거에 헐떡인다. 혹 찾았다 하더라도 짧은 희열을 지나 불만족이 반복된다. 결국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찾지 않으며 금으로 좋아하는 자는 금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전도자의 교훈만 입증하게 된다. 만족의 근거는 인간보다 못한 것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근거는 유일하게 인간의 존재보다 크고 높으신 하나님의 형상이다. 누워 자고 깰 때마다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는 사람이고 싶다.

2016년 6월 3일 금요일

내 걸음의 주인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6). 형제를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과 이어지는 구절이다. 내일 무엇을 할 것이다, 내년에는 여기에 머물 것이다 등의 표현을 야고보는 자랑으로 규정하고 그것의 악함을 지적한다. 형제도 판단하지 못하지만 나 자신의 삶도 내가 규정하지 못한다. 주께서 뜻하시면 우리는 살고 머물며 무언가를 한다. 우리는 종이고 하나님은 주인이다. 주인의 계획과 뜻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내 행보의 주관자가 아니라 순응자다. 주님만이 내 걸음의 주인이다. 

2016년 6월 1일 수요일

정약용의 금언

"사나이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한 마리 가을매가
하늘을 박차고 오르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눈은 건곤을 작게 보고,
손바닥은 우주를 가볍게 보아야만 한다."

이득이 없는 자리로~!

"이익을 탐하는 모든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1:19). 존경하는 한 목사님은 갈등의 기로에서 늘 이익이 없는 자리에 서 있으면 뒷탈이 없다고 하시더라. 지혜로운 교훈이다. 이익에 무심한 역방향 행보를 취하는 목회자의 모습, 부지런히 연습하자. 지혜자의 말처럼, 이익을 탐하는 것 자체가 생명의 위협이다. 이익이 없어서 아무도 흠모하지 않는 그런 자리가 어디일까? 그곳으로 가자고 의식과 성향과 습관과 시선과 기호를 설득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