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31일 목요일

무신론자 친구를 도우려면

어떤 자매님이 신실하던 친구가 무신론에 빠져 슬퍼하며 어떻게 도울지를 물었다. 그에 대한 짧은 답변이다.

저도 저를 처음으로 교회에 데리고 간 친구가 있는데, 정작 자신은 여호와의 증인으로 간 친구가 있습니다. 자매님의 슬픔이 얼마나 휘청거릴 정도의 무게를 가졌을지 대충은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참으로 교회도 잘 알고 하늘의 은사까지 맛본 분들이 떠나간 이후에 돌아오는 것은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는 히브리서 기록자의 말처럼 얼마나 희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무신론의 경우, 제가 친구분의 정확한 사정은 모르지만 바울이 언급한 것처럼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좇다가 믿음에서 벗어낫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당연히 우리의 처방은 결코 지식적 변론일 수 없습니다. 자매님도 잘 아시듯이 사랑은 지식보다 강합니다. 진실한 사랑의 변론이 거짓된 지식을 꺾습니다. (물론 사랑이 무지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그 친구분을 위해 기도하며 사랑해 주시는 게 최선일 듯합니다. 

생명과 구원은 분명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정하신 뜻을 이루시는 방식으로 늘 수단을 쓰십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 말입니다. 우리는 친구분의 결국을 모르지만 사랑으로 주님의 제자됨을 끊임없이 보여 주어야 할 책임은 분명히 우리에게 있습니다. 담당 목사님과 대화하며 도움을 구하며 지치지 마시고 지속적인 사랑을 수혈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피흘리신 심정을 가지고요.

혹 도움이 되실지 모르지만, 무신론의 입장과 어법과 공격이 궁금하면 그리고 친구분의 생각까지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돕기를 원한다면 다음 [한국 무신론자 모임] 사이트가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절대 거기에 빠지지는 마시구요...^^;) 자매님, 오래 걸릴지도 모릅니다. 돌아오는 순간까지 어쩌면 죽는 그날까지 친구분을 향한 그 사랑을 접지 마시기를 권면하고 싶습니다. 

한국 무신론자 모임

베일리의 바울

이집트 선교사의 아들로 그리고 선교사로 중동에서 40년이 넘도록 성경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연구한 석학이다. 이번에 Worship Symposium 주강사로 칼빈에 와서는, 이미 381년부터 신학적 해게모니 아랫묵을 차지하게 된 서구적 방식의 신학에 동방적인 접근법과 중동적인 배경이 접목된 '통합적인 신학'을 역설했다. 성경 자체가 신학의 오리지날 방식이며 당연히 신학적 교리에 대한 이야기의 우선성을 존중해야 한단다.

이번 심포지엄 기간동안 난 그분의 강의만 다 들었다.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고, 특별히 시대성과 문화성에 대한 강조가 필요는 하겠으나 지나치면 오히려 신학의 범시대적 보편성과 범문화적 포괄성의 희생을 자초할 수 있다는 경계심도 가졌으며, 동시에 신선한 접근법과 색다른 시각과의 만남은 그분에게 집중한 시간들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하여 그분의 주저라고 할 Jesus Through Mediterranean Eyes와 Paul Through Mediterranean Eyes를 질렀다. 저렴한 가격에...

Kenneth Baillie, Paul Through Mediterranean Eyes (IVP, 2011)

2013년 1월 30일 수요일

작은 영웅들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32:32)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확고히 정하신 뜻의 불변성이 아니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신적인 뜻의 유연한 가변성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겠다. 생명책에 이름을 기입하고 지우는 것은 우리의 행동거지 정도에 달렸다는 추정을 지나 구원의 여부가 우리 개개인이 자기하기 나름이란 '합리적 궤변'으로 직행하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니겠다. 이는 사실 우리의 성정에 어떠한 갈등이나 주저함도 없이 쫘악 달라붙는 친숙한 사유의 흐름이다. 오히려 이에 대한 반론과 저항이 우리에겐 낯설고 거북할지 모르겠다.

다윗과 바울도 모세와 유사하게 '생명책 삭제' 멘트를 내뱉었다. 마치 영생의 여부가 나의 결정에 달렸다는 인상을 솔솔 풍기듯이 말이다. 이와 유사한 구절들을 바글바글 긁어모아 성도의 이름은 철필이 아니라 연필로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심기가 틀어지면 얼마든지 삭제될 수 있으니까 까불지 말라는 가당치도 않은 협박용 카드로 악용하는 사례도 종종 발견된다. 목회를 성공으로 이끌고 성도들의 주머니를 털어 짭짤한 소득만 올릴 수 있다면 소설도 가히 흉내낼 수 없는 면죄부 발부와 매매도 '적법한 제도'로 둔갑하는 일들이 교회사의 갈피마다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나는 본문을 읽으면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하신 계명이 떠올랐다. 전적인 은택으로 택함을 받아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하게 된 최고의 복마저도 수단으로 삼을 정도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모세, 하나님의 백성이 광야에서 암울한 최후를 맞이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는 치명적인 흠이 생길지도 모를 가능성과 맞서서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라고 할 영생마저 소모적인 방편으로 과감히 내던지는 모세의 결연한 사랑과 희생이 보여서다. 이렇게 모세는 '처럼'이란 몸의 수단성을 넘어 영생조차 수단으로 여길 정도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랑했던 거다.

이는 모세와는 비교할 수 없도록 고귀하신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우고 종의 형체를 입으신 예수님이 자기 백성을 죄에서 건지시는 구원의 수단으로 생명까지 내어주신 사랑의 전혀 손색이 없는 구약적 모델이다. 이런 지도자가 목마르다. 그러나 어떤 대리만족 차원의 출중한 영웅을 기다리는 것보다 우리 각자가 작은 영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성경의 요청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삽비라와 아나니아 정도의 헌신 앞에서도 실천의 손이 떨리는데 어찌 모세의 모델을 감히 넘볼 수 있느냐는 반론이 각자의 목젖에 매달려 출고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히 기록하여 알도록 의도한 모델이고 이로써 그런 수위의 섬김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면 우리의 육신적 형편을 기준으로 가부를 결정하지 않고 거기까지 이르도록 용기와 지혜의 은총을 배푸시는 주님께 구하는 태도가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은혜로 말미암아 모세의 섬김은 과히 감동의 언덕을 지나 예술의 고매한 경지까지 등극했다. 세상의 기본적인 지탄만 모면해도 좋겠다는 척박한 기독교의 현실에 관념의 헛스윙질 같은 소리일 수 있겠으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실 한 오라기의 희망마저 묵살할 필요까진 없겠다. 꺼져가는 불도 끄지 않으시는 주님의 소망보존 의지를 믿기에...

케플러, 멋지다!

성약 출판사가 벌써 9년째 성약출판 소식지를 보낸다. 보내주신 분도 참 성실하다. 고맙기가 이를 데 없다. 이번 87호에는 유해무 교수님의 [케플러: 신앙의 빛으로 우주의 비밀을 밝히다] 서평이 눈에 밟혔다. 읽으면서 도서구입 리스트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도의 개혁보다 전인의 개혁을 겨냥한 종교개혁 기운이 어떻게 케플러의 삶과 신앙과 학문과 직업을 강타하고 갔는지를 감미로운 필치로 묘사한 책인 듯하여서 독서 리스트 기입에 망설임이 없었다. 책의 두께도 한 호흡에 읽어낼 수 있는 분량이다.

케플러는 16세기 후반에 태어나 17세기 초반에 왕성한 활동을 한 독일배경 개신교 과학자다. 그는 성경에 비추어 칼빈의 성찬론이 옳다고 여겨 카톨릭과 루터파 두 진영에서 버림까지 받았던 인물이다. 타원 궤도의 법칙, 면적속도 일정의 법칙, 조화의 법칙에 근거하여 지동설을 주장했고 행성의 운행이 고대부터 완전하다 여겼던 원이 아니라 타원이란 당시 '발칙한' 주장도 당당히 발설했던 대범한 과학자다. 그의 신앙적인 용맹은 황제가 로마교로 개종할 것을 전제로 프라하 대학 교수직를 제안했을 때에 거절했을 정도였다. 교황의 무흠을 인정할 수 없어서다. 심지어 보편적 교회의 강한 애착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고 높은 전문성도 구비했던 천문학을 배설물로 여길 각오도 가졌단다. 멋지다. 이런 학자, 보고프다.

케플러: 신앙의 빛으로 우주의 비밀을 밝히다 (유해무 교수 서평)

2013년 1월 29일 화요일

위클리프 De veritate sacrae scripturae

요한 위클리프, '성경의 진리(veritas sacrae scripturae)'라는 단일한 주제로 무려 1000여 페이지의 방대한 문헌을 남긴 최초의 인물이 아닌가 싶다. 여기에서 그는 성경의 전적인 충분성과 절대적 권위를 강조했고 성경을 자국어로 읽을 성도들의 권리를 외쳤으며 하나님이 성경의 유일한 저자라는 사실과 성경 자체가 성경의 해석이란 사실도 을 강조했다. 그것도 루터가 태어나기 이미 100년 이전에...

특별히 1권 389페이지에 등장하는 "교회의 모든 악은 성경 권위의 거절에서 비롯된다
(omnia mala ecclesie oriuntur ex deacceptacione autoritatis scripture)" 대목에서 요한이 왜 이렇게 방대한 문헌을 집필해야 했는지 그 동기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가독성을 높인 깔끔한 활자로 20세기 초반에 찍어낸 판본이 눈에 띄어 링크걸어 둔다.

John Wickliffe, De veritate sacrae scripturae

Volum I, Volume II, Volume 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