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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0일 금요일

사가랴와 요한

누가복음 1장 1-15절

스가랴와 엘리시벳은 의로운 사람이다. 그것도 하나님이 보시기에(ἐναντίον) 의로웠다. 특정한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상태로서 의로웠다. 누가는 사가랴를 '하나님 앞에서(ἔναντι)의 제사장'이라고 묘사한다. 이는 사가랴를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제사장과 구별하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로운 제사장은 "주님의 성전"(εἰς τὸν ναὸν τοῦ κυρίου)으로 들어갔다. 유력자의 눈에 걸리도록 권력의 비루한 문턱을 출입하지 않았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에 늘 귀를 기울이고 언제나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에서 발견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천사가 찾아와 너의 기도가 들으신 바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그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 예배하러 온 사람들은 바깥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의로운 사가랴가 있다고 해서 성도들의 삶이 문란해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가랴와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다.

사람들 사이에는 어떠한 대리만족 개념도 성립하지 않는다. 주님만이 우리의 거룩함과 선함과 의로움이 되시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떠한 면에서도 중보자가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 예수만이 중보자다. 기도하는 제사장 사가랴와 기도하는 예배자의 모습이 진정한 교회다.

기도의 응답으로 태어날 아들의 이름은 요한으로 불려질 것이란다. 하나님에 의해 지명된 이름이다. 그는 부모와 많은 사람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될 것인데 그 이유는 그가 1)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이 되고 2) 술을 마시지 않으며 3)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의 출생을 부모와 사람들이 기뻐하는 이유는 그가 사람들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큰 사람으로 발견되고 술이 아니라 성령으로 취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만이 아니다. 누구든지 부모와 사람 앞에서 칭찬과 존경을 받는 이유는 요한의 경우와 동일하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눈에 괜찮게 관찰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훌륭해야 하고 무엇을 하든지 다른 어떤 기운에 술취한 전문가가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가정예배 시간에는 이것을 아이들과 나누었다. 

제사장 직무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눅3:2)

누가는 당시 대제사장 두 명의 이름을 거명하며 당시 종교계의 불법성을 지적한다. 그런데 권력의 중심부에 있는 불법의 대제사장 두 명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았고 광야에 있는 요한에게 임하였다. 특별히 누가는 요한이 사가랴의 아들이란 사실을 굳이 언급한다.

누가는 여기에서 절묘하게 요한을 대제사장 적격자로 암시한다. 요한은 광야에서 대제사장 직분을 수행했고 이어 예수님은 광야에서 본격적인 대제사장 직분을 시작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다. 그는 말씀이고 말씀이 우리에게 우리의 모양을 따라 오시었다.

말씀이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실 것이기에 우리에게 임하신 말씀으로 인해 우리는 온 세상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해야 할 부르심을 받은 거다. 무슨 세력을 규합하고 종교적 고위직에 올라야 제사장 직분을 보다 잘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말씀이 중요하다.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다. 말씀을 바르게 알고 전달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제사장적 직무의 핵심이다. 이는 사람들에 의해 추대되고 추앙되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땅에서는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는 광야에서 말씀이 임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제사장은 땅의 환경에 의존하는 직분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한다. 말씀을 바르게 배우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살아내야 무늬가 아닌 진정한 제사장 직분의 수행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