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5일 일요일

도르트 총회의 원문들

도르트 총회의 400주년 기념으로 2018-19까지 도르트 총회의 회의록을 원문(라틴어, 독일어, 화란어, 영어)으로 출간하고 다양한 컨퍼런스 및 강좌도 개최하는 위원회가 발족했다. 엠덴의 아 라스코 도서관이 주관하고 헤르만 셀더하위스(Herman Selderhuis)가 지휘한다. 벌써 1권이 선보였다.

Acts of the Synod of Dordrecht

2015년 7월 4일 토요일

2015년 7월 3일 금요일

사랑과 신뢰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을 사랑해야 하고 우리가 사랑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주님의 제자라는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다.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됨과 주님의 제자됨이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도 우리의 정체성과 소명이 알려지고 구현되는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그 사랑은 참으로 진지하다. 사랑에 대한 세간의 낭만적인 개념과는 구별된다. 하나님은 사랑인데 그 사랑이 절정에 이른 양상은 어떤 것이었고 어떻게 확정이 되었는가? 독생자를 보내사 처참하고 억울하고 부당한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는 그 자리에서 확증이 되었었다. 그게 사랑이다. 진리와 공의가 희생의 방식으로 구현되는 십자가가 바로 사랑의 실상이다.

세상을 향해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문제는 어떠한 사랑으로 사랑할 것이냐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와 공의가 입맞추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의 구체적인 실체가 늘 모호하다. 모든 사람들은 사회적인 약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점에 이의가 없다. 그러나 불편한 충돌이 없고 그들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거기에 머물도록 만드는 사랑을 주로 선호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죄를 제거하고 그 죄에서 떠나게 하고 미워하고 피하게 만들었다. 그게 진리와 정의가 내포된 사랑의 모범이다. 우리 스스로는 어떤 식으로도 제거하지 못하는 절망적인 죄를 없애시는 방식으로 지고한 사랑의 본을 보이셨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보이셨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런 사랑의 본을 따라서 서로를 사랑하라 명하셨다. 세상이 진실로 고대하는 사랑은 이런 사랑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이런 사랑을 때때로 오해하고 그 사랑을 구현함에 있어서는 미숙함을 보인다는 것이다. 온유와 배려보다 주먹을 쥐고 침을 튀기면서 시시비비 가리고 옳고그름 따지는 일에 너무 성급하게 달려드는 경향이 자주 목격된다. 십자가의 결연한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꺾으려는 차가운 전투력만 발산하는 그런 경적된 대응의 미숙함을 때때로 노출한다. 주님의 사랑 실천은 실력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런 실력을 구비하는 일에는 게으르고 나의 의로움과 맞음에는 민첩하다. 우리가 깊이 반성해야 하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인간적인 혈기와 복음에의 열심은 구분해야 한다. 내가 앞서는 경박한 대응과 성급한 정죄는 온당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비겁한 침묵과 적당한 동정도 정당하지 않다. 주님에 대한 깊은 신뢰가 필요하다. 역사를 주관하고 은혜의 수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분은 주님이다. 

팀 켈러의 동성애 입장

[미주 기독일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뉴욕 맨해튼 리디머 장로교회(Redeemer Presbyterian Church) 담임목사이며 '21세기의 C. S. 루이스'로 불리는 팀 켈러(Tim Keller) 목사가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주장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팀 켈러 목사는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생기 넘치는 회중'으로 불리는 뉴욕 리디머 장로교를 이끌고 있는 목회자 겸 저술가로,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에 철저히 의지하는데도 방황하는 젊은 화이트칼라들이 그의 목소리에 열광하고 있다. 대도시의 전문직 종사자들, 미국 문화계와 그 아이디어를 주도하는 청년들이 그를 삶의 멘토로 가슴에 안는다. 철학자 댈러스 윌러드가 그를 "이 시대에 가장 주목할 목회자"로 꼽았고,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로 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켈러 목사는 최근 교회 웹사이트에 매튜 바인스(Matthew Vines)의 책 '하나님 그리고 게이 크리스천(God and the Gay Christian)'과 켄 윌슨(Ken Wilson)의 책 "나의 회중들에게 보내는 편지(A Letter to My Congregation)에 대한 리뷰를 게재했다. 두 책은 모두 동성애를 지지하고 있다.

켈러 목사는 동성애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 입장은 오늘날의 가장 중요한 논쟁 중 하나라면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계속해서 묻는 사람들에게 답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고 밝혔다.

1) 동성애자들을 만나 대화하면 동성애 옹호자 된다고 동성애가 옳은 것인가?

켈러 목사는 "바인스와 윌슨은 책에서 성경이 동성애를 죄로 정죄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가 동성애자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알아가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사람들을 언급하고 있다"면서 "동성애자가 아닌 기독교인들은 동성에 끌리는 사람들의 마음과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랑스럽고 똑똑하기까지 한 동성애자들과 만난 후 그들의 (동성애가 죄라는) 오랜 믿음을 폐기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은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그들은 신학적·윤리적 입장이나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서 그러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켈러 목사는 사람들이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성경이 동성애를 결코 금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성경 본문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 동성애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니

켈러 목사는 "바인스와 윌슨은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성경의 저자들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동성 간의 성관계(합의와 사랑에 의한 성관계)가 아니라 남색(어른과 아이 간의 동성 성관계), 매춘, 강간 등 성적 착취라고 주장한다"면서 "바인스와 윌슨은 바울과 다른 성경의 저자들은 선천적 동성애 성향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며, 착취적인 동성간의 성관계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고, 따라서 그들에게는 상호간의 사랑에 의해 이뤄지는 동성간의 성관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5세의 동성애자 기독교인인 바인스는 앞서 크리스천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동성애가 죄라고 믿는 기독교인들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동성간의 사랑에 의한 동성 성관계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데도 기독교인들이 정죄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켈러 목사는 "이러한 주장들은 1980년대부터 존 보스웰(John Boswell)과 로빈 스크록스(Robin Scroggs)이 주장해왔던 것인데, 바인스와 윌슨과 같은 사람들이 이를 재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들은 1980년대 이후로 보수적 연구가들과 진보적 연구가들의 연구를 모두 포함해 가장 우세한 의견은 이러한 주장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두 사례를 제시했다.

먼저 켈러 목사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인간을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로 나누는 제우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성애자는 이성을, 동성애자는 동성을 찾는다고 말하고 있다. 켈러 목사는 "이것은 고대에도 선천적으로 이성보다 동성에 끌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고대에도 선천적(타고난) 동성애자가 있었고, 착취적인 동성 간의 성관계가 아닌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관계가 있었으며, 그럼에도 성경은 동성애를 금했다는 것.

켈러 목사는 또 로마서 1장에서 사도 바울은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롬 1:27)고 말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분명히 강간이나 매춘, 남색이 아니라 상호 합의에 의한 동성간 성관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대 사람들은 선천적 동성애자들에 대해 알고 있었고, 바울도 상호 합의에 의한 동성 성관계에 알고 있었다면서 "바울은 착취적인 동성 성관계가 아니라 모든 동성간의 성관계를 정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 동성애 정죄하는 성경,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은 옹호?

켈리 목사는 또 많은 교회에서 성경에 근거해 동성애를 죄라고 하고 있는데 이전에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성경에 근거해 옹호하다가 지금은 입장을 바꾼 것처럼 동성애에 대한 입장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변증했다.

바인스는 자신의 책에서 "성경이 노예제도를 옹호하고 있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이 노예제도를 용납하고 있다고 믿어왔지만, 이제는 노예제도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다"면서 "기독교인들이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지지하기 위해 한 때 성경을 이용했다가 지금은 입장을 바꾼 것처럼, 동성애에 대핸 입장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켈러 목사는 이에 대해 "역사가들은 19세기 성경이 흑인노예제도를 용인하고 있다고 주장한 일부 사람들이 당시 큰 논란을 일으켰고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캐나다와 영국의 대부분의 개신교인들, 그리고 미국 북부 주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예제도가 성경에 완전히 위배되는 것이라고 철저히 반대하고 정죄했으며, 가톨릭도 아프리카 노예 무역에 대해 반대했다"고 설명했다. (성경에 노예와 노예제도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노예제도를 지지하고 옹호하고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예수께서는 인간의 목숨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셨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성경이 백인우월주의를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을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켈러 목사는 "노예제도와 동성애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최근까지 모든 교회와 신학자들이 성경은 동성애를 죄라고 정죄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던 것과 달리,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을 성경이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은 단 한 번도 교회에서 지지와 동의를 얻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년 내에 성경 본문으로부터 성에 대한 전통적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한 명도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결코 그렇지 않다"면서 "이것은 동성애를 정죄하는 성경본문에 대한 해석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무력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윌슨은 동성애를 이혼이나 재혼, 기독교인의 전쟁 참여, 시험관 아기,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 세례, 은사 등과 같은 이슈와 동일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켈러 목사는 이에 대해 "동성애는 이 범주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면서 "다른 주제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해서 찬반이 엇갈린 문제들이지만, 동성애는 모든 세기, 모든 문화, 모든 기독교 종파(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에서 아주 아주 최근까지도 만장일치였던 문제로,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다.

4) 성경이 금지하고 있는데도 하는 것 있지 않나?

켈러 목사는 바인스와 윌슨은 자신들이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진리라는 사실을 믿지만 성경이 모든 동성 성관계가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구약의 율법을 모두 지키느냐고 지적한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내놨다.

그는 "바인스는 레위기 저자가 18장 22절에서 동성애를 금지하고 있고 11장 9-12절에서는 갑각류를 먹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이 지금은 갑각류를 먹는 것에 대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동성애에 대해서는 왜 생각을 바꾸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면서 "바인스는 모세의 제사법 중 제사의식과 정결의식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돼 더 이상 여기에 구속되지 않지만 구약성경의 도덕법은 여전히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신약성경의 이해는 가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켈러 목사는 히브리서 10장 16절에서 "내 법을 너희 마음에 두고"라고 말하고 있다면서, 구약의 의식들이 더 이상 우리를 구속하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도덕법의 구속 속에 있으며, 이는 모든 교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동성애 금지는 (구약에서 언급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신약의 로마서 1장, 고린도전서 6장, 디모데전서 1장에도 다시 언급되고 있지만, 신약성경은 물론 예수 자신께서도 정결법과 정결의식은 더이상 구속력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막 7장)"고 말했다.

5) 세상의 대세를 막지 말라?

켈러 목사는 "바인스의 책보다 윌슨의 책에서 더 노골적으로 역사가 개인이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을 누리도록 변화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면서 "윌슨은 동성 간 성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러한 역사의 발전을 막으려는 헛된 시도이며, 노예제도에 대해 잘못 대처했던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에는 동성애에 대해 똑같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기독교 신앙은 때로 세상의 문화에 대해 공격적이며, 우리는 성경의 권위를 믿는다"고 말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 12:2).

켈러 목사는 또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으며,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최근의 조사가 있다"면서 "이세상이 세속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6) 성경이 동성애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나?

켈러 목사는 "가장 슬픈 것은 바인스와 윌슨이 동성 간 성관계를 금지하는 성경의 부정적인 측면에만 온갖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성경이 성에 대해 두고 있는 높고도 영광스러운 비전은 보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두 저자는 성경은 결혼에 있어서 상호 간의 사랑의 관계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올바로 말했다"면서 "하지만 성경은 거기에서 한 발 더 나가 있다"고 지적했다.

켈러 목사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 등 서로 다른, 그러나 상호보완적인 피조물들을 한 쌍 씩 만드셔서 동역하게 하셨다"면서 "다양하면서도 다른 피조물들이 서로 연합해 다이내믹한 온전한 하나됨을 이루게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찬란함이며, 이들의 상호 관계를 통해 더 많은 생명과 아름다움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남성과 여성의 창조와 결합은 이것의 클라이막스"라면서 "남성과 여성은 독특하며 서로를 바라보며 상대방이 할 수 없는 것을 행하며 서로 바꿀 수 없는 영광을 뽐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은 결혼이라는 영원한 계약을 통해 이들의 능력과 영광이 하나되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신 통로이며, 결혼을 통해 남성과 여성은 결합하고 서로를 통해 배우고 동역하며 새로운 존재로 빚어진다"고 성과 결혼의 신비를 설명했다.

켈러 목사는 마지막으로 "동성애는 성의 놀랍도록 풍부한 다양성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고, 배우자는 물론 자녀들에게도 이를 맛보게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바인스는 켈러 목사의 리뷰 글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잘못 이해했고 잘못 표현했다"고 자신의 웹사이트를 통해 말했다.

그러면서 "켈러 목사가 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침례신학대학의 윤리학 교수인 에반 레노우 박사(Dr. Evan Lenow) "바인스의 주장은 새로울 것이 없으며, 기독교 공동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문출처: http://www.godntalk.com/best/14329

2015년 7월 1일 수요일

통섭적인 사고

1. 진리는 하나이다. 여럿으로 보이는 진리의 모든 조각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절묘한 조화와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그 통일성의 중심에 진리 자체시며 스스로를 진리라고 명명하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계시다. 진리는 인격이다. 나누어질 수 없고 분리될 수도 없고 진리끼리 서로 대립될 수도 없다. 언어적 명제는 진리의 무늬일 뿐이다. 언어라는 차원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대립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이다.

2. 진리의 이러한 단일성과 통일성과 외관상의 다채로움 때문에 진리의 한 조각만 뒤틀어도 다른 모든 조각들이 어긋난다. 하나의 거짓은 다른 거짓을 낳고 그것은 또 다른 거짓 낳기를 반복한다. 하나의 거짓을 수습하기 위해 20가지의 다른 거짓들을 생산하고 동원해야 한다는 세간의 상식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나의 성경 텍스트에 잘못된 해석이 가해지면 다른 여러 텍스트의 오석을 수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3. 진리의 변질은 결국 진리의 본질이고 총화이고 중심이고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겨냥한다. 이것은 기독교 교리사의 한 토막만 탐구해도 쉽게 입증된다. 일례로서, 진리의 왜곡이 축적되면 "하나님이 없다"는 우매자의 전철을 히한하게 답습한다. 하나님의 속성과 무관해 보이는 지극히 지엽적인 교리의 오류도 그 저변으로 파고들고 근원으로 소급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부재나 결핍이나 왜곡과 마주친다.

4. 오늘날 많은 사회적 종교적 학문적 문제들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빈곤과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동성결혼, 환경파괴, 유전자 조작, 전쟁, 살인, 도둑질, 간음 등은 문제의 근원을 소급하고 또 소급하면 결국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사회적인 문제이다. 각종 종교들도 그러하고 물리학과 사회학과 경제학과 정치학과 윤리학과 심리학과 법학과 수학과 과학의 혼동과 무질서도 그러하다.

5. 호세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선지자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식의 부재이다. 율법에 대한 무지로 인한 멸망은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하나님의 섭리도 모르기 때문에 망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아니 그 지식은 생명이다.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을 모든 영역에 수혈해야 생명이 회복된다. 우리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