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30일 화요일

건강 세미나

3개월 전부터 앞치마를 두루고 부엌을 접수했다. 가족의 식단을 책임지는 자리에 서면 식감이 달라진다. 입맛보다 건강식을 추구하게 된다. 최근에 들었던 어떤 의사 목사님의 강연이 솔깃하다. 세미나 중에 짧게 등장하는 '치유의 하나님'에 대한 해석이 번뜩인다.


유전자 조작물(GMO)

몬산토(Monsanto)는 유전자적 조작이 가해진 음식물을 생산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와 관련된 부정적인 징후들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끔찍하다. 이는 창조된 자연의 은밀한 부위에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졌을 때에 발생하는 문제의 일부이다.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무시하면 창조의 질서가 인간을 무시하는 때가 도래한다. 이미 그 징후의 흉물스런 모습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아래의 비디오 클립들은 그 단면을 잘 보여준다. 물욕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산업과 학계를 삽시간에 더럽힌다. 그렇게 만들어진 죄의 카르텔은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마수를 내뻗는데 한국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2015년 6월 28일 일요일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

대부분의 기독교 성직자는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다"는 바울의 기록에 근거하여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동일한 바울의 말에 근거하여 동성애 해석의 관점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대법원이 최고의 법정적인 권세로 결정한 동성애 합법화에 복종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동성애가 죄라는 판단에 대해서도 그런 선별적인 재해석을 가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 권세자의 판단과 사도의 말 자체를 권위에 있어서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오류이다. 세상 권세자의 판단을 취사선택 한다면 사도의 말에 대해서도 취사선택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말인데 참으로 심각한 인본주의 정신에 빠진 발상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관원들의 판단이 상충했을 때에 어떠한 사도적 분별력을 보였는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에 우선이다. 공교회적 결정과 고백서와 교리보다 우선이다. 관원의 판단력은 당연히 말씀에 후순위다. 너무도 분명하게 계시된 진리를 시대의 변화상에 빗대어 해석학적 마사지를 가한다는 것은 말씀을 버리는 교묘한 방식이다.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대대적인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례하고 무분별한 대응은 금물이다.

1. 하나님의 은혜만이 시대의 정신을 다스린다. 명심하자. 2.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간구해야 한다. 게으름과 나태와 몸사림과 무관심의 조장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이러한 간구는 동성애 사안에 대한 극도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3. 세상의 타락상에 대한 교회의 책임감을 고취해야 한다. 이는 교회가 열방에 대하여 복의 근원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타락을 교회의 책임이란 관점으로 해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4. 세상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마음의 심연에서 비롯되는 사랑과 인내의 팔을 내뻗어야 한다. 주님의 길이 참으심을 앞지르는 것은 월권이며, 우리는 심판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5. 그렇다고 진리의 법적인 훼손을 좌시하는 침묵은 금물이다. 겸손하고 지혜롭게 성경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6.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논쟁을 일삼지 말고 상대방을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중하며 대화 중에라도 주님의 영광이 훼손되지 않도록, 교회에는 덕을 끼치도록, 세상에는 빛과 소금의 기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똥 묻은 개의 소리

최근에 Anglia Ruskin 대학의 지구촌보존연구소가 제시한 연구에 의하면, 2040년경에 재앙적인 식량부족 현상이 전 세계를 강타할 것이라고 한다. 물부족, 기후악화 및 불안정, 세계화의 가속화, 달아 오르는 국제정치 불안정, 인구증가, 소비증대 등의 현상들과 맞물려 범지구적 소요의 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이미 곡물생산 부진에 대한 Lloyds of London 보고서가 내놓았던 전망과 결이 동일하다.

맨 정신으로 성실하게 살아도 감당하기 힘든 재앙들이 등판의 때를 벼르고 있고 그 수효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는 반인륜적 광기가 지구촌 곳곳에서 미친듯이 발산되고 있다. 성경에 언급된 모든 해괴한 금지령이 특정한 고대의 미개한 풍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목격하는 나의 마음은 심히 씁쓸하다. 정치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종교에는 외식과 욕정이 난무하고 사회에는 온갖 느끼한 흉물들이 시선을 옥죄인다. 전적인 부패가 전 지구촌의 부패에 투영되어 있는 형국이다.

나 또한 깨끗하지 않은 죄인 중에 괴수이다. 추락하는 현실에 뾰족한 세평을 들이대는 것은 마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겠다. 비록 다 못났지만 그래도 규범의 지계표는 옮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지푸라기 붙잡는 심정으로 쓴다. 인간의 변덕은 번갯불 스피드로 바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경되지 않는다. 기준도 원리도 질서도 항상 동일하다. 그것을 사람의 바뀐 기준을 따라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기준의 붕괴는 한 개체의 붕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과 진보는 비례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비례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현실을 살펴보면, 신약이 기록되던 1세기의 윤리적인 수준에서 한발짝도 진보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든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집단 성관계를 가지고 아이들을 성의 파트너로 희구하고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여자가 여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고 심지어 짐승도 욕정의 출구로 지명되고 있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어두움의 일들이 수다하다. 여기에 다수결이 적용되면 기준이 변경된다.

그런데도 지구촌이 진멸되지 않고 멀쩡하게 보존되고 있음은 하나님의 길이 참으시는 인내와 무궁한 긍휼과 측량할 수 없는 자비의 결과임에 분명하다. 이것은 아마도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의 한 뜻인지도 모르겠다.

기사자료: Independent

2015년 6월 27일 토요일

말씀의 판단력

책을 읽다가 발견한 괜찮은 구분이다. 낮아짐과 겸손함은 구별된다. 몸의 처신은 낮아지나 속마음은 낮아짐과 무관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겸손과 내적인 겸손은 구분해야 한다. 압살롬은 누군가가 다가와 엎드려 절하려고 하면 손을 내밀어서 그를 일으켜 세우고 뺨에 입을 맞추었고, 아합은 자신의 죄악에 대한 지적을 듣고 굵은 베옷을 걸치고 금식까지 하고 힘없는 표정은 슬펐으나 그의 마음은 겸손하지 않았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깜쪽같이 둔갑하는 일에 명수이다. 우리의 눈과 귀와 생각에 근거한 판단에 안심하는 순간 보란듯이 속는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사를 분별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도 듣고 논리로도 하자가 없어 보이는 거짓과 속임수가 얼마든지 있다. 언론과 권력과 재력으로 조작 가능한 것들이 무수하다. 어떠한 분별에 있어서도 불변의 말씀에 판단의 닻을 내리는 게 최상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