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4일 월요일

일치와 자유와 사랑

아우구스티누스의 경구가 향기롭다.

"필수적인 것들에는 일치를, 필수적인 것이 아닌 것들에는 자유를, 그리고 모든 것들에는 사랑을 더하라"(in necessaris unitas, in unnecessaris libertas, et in omnes charitas). 성경이 설정한 필수와 피필수의 경계를 감별하는 것은 각자의 과제겠다.

2015년 8월 21일 금요일

아름다운 그리스도

나의 사랑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 사무엘은 이렇게 표현했다. “Put the beauty of ten thousand worlds of paradises, like the Garden of Eden in one; put all trees, all flowers, all smells, all colors, all tastes, all joys, all loveliness, all sweetness in one. O what a fair and excellent thing would that be? And yet it would be less to that fair and dearest well-beloved Christ than one drop of rain to the whole seas, rivers, lakes, and foundations of ten thousand earths.” (에덴의 동산과 같은 수만 낙원들의 미를 한 곳에 모으고, 모든 나무들과 모든 꽃들과 모든 향기들과 모든 색상들과 모든 맛들과 모든 기쁨들과 모든 사랑스런 것들과 모든 달콤함을 한 곳에 모두어라. 오, 이는 얼마나 대단하고 빼어날 것인가? 그러나 놀랍고도 지극히 사랑스런 그리스도 예수에 비한다면 그것은 바다 전체와 강들과 호수들과 막대한 흙의 토대에 견주어진 한 방울의 비보다 못할 것이리라)

성경의 3중적인 가르침

오늘은 왠지 존 플라벨의 경구가 가슴을 두들긴다. "The Scriptures teach us the best way of living, the noblest way of suffering, and the most comfortable way of dying.” (성경은 가장 좋은 삶의 방식과 가장 고상한 고통의 방식과 가장 평안한 죽음의 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작은 일에의 충성

작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은 위대하다. 세상에서 큰 일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관여하고 계시기에 모든 것이 위대하다. 그래서 우리는 지극히 작은 일에도 충성해야 한다. 

너 자신을 알라

Γνωθι Σεαυτον, nosce te ipsum, 너 자신을 알라

아폴로 신전의 문설주에 박힌 문구였다. 소크라테스는 이 문구에 생기를 주입했고 이로 인한 파급효과 때문에 급기야 죽기까지 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권고를 인간문맥 안에서만 생각해도 사선을 넘나들게 되는데, 하나님 앞에서 발견되는 나 자신을 알면 어떻게 될까? 세상이 스스로는 산출할 수 없는 천상의 변혁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아시는 것처럼 나는 알도록 지성의 촉을 최대한 예리하게 세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진 나를 응시하는 것이 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