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8일 수요일

깨달음의 복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마13:14)

성경 텍스트를 읽었는데 나에게 의미가 되지 않는 경우가 이따금씩 있다. 그때마다 아찔하다. 송이꿀도 상대화될 수밖에 없는 영적 당분의 보고인 말씀을 먹는데도 그 천상의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보다 심각한 건강의 적신호는 없기 때문이다.

위의 말씀은 1세기에 예수님을 보고서도, 그의 말씀을 듣고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알지 못했다는 당시의 시대적 어두움을 꼬집는다. 이는 빛의 근원이신 분이 오셔서 인류에게 가장 명료한 계시가 되셨어도 영적 지각들이 기능하지 않고 캄캄함 속에 갇혀 있어서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이 사람에게 보이고 들리도록 사람의 육체를 입고 오셨어도 깨닫지를 못한다는 것은 어쩌면 정상인지 모르겠다. 이는 눈과 귀의 비정상 때문이 아니라 죄로 일그러진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지각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문제 때문이다.

예수님은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고 하시었다. 눈의 보는 기능과 귀의 듣는 기능은 주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보고 들었다면 주께서 은총을 베푸신 증거라는 이야기다. 눈과 귀가 우리의 것이어도 주께서 주관하는 기관이란 이야기다.

하나님의 말씀을 펼쳤지만 의미가 읽어지지 않을 때마다 나는 복을 생각하며,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복을 간구한다. 그리고 성경을 깨닫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읽는 것은, 사회의 생리를 감지하는 것은 다 주께서 거저 베푸신 복의 결과라는 것을 곱씹는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지만 좀처럼 의미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무진장 답답했다. 그때 당황하지 않고 답답함 자체를 해부의 대상으로 삼고 그 속에도 깨달음의 조각이 있지는 않을까를 살피다가 깨달음 자체의 복된 속성과 진지하게 마주쳤다.

주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어떻게든 은혜를 베푸신다. 도무지 깨달음이 비집고 들어갈 수 없도록 딱딱한 머리의 소유자도 이렇게 은총에 잠기게 만드신다. 멋지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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