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4일 수요일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마시라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시62:10)

칼빈의 말이 떠오른다. 가진 자를 시기하는 사람은 가졌을 때 자랑하게 되고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없을 때 불평하게 된단다. 변동될 것들은 변동이 생리다. 부화뇌동 마시라는 이야기다. 재물은 변동될 것들의 총칭으로 영향력, 능력, 군사력, 금력 등을 의미한다.

시인이 그러한 재물의 증대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권면한 것은 단순히 그런 증대를 추구한 이후 마음의 지혜로운 처신을 요구하는 사후처리 주문이 아니다. 재물의 증대에는 아예 마음의 도모도 접으라는 보다 근원적인 태도까지 내포되어 있다. 뜨끔하실 게다.

재물의 변동에 대한 마음의 상습적인 요동은 결국 일시적인 것에 중심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많은 성과를 올려 급여가 상승하고, 직위가 올라가고, 거주지와 차종의 고급화가 이어지고, 그런 나를 부러움의 눈동자가 집단으로 응시해도 마음에 두지 마시라.

반대로 재물의 다양한 감소가 쓰나미 수준으로 덮친다 할지라도 두려워할 것 없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이 변함없이 계시니까. 세상에는 원래 우리의 항구적인 소유물로 거머쥘 수 있는 것이 없다. 대체로 실상이 과장된 거품이나 가식이나 허영일 뿐이다.

모든 가변적인 상황에서 무엇보다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서 나오는 마음을 지키는 게 상책이다. 재물의 변동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처방은 변동되지 않으시는 하나님과 그의 뜻과 진리에만 마음을 두라는 보다 적극적인 해석의 여지를 우리 각자에게 남기고 있다.

오늘은 내 마음이 무엇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지 그 세미한 진동을 살피고자 한다.

2013년 9월 3일 화요일

갚을 것이 없으므로 복이다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눅14:13)

나에게 유익을 끼칠 가능성이 높은 사람과의 밀착교제 유혹이 수시로 고개를 드리민다. 가난하고 연약하여 어떠한 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식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유력자의 행보에는 민감하고 그를 향한 대접의 손길은 민첩하다.

풍성한 식탁과 유쾌한 오락을 수반하는 잔치는 주로 청탁과 사례가 막후에서 벌어지는 자리이다. 당연히 주인의 근거리 초대석은 부하고 유력한 각종 실세들의 독차지가 상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식의 필름이 끊어지는 명령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다.

"너희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는 준행이 난감한 명령이다.

그렇게 명하시는 이유는 연약한 자들에겐 갚을 능력이 없으므로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이라 하신다. 땅에서 어떤 보상을 되돌려 받는다는 것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진술되고 있음과 부활의 때에 주님에 의한 갚음이 있을 것이라는 대목이 특이하다.

이는 믿음과 맞물린 발상의 전환이다. 우리의 보상은 땅에서 결국은 썩어 없어지는 것들이 아니라는 사실과 영원하신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신다고 믿음의 조상에게 하신 약속에서 찾아진다. 땅에서의 보상에 대한 기대는 접으라는 이야기다.

하나님 자신만이 우리의 보상이란 진리가 우리의 삶을 결박하지 아니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된다"는 주님의 교훈은 소의 귀에 들린 무의미한 경이겠다. 사람들을 대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태도에도 신앙의 상태가 짙게 묻어난다...

2013년 9월 2일 월요일

삶의 소중한 계기들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난다 (히4:12)

인간은 망각의 존재이다. 자신의 어떠함을 반듯한 거울에 비추어 날마다 점검하지 않으면 신처럼 스스로를 높이거나 짐승처럼 스스로를 폄하하는 지극히 가변적인 존재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가장 온전한 성경의 거울을 통하여 여호와를 신으로서 알고, 인간을 인간으로 알고 자연을 자연으로 아는 지식의 가장 건강한 질서가 성경으로 확립된다. 

삶에는 말씀의 거울에 나 자신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는 다양한 계기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평소에 의식하지 않았던 자신의 치부까지 구석구석 확인하고 교정할 수 있는 계기들로 대립과 갈등과 손해와 억울과 부당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을 듯하다. 물론 그러한 상황이 펼쳐질 때마다 서둘러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세우지 않으면, 가까운 원인을 궁극적인 원인인 것처럼 반응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제거하는 비극이 빚어진다. 

사람에게 반응하는 순간 사람에게 비추어진 나의 과장되고 축소되고 왜곡되고 어그러진 자아만 확인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진 나의 있는 그대로를 만날 기회는 상실하고 하나님은 무시된다. 하나님께 반응할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 앞에서의 나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다. 삶의 문맥을 생략하고 폐쇄된 동굴에 들어가 자기만 홀로 남은 상황에서 스스로를 관조하면 자아도취 가능성만 짙어진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는 삶의 계기들이 중요하다. 세상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시장에서 가정에서 어느 것 하나라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을 알고, 나 자신을 만나 나를 알아가는 계기들로 충만하다. 세상에서 떠나는 방식으로 자신을 말씀 앞에 세우지 않고 삶의 정황들 속에서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야 하겠다.

Melanchthon의 간략한 신학 공부법

Brevis discendae theologiae ratio (1530)

1) 성경을 통독할 것 (tota Biblia ordine legenda): 난해한 구절이 발견되면 주석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면함

2) 성경의 중요한 구절들은 선별하여 신학적 논제들 속에 배당할 것(excerpendae praecipuae sententiae, quae sunt in locos communes digerendae): 특별히 신학적 용어에 대해서는 자신의 Loci communes 사용을 권함

3) 기독교 교리의 총화를 담아낼 어떤 방법 혹은 체계를 생산할 것(informes methodum aliquam): 이를 위하여 칭의와 율법의 사용과 율법/복음의 차이에 대하여 논하는 로마서가 적격이라 한다.

2013년 9월 1일 일요일

신입생 환영회

이제 초가을 문턱에 막 들어선 그랜드 레피즈의 한적한 공원에서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학생회 임역원이 쏟은 사랑의 수고로 마련된 즐겁고 상쾌하고 화목했던 자리였다. 칼빈에서 누적된 짬밥수를 기준으로 설교자를 세우려는 학생회의 새로운 방침을 따라 난 설교단에 일순위로 서야 했다. 다음 타선으로 박사과정 학생들은 긴장하고 계시라는 회장님의 '무서븐' 광고도 뒤따랐다.

나는 신입생의 새로운 유학생활 첫걸음을 격려하는 따뜻한 언사나 낯선 언어로 시작될 학업 걱정으로 팽팽해진 그들의 긴장을 해소하는 유쾌한 유머어 한 토막도 삽입하지 않고 그냥 생명과 죽음조차 수단으로 삼으신 예수님의 복음전파 및 섬김의 본보기를 따라 날마다 죽음을 지불하는 섬김의 사역자가 되자는 뭉퉁한 교훈만 격하고 묵직한 어조로 내뱉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음이 임박한 순간을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로 보셨다는 사실도 어색할 정도로 거듭해서 꼬집었다.

그런데 단에서 내려올 때 미안한 마음이 썰물처럼 밀려 왔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는 타이밍의 적시성이 중요함을 지적한 지혜자의 말씀이 마음에 걸려서다. 복음을 위해 주님처럼 죽음을 수단으로 삼자는 말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타국에서 만만치 않은 학업의 첫출항을 앞둔 신입생들 귀가에는 버거웠을 듯해서다...ㅡ.ㅡ 하여 말씀이 신입생의 마음을 더욱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달라는 기도가 저절로 나오더라. 

이번에도 칼빈의 신입생들 면면을 살펴보니 귀한 분들이 많이들 오셨다. 신앙과 학업과 인격과 삶에 큰 진전과 건승 있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