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7일 금요일

하나님의 전능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계19:6)

할렐루야! 우리의 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그의 능력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제한이 없기에 측량할 도구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껏해야 한계가 없다는 부정적인 어법으로 겨우 하나님의 권능을 묘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계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더듬어볼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인 표현의 사용이 때로는 보다 생동적인 구체성을 제공할 수 있기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전능과 통치에 대해 하늘에서 내려온 이 찬양의 소리가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레의 소리와도 같다”고 말합니다. 물론 요한이 들은 찬양의 소리에 하나님의 전능 개념을 다 담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속성은 이 땅의 어떠한 것으로도 담겨지지 않고 온전히 전달할 수레로서 어떠한 종류의 번역어도 없는 듯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결국 자신을 친히 계시하신 성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전능을 인간 편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마19:26).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이든 원하기만 하면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 하나님은 의지하실 수도 있고(volle) 의지하지 않으실 수도 있으며(non volle), 하기로 의지하실 수도 있고(volle) 안하기로 의지하실 수도 있습니다(nolle).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무언가에 대한 의지와 비의지(volitio et nolitio)에 제한이 없습니다. 단순히 무언가에 대한 기호나 선택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 무언가를 구현할 능력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무언가”의 항목에는 인간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것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사실 인간의 눈에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접할 때마다 우리는 인간의 제한적인 능력에 근거하여 ‘말도 안된다’는 경솔한 판단을 내리기 쉽습니다. 심지어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 아니라 그냥 꾸며낸 교훈적인 우화일 뿐이라고 여깁니다. 홍해의 마른 갈라짐도, 요단강 흐름의 끊어짐도, 기브온 골짜기의 중천에서 벌어진 태양의 중지도, 남자를 모르는 처녀의 잉태도, 죽은 지 사흘이 지난 시체의 부활도 인간이 보기에는 맹랑한 헛소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한하신 하나님 자신과 전능하신 그분의 행하신 일들을 기록한 책입니다. 인간의 무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 관점에서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전능을 함부로 생략한 성경 해석학은 언제나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신적인 말씀의 인간화일 뿐입니다. 신적인 전능의 관점에서 보면 성경의 모든 것들은 사실이 아닌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이해는 성경 해석학의 전제이며, 동시에 성경 전체가 신적인 속성의 계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고려가 성경 해석학의 처음과 나중이 되지 않으면 필히 오석과 왜곡을 낳는다는 말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전능은 신비롭고 불가능한 일들의 이해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들도 하나님의 전능을 떠나서는 결코 이해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 없이도 인간의 유한한 능력으로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이 대단히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일들의 주체로 언급되는 경우도 대단히 많습니다. 성경에서 그러한 경우를 접할 때 우리는 대체로 그것을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전능에 대할 명시적인 기록보다 어쩌면 더 큰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걷기도 하시고 자기도 하시고 먹기도 하시고 지치기도 하시고 다치기도 하시고 울기도 하시고 노하기도 하신 일들은 모두 인간에게 너무도 평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도 되신다는 점에서 그렇게 평범하실 수 있다는 사실이 대단히 신비롭고 놀라운 것입니다.

진정한 고수는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낼 수 있는 자가 아니라 어떠한 힘도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그러한 고수와도 같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유한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전능만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도 얻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유한의 행보를 보이실 어떠한 필연성도 없습니다. 스스로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죽기까지 연약한 무능의 자리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저에게 이것은 신적인 전능의 역설적인 모습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성경의 평범한 기록들은 신적인 전능의 관점에서 볼 때 맹목적인 에너지의 막대한 크기가 아니라 도무지 측량할 수 없는 신적인 사랑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전능을 생략한 채 그 기록들을 읽는다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결코 읽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통치는 하나님의 전능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 통치에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도무지 불가능한 초자연적 요소들도 있지만 너무도 평범해서 당연하게 보이는 자연적인 요소들도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가 하늘에서 찬양의 내용으로 선포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통치 때문에 “할렐루야” 찬양은 합당하고 마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분명 하늘에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비록 전능자의 통치를 다 해아릴 수는 없겠으나 지식의 충분한 확보와 승인이 없더라도 하늘에서 요한에게 들린 소리처럼 당위적인 찬양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면밀히 살펴보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사역과 자연적 조화에서 지각되는 핑계하지 못할 신적인 전능의 충분한 증거들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의지와 비의지가 모두 가능하신 전능자가 무언가를 하셨다면 그것은 평범하든 기이하든 최상의 판단에서 이루어진 최고의 일일 것입니다. 그러한 최고의 일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 중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보다 더 좋은 일들을 행하실 수 있으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 아래에서 일어나는 범사가 다 최고의 일들임을 저는 믿습니다. 물론 인간의 부패와 죄악이 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모든 범사에 마땅히 감사할 수밖에 없음은 하나님의 전능에 의존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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