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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3일 월요일

교부신학: 전승과 성경

은밀한 교리의 전승이란?

클레멘스: 그노시스, 파라도시스, 사도들의 유럐와 영지주의 사고의 혼합으로 봄.

오리게네스: 성경에 토대를 둔 비의적인 신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봄. 율법과 예언들과 주님의 파루시아 때에 주신 계약과의 일치와 조화로 정의함.

Hyppolytus: The Apostolic Tradition, Didache라는 책에서, 세례와 성찬과 예전 전체가 사도들의 증언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 사도들에 의해서 세워진 주교단이 사도들의 증언을 순수한 형태로 보존하여 왔다.

이러한 이론이 쇠퇴하며 카톨릭 교회의 통치권에 대한 증대된 인식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로마교회는 스스로를 특별한 의미에서 사도적 전승의 지명된 수호자/대변자로 여겼다.

유세비우스: 니케아 공의회에 자신의 신조를 제출할 때에 성경만이 아니라 자신의 선배 주교들이 전달해 준 가르침 및 교리문답 교육, 세례 때에 받은 가르침을 토대로 하였다.

니케아 공의회의 신앙은 처음부터 믿어져 왔던 진리를 구체화한 것이었다.

아타나시우스: 니케아 공의회의 교부들은 예수님이 주셨고 사도들이 선포했던 가르침을 단순히 승인하고 전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벗어난 자들은 기독인이 아니다.

Basil: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예전적인 관습을 주축으로 삼아 성령이 성부 및 성자와 동등함을 논증했고 사도적 증언은 성경과 아울러 비의들을 통해서 교회에 전해졌기 때문에 이 기록된지 않은 전승에 머무는 것이 사도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Gregory of Nyssa: 성자의 독특한 발생을 실증하려 했을 때에 우리에겐 사도들을 계승한 일련의 거룩한 이들을 따라 사도들이 전한 유산과 같이 교부들이 우리에게 전해온 전승도 있다.

성령의 거소이자 신앙의 표준, 예전 행위, 일반적인 증언을 통해서 진정한 사도적 증언을 보존해 온 교회만이 성경 해석에 대한 필수 불가결한 열쇠를 소유하고 있다.

어거스틴: 성경에 나오는 의심스런 구절이나 애매한 본문들은 신앙의 표준에 의해 해명될 필요가 있다, 오직 교회의 권위만이 성경의 진리성을 보장해 준다고 보았다??? 공적인 공의회의 권위는 가장 건강한 것이었다.

키릴루스: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로 불리는 것은 마땅하다. 거룩한 보편적 교회와 숭앙받을 만한 교부들을 근거로 성령이 그들 속에서 말씀을 하셨다. 사도들과 복음서 기자들의 전승,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 성경 전체의 취지.

5세기 중엽의 빈켄티우스: 이중적인 보루를 강조, 즉 하나님의 법과 카톨릭 교회의 전승. 성경은 그 자체로 충분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이라 하였으나 성경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승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적 및 카톨릭적 견해의 규범, "어디서나, 언제나, 모두에 의해 믿어져 온 것"(quod ubique, quod semper, quod ab omnibus creditum est). "전 세계에 걸쳐서 온 교회에 의해 공언된 신앙만이 참되다고 우리가 고백한다면 우리는 보편성의 원칙에 합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경건한 선조들과 교부들에 의해 명백하게 공유된 신조들을 벗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대성의 원칙에 합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전 세대들에 의지하여 주교들과 교사들의 전체 혹은 대다수의 정의들과 견해들을 우리의 것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합치의 원칙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2013년 12월 22일 일요일

교부신학 배경 - 전승과 성경

켈리의 Early Christian Doctrines 요약.

기독교 교리라는 것은 주호 1세기 말 이래의 가톨릭적 교회의 교리이다.

오늘날의 전승: 교회 속에서 내려온 문서화되지 않은 일련의 가르침을 뜻한다.

교부들은 구전으로 전해진 것이든 문서로 전해진 것이든 내용에 있어서 사도들이 교회에게 위탁했던 가르침을 의미했고 보다 앞선 시대에는 문화되지 않은 교회의 전래적인 가르침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아타나시우스: 주님께서 수여했고 사도들이 선포했고 교부들이 보존한 카톨릭 교회의 본래적인 전승, 가르침, 믿음을 의미한다.

교부들에 의하면, 구약이 초대교회 교리의 규범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 구약에 교리적 권위를 부여했던 초대교회는 구약을 올바르게 해석하면 기독교의 책으로 간주함, 선지자는 실제로 그리스도 및 그의 영광을 증언하고 있다는 전제에 토대를 둔 판단이다, 2) 이러한 전제는 의식하든 안하든 특정한 주석 방법론을 사용할 때에만 가능할 수 있었다, 바나바서: 자신의 그리스도 중심의 중석을 그노시스로 칭함, 3) 이러한 원칙은 2세기 초의 발명품이 아니었다, 사도들도 이미 이러한 원칙으로 구약을 해석함.

클레멘스: 사도들은 그리스도 예수로부터 우리를 위한 복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사명감으로 무장되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을 통해 온전한 확신을 얻고, 성령의 확신케 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확증을 받은 사도들은 기쁜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아갔다.

폴리캅: 바울의 빌립보서, 신앙의 초석으로 여김; 저스틴 마터: 복음서가 권위를 가지는 것은 그것들이 사도들의 회고록이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전승: 1) 구약과 사도적 증언은 형식상 서로 독립되어 있었지만 교부들은 그것들의 내용이 실제로 인치하는 것으로 취급했다, 2) 사도적 증언은 사람에게 아직 전승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클레멘스: "우리 전승의 표준"이란 표현을 사용하긴 했으나 여전히 희귀했다. 폴리캅: "처음부터 전하여진 말씀", 저스틴: 예수님에 관한 예언들을 사도들이 이방에게 "전했거나" 성찬식 제정의 말씀을 "전하여 주었다"고 표현함. 3) 교회의 목회자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에 의해 공인된 사도적 가르침의 수호자란 이론적 암시가 고개를 내밀었다.

이레니우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여준 자들 이외의 다른 어떤 이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구원의 계획을 배운 적이 없다." 터툴리안: 교회에서 믿어지고 전파된 것들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이유는 사도들을 통해 그것을 받았고 사도들은 그것을 그리스도 통하여서 받았고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에 의해서 받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레니우스/터툴리안: 사도들이 가르쳐준 가르침을 지칭하려 할 때에 "전승"이란 표현을 사용했다.

이레니우스: 1) 구전 전승과 원래의 계시 사이의 동일성은 계보상 사도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련의 주교들에 의해서 보증된다, 2) 추가적인 보호막은 성령에 의해서 제공된다. 교회의 주교들은 "진리의 무오한 카리스마적 권위"(charisma veritatis certum)를 부여받은 성령의 사람이라 하였다.

터툴리안: 구전된 것이든 서신으로 된 것이든 사도적 가르침 전체를 사도적 전승(apostolorum traditio, apostolica traditio)이라 하였다.

사도적 전승의 여부를 결정하는 시금석은 교회의 관습이 아니라 사도성, 즉 사도들 혹은 그 제자들에 의해서 쓰여졌기 때문에 사도적 증언을 담고 있는 것으로 신뢰할 수 있다. 올바른 주석은 성경의 열쇠인 사도적 전승 혹은 가르침을 교회 속에서 손상 없이 보존해 온 교회의 대권이었다.

Irenaeus's Adversus haereses: 정통신앙 변론에서 성경을 근거로 제시하는 방법을 구사했다. 1) 전승 자체는 우리 신앙의 터전이자 기둥인 성경에 의해서 확증되는 것이었다. 2) 세례 때에 받은 진리의 교령을 견고히 붙잡고 있으면 성경의 의미를 왜곡하는 일은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교령"은 결코 성경과 구분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단지 성경 속에 담겨져 있는 메시지를 요약한 것이었다.

터툴리안: "전승"의 의미를 확대해서 교회 속에서 여러 새대동안 관습화된 것들을 포함시킴. 그러나 일차적인 의미에서 사도적, 복음적, 카톨릭적 전승은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었고 이렇게 이해된 전승은 결코 성경과 대비되지 않는다. 전승은 성경 속에 소중히 간직된 것이었다. 이는 사도들이 그들의 구전에 의한 가르침을 나중에 서신들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무엇이든 필히 참되고 성경 속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가르침을 받은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터툴리안, 사도적 전승을 신약에 제한하지 않았다. 사도적 전승은 교회들이 공적으로 선포하는 가르침 속에서 여전히 발견된다. 은밀한 전승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도들이 계시를 전체로서 알고 있지 못했다거나 전해주지 않았다는 것은 도저 생각할 수 없다고 설파했다.

터툴리안: 신앙의 표준, 이레니우스: 진리의 교령, 같은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터툴리안: 신앙의 표준이 사도들을 통해 전해졌고 이 신앙의 표준은 어떤 사람의 기독인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신앙의 표준은 성경에 대한 올바른 주석의 길을 지시한다.

터툴리안: 성경은 모든 부분이 서로 일치하기 때문에 전체로서 읽으면 뜻이 분명해 진다고 확신했다. 학자들은 터툴리안이 마치 기록되지 않은 전승을 성경보다 더 궁극적인 규범으로 삼았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이레니우스와 거의 동일했다. 오직 성경을 토대로 해서 이단들과 논쟁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분명하게 확신했다. 이단들은 성경의 명백한 의미를 매우 노련하고 교묘하게 왜곡하기 때문에 그러한 논쟁 속에서 성경만을 토대로 삼아 결정적인 결론을 얻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터툴리안 전제: 하나님의 동일한 계시는 성경과 교회의 지속적인 공적 증언 속에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 교회들이 순수한 사도적 가르침을 전수함에 있어서 어떤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키프리안: 사도적 전승은 주의 전승의 뿌리이자 원천, 신적 전승의 샘이자 원천이다.

아타나시우스: 교회의 초석은 주께서 주셨고 사도들이 선포한 전승이다. 

교부신학 배경 - 영지주의

2-3세기에 활동했던 가장 강력한 이단들 중의 하나였다.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히폴리투스 같은 교부들에 의해 알려진 무리이다. 이 교부들은 영지주의를 기독교와 이교의 철학, 점성술, 그리이스 비의 종교들과 혼합된 것으로 이해했다. 사도행전 8장에 나오는 사이먼 마구스를 영지주의 효시로 보았다.

# 하르낙: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극단적 헬레니즘화다.

기독교 영지주의 이전에 유대교적 영지주의 무리들도 존재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영지주의는 유대교와 이교와 동방 종교들의 요소들을 혼합시킨 것이고 악과 인간의 운명이란 문제에 관한 해법과 관련하여 독특한 입장을 취한 사상들을 고안했다.

Valentinus

1) 만유 위에는 최고의 아버지, Bythos, Monad, Aeon이 거하고 그 옆에는 Ennoia인 침묵 Sige가 있다. 이들에 의해 세 쌍의 아이온들, 즉 Nous, Aletheia, Logos, Zoe, Anthropos, Ecclesia가 차례로 유출이 되었으며 이렇게 함으로써 8계 ogdoad를 완성한다. 로고스와 조에에서 다시 다섯 쌍의 아이온들(10계)가 유출되고 인간과 공동체가 다시 여섯 쌍의 아이온(12계)를 유출한다. 이렇게 이루어진 30계가 하나님의 플레로마 Pleroma 혹은 충만을 구성한다.

2) 여기서 오직 독생한 누스만이 아버지를 알고 계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 30계에서 가장 낮은 소피아 Sophia는 아버지의 본성을 알고자 하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붙잡힌다. 소피아는 죄악된 욕망Entiumesis로 인해 진통을 겪는데 만약 플레로마 수호자로 임명된 호로스(Horos, 십자가)가 그녀에게 아버지는 이해될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지 않았다면, 만유 속으로 용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피아는 자시느이 욕망을 내버리고 플레로마 속에 그대로 머물렀다. 정신과 진리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아버지에 대한 아이온의 진정한 관계를 아이온에게 가르치기 위해 새로운 한 쌍의 아이온인 그리스도/성령을 만든다. 이렇게 함으로써 질서가 회복되자, 아이온은 아버지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플로레마의 완전한 열매인 예수를 출산한다.

3) 전형적인 영지주의 특징: 사변과 신화를 적당하 융합하고 거기에 성경의 내용들에 관한 흔적들을 드문드문 삽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떤 조직이나 체계를 갖추지 않았다는 것도 특징이다.

4) 영지주의 학파들은 철저히 이원론적, 영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의 무한한 간격, 물질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악하다.

5) 물질 세계의 기원을 최고의 신, 빛과 선의 신에게 돌리기를 거부한다. 물질 세계는 태초에 있었던 어떤 무질서, 더 높은 영역의 어떤 갈등이나 타락의 결과임에 틀림없고, 물질 세계를 만든 자도 어떤 열등한 신 혹은 데미우르고스일 것이다.

6) 영지주의 무리들은 모두 인간 혹은 인류의 엘리트 계층에겐 영적인 요소가 있다고 믿었는데 이 세상에서 나그네의 위치에 처해 있기 때문에 물질에서 해방되어 본향으로 회귀하고 싶어한다.

7) 영지주의 무리들은 인간의 영적 요소가 본향에의 회귀를 희구할 수 있게 만드는 중개자가 하늘들을 거쳐 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묘사했다. 중개자의 역할은 영적인 인간이 진리를 향하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영적인 인간은 지식에 의해 구속함을 얻는다"(Marcus) "복음은 초현세적인 것들에 관한 지식이다."(바실리데스)

8) 어떤 사람이 영지적인 신화들을 그 진정한 내적 의미까지 모두 파악하면 자기가 누구이고 자기가 어떻게 현재의 상태에 처하게 되었으며 형설할 수 없는 최고의 신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게 되어야 비로소 사람의 속에 있는 영적 요소는 물질의 속박에서 해방되기 시작한다.

9) 발렌티누스 (Gospel of Truth)는 이 지식을 얻기 전에는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멍청한 상태에서 비틀비틀 거리지만 지식 이후에는 취중에 든 잠에서 깨어나는 것과 같다고 묘사한다.

10) 이러한 영지주의 사상은 이레니우스, 클레멘스 2서, Theophilus의 Ad Autolycum 같은 2세기 작품들 안에서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클레멘스: 신앙을 철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기독인에게 '영지주의자'란 호칭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적용했다. 이단적, 비기독교적 영지들이 진정한 기독교적 영지들과 섞여 있었다는 것은 영지주의/기독교 사이의 구분이 어려웠던 당시의 상황을 잘 알려준다.


교부신학 배경 4

플로티누스의 신, 최고의 원리 혹은 최고의 위격 (hypostasis)는 유일자며 그 자체로 존재를 초월해 있고 플라톤적 정신 혹은 신 개념도 초월하는 유일자는 존재의 출처이며 존재가 돌아가야 할 목표이다. 유일자는 축소와 변경 없이도 유출 혹은 발출(emanation)한다. 유일자는 선 자체이다. 두번째 위격은 정신 혹은 사고이다. 세번째 위격은 영혼이다. 정신은 형상들의 세계를 포괄하고 유일자로 회귀하는 시도 속에서 형상들의 세계를 관상한다.

이렇게 해서 다양성이 만유 속에 도입된다. 정신은 원인이 되는 원리로서 플라톤의 데미우르고스와 동일하다. 영혼은 둘로 나뉘는데 물질적인 질서를 초월하는 고등영혼, 현상적 세계의 영혼인 하등연혼 혹은 자연이다. 세계는 비록 물질적인 것이지만 선하다고 하였다.

세계는 고등 영혼에 의해 창조되고 질서지워 졌으며 자연에 의해서 통합되어 이싸. 물질 자체는 악하지만 눈에 보이는 만유는 지성으로 파악될 수 있는 질서를 반영하고 있고 따라서 모든 가능한 세계들 중에서 최고의 것으로 인정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유일자의 유출이고 모든 실재에 서로 다른 차원에 스며들어 있으면서 더 높은 차원의 것, 궁극적으로는 유일자와 합일하는 것을 열망한다.

플라톤의 향연: 천상의 에로스에 의해 불지펴져 있는 인간의 영혼은 이러한 합일을 위한 승화를 원하도록 도전을 받는다고 한다. 1) 정화의 단계이다. 영혼은 육체, 감각, 지각의 속임에서 스스로를 해방해야 한다. 2) 영혼은 정신의 차원으로 올라가고 자의식을 유지한 채 철학과 학문에 매진한다. 3) 마지막 단계가 유일자와 신비적 합일이다. 

2013년 12월 9일 월요일

교부신학 배경 2

1. 특별한 부류의 유대교: 알렉산드리아에 번성, 70인역복을 만들었고 이것은 헬레니즘 문화를 초대 교회로 도입하는 데에 매우 유리한 통로였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학자들의 일반적인 입장이다. 유대교 신학을 헬레니즘 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하려 한 시도라고 해석한다. 보다 엄밀한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2. 필로 (주전 30-45)는 이러한 헬레니즘 경향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 플라톤을 특히 좋아했고 이데아의 세계와 물질의 세계를 구분함, 그리스도 철학의 가장 탁월한 주장들은 이미 성경에 등장했던 것이라고 주장. 이런 주장은 종교개혁 및 그 이후에도 줄곧 발견되는 주장이다. 필로는 하나님이 성경의 자자들을 하나님의 뜻 전달하기 위한 수동적인 도구로 사용했고, 성경은 온전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3. 필로의 중요성: 1) 필로의 알레고리 해석학, 계시된 진리와 철학자의 진리가 동일함을 보여주려 했다. 알레고리 방법론은 필로의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다. 이미 호메로스/헤시오도스 시들에 감추어진 의미를 발견하고 고대의 신화에서 자신의 형이상학 체계를 읽어내는 데에 유용한 도구였다. 필로는 모세의 율법을 그대로 수용했고 동시에 알레고리 도움으로 율법의 보다 깊은 의도를 파악하려 했다. 성경의 문자적 의미는 몸의 그림자며, 보다 심오하고 참된 진리는 문자가 상징하고 있는 영적인 의미에서 발견된다. 그는 문자적 의미를 폐하지도 않았고 폄하한 적도 없었다. 사람이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고 영혼의 장막인 몸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듯이 성경의 역사적 의미는 최고로 존중될 가치가 있었다.

4. 이런 원칙에 입각하여, 필로는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인간의 지성, 감각과 욕정들, 지상적인 영혼의 창조, 쾌락에 의한 지성의 유혹, 물질적 질서에 대한 지성의 종속, 인간의 지상적 영혼이 그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방식들을 상징하는 신화로 설명했다.

5. 필로의 중요성: 2) 로고스에 대한 개념. 하나님은 전적으로 초월적. 플라톤의 전제였던 미덕, 지식, 절대선, 미, 영원한 형상들도 초월한다. 하나님은 순수한 존재이며 절대적이며 단일하고 자족적이며 속성이 없는 것으로 설명된다. 유한 존재들을 분류하는 데에 사용하는 그 어떤 논리적 범주들 속으로도 포함될 수 없는 존재시다.

6. 당시의 플라톤 학파의 해법은 최고선 혹은 하나님과 물질세계 사이에 신적인 존재들로 이루어진 계층 질서를 집어넣어 이 존재들이 물질세계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것으로 보았었다. 이제까지 존재한 것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하나님과 가장 비슷한 존재로서 필로는 그것을 로고스라 하였다.

7. 로고스: 1) 하나님과 만유를 이어주는 중개적인 로고스는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리인, 정신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수단이다. 이는 모두 스토아 학파의 사상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필로는 로고스를 플라톤이 말하는 형상들 혹은 원형들의 세계와 동일한 것으로 여긴다. 정신 속에서의 이성적인 사고(λόγος ενδιάθετος)와 말로 표현된 사고(λόγος προφορικός)가 존재하듯 하나님의 로고스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정신적 개념들 혹은 사고이며 그런 후에 형태가 없는 비실재적 물질 속으로 투사되어 그 물질을 실재적 이성적 우주로 만든다고 하였다. 필로는 로고스를 독생자와 같은 인격적인 용어들로 묘사한다. 로고스는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매개체다. 구약에서 족장에게 나타난 여호와의 천사는 필로의 눈에 로고스였다. 

교부신학 배경 1

1. 교리적인 동질성을 교부 시대에 부과하지 말아야 한다. 교리가 형성되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교회의 신학은 미숙함과 정교함의 양 극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2. 신학의 개념: 1) 이레니/터툴리안, 철학에 대해 깊은 회의와 적대감을 가졌기에 신학의 기능을 성경에 제시된 교리들을 설명하는 것으로 국한. 열등한 유형의 기독교: 성경 및 교회의 진리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토대로 함/ 우월한 유형의 기독교: 그노시스, 즉 비의적인 형태의 지식을 토대로 함. 성경과 전승이 지닌 더 깊은 의미를 밝혀내서 그것에 비추어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구원의 계획과 관련된 심오한 신비들을 탐구하는 것이 목표. 신비적 관상이 기독교의 절정으로 간주됨.

3. 콘스탄틴: 교회와 제국의 화해, 니케아 공의회는 화해의 상징이다. 교회는 제국의 호의를 향유하게 된다. 논쟁의 시대가 열리고 주교들로 구성된 공의회는 교의를 정의하는 공인된 기구가 되었다. 신학의 전성기다.

4. 교부들의 교회가 로마의 복잡한 문화적 환경 속에 놓여져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종교적, 철학적, 신지학적 개념들로 번잡했던 시대였다.

1) 유대교. 기독교의 요람이다. 교회의 예전과 사역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팔레스틴 유대교: 신약성경 저자들의 사상이 형성된 밑거름 되시겠다. 헬레니즘 등장 이전 2세기 준반까지 기독교는 주로 유대교의 틀 속에서 형성됨. 변증적인 교부들이 등장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사상적 범주들은 유대적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