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16일 목요일

톰 라이트의 The Last Word: Scripture and the Authority of God를 읽고

이 책에서 라이트는 성경을 통해 발휘되는 하나님의 권위를 논한다.

특별히 세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1. 처음에 성경은 어떤 의미에서 권위적인 것이었나?
2. 성경은 어떻게 합당하게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는가?
3. 합당하게 이해된 성경의 권위는 교회 자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성경의 권위(authority of Scripture)'라는 말이 기독교적 의미에서 정당성을 얻는 것은 그것이 '다소 성경을 통해 발휘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권위(the authority of the triune God, exercised somehow through scripture)'를 가리키는 축어로 이해될 때이다(p.23). 하나님이 모든 권위의 출처라고 바울은 말한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에 속한 그 모든 권위가 자신에게 주어졌다 말씀한다. 권위는 기록된 성경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며 '기록된 성경의 권위'라는 말은 성경에 직접 등장하는 용어도 아니라는 얘기다. 

성경은 하나님, 예수님, 세상과 우리들 자신에 대해 놀라운 진리를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리적인 양식을 따라 서술하지 않고 그 모든 것들을 융합시킨 하나의 스토리(story)로 가장 잘 표상되고 있는데 이것을 무시하면 어떠한 것도 얻지 못한다고 라이트는 강조한다(p.26).

'성경의 권위'는 교회의 사명, 성령의 역사, 미래의 궁극적인 소망, 그것에 대한 현실의 기대, 교회의 본질 등과 같이 다양한 주제들의 한 가지일 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문제는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목적 전체를 완수함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느냐다. 성경은 정보를 전달하는 단순한 계시(simply revelation) 이상이며, 하나님의 자기소통(divine self-communication) 이상이며, 계시의 기록(record of revelation) 이상이다(p.30). 

하나님은 단순히 땅주인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분이시며 심판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성경이 자신의 계시라고 할지라도 온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역이란 문맥 안에서 이해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권위라는 말은 그것을 하나님의 왕국이란 맥락에서 이해하면 정적인 권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단다. 즉 권위는 창조부터 심판과 회복에 이르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다(p.33). 

왕국과 관련해서, 라이트는 그 왕국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민족(Scripture-hearing people), 즉 부르심, 약속, 해방, 인도, 심판, 용서, 후속적인 심판, 새로운 자유, 새로운 약속 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민족이며 이러한 일련의 표현들이 구약 내러티브 전체의 요약으로 보았다. 즉 구약은 단순한 계시의 기록으로 축소될 수 없다는 말이다(p.39). 

성경적 권위의 완전한 기독교적 가르침의 뿌리는 이렇다. 즉 그 뿌리는 사명을 가진 공동체의 토양에 견고히 심겨지고, 하나님 왕국이란 소식을 가지고 세상의 권세들과 맞서며, 성령으로 새롭게 되고 활력을 얻고, 사도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자라나고, 인간적인 삶의 변혁에 있어서 열매를 맺으며 이것은 다시 온 우주를 회복하고 갱신하는 하나님의 계획의 시발점이 된다는 것에서의 권위이다. 교회는 처음부터 변형된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을 따라 만들어진 공동체며, 복음의 '말씀'을 그 충만한 차원까지 듣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초기의 교회는 구약에 기록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체화되고 온 세상에 공표되고 교회에 가르쳐진 하나님의 강력하고 유효하고 권위적인 말씀을 통하여 존재하게 되었고 생존하게 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다(50).

성경의 권위에 대한 기존의 건강한 이해는 성경을 통하여 백성들을 믿음으로, 거룩으로, 구원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다면, 성경이 온 세상에 하나님의 왕국이 잉태되는 수레라는 역동적인 개념을 놓쳤다는 것이다. 성경을 겨우 진위를 가리는 법정의 권위와 개인의 경건을 배양하는 사적인 권위로만 활용해 왔다는 것이 라이트의 진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성경의 권위를 이해하되, 성경을 통하여 새로운 언약 백성을 부르시고 그들을 교사와 설교자로 세우셔서 온 땅에 하나님의 왕국을 도래하게 하는 강력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통치로 이해하려 한다(p.64-65). 

성경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 라이트는 '극좌'와 '극우'의 기우뚱한 독법을 십여 가지 이상 열거한 이후에 '신선하고, 왕국 중심적인, 역사에 뿌리를 둔 해석'의 필요성을 말하면서 성경을 읽을 때에는 1) 전적으로 문맥적인(totally contextual), 2) 예전에 기반을 둔(liturgically grounded), 3) 개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진(privately studied), 4) 합당한 학문연구 충전을 받은(refreshed by appropriate scholarship), 5) 교회의 인정된 지도자에 의해 가르쳐진(taught by the church's accredited leaders) 독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p.127).

성경은 하나님이 당신의 왕국을 온 세상에 세우도록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고 인도하고 강하게 무장하는 열쇠이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무엇보다 그 자체가 예배의 행위여야 하며, 하나님의 총체적인 이야기와 능력과 지혜와 하나님의 아들을 축하하는 행위여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새롭게 되고 변혁되고 그 본연의 하나님 왕국 세우는 사명을 지향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예배라고 라이트는 강조한다. 

권위에 있어서 성경과 전통과 이성은 다른 소스가 아니다. 성경이 늘 중심이며 하나님이 주시고 성경적인 내용으로 채워진 이성은 교회로 하여금 성경의 명시적인 진술들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수단이기 때문이다(p.80).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왕국을 성취해 나가는 과정에서 믿음의 선진들과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에 대한 확인의 기억이다(p.104). 

본서는 성경의 정적이고 평면적인 이해에 안주하는 자들의 노곤한 상태에 찬물을 끼얹어 정신이 버쩍 들게 하는 통쾌함을 선사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전 우주적 역동성을 개인의 구원과 경건에만 제한하는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의 다소 '옹졸한 개인주의 성향'을 지적하며 하늘과 땅 전체를 포괄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긴 성경의 무한한 넓이도 강조한다. 진리가 기록되어 있기에 획득되는 법정의 진위 판권결이 성경의 권위가 아니라 성경을 모든 권위의 저자이신 하나님 자신의 권위가 발휘되는 수단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통찰력도 간과할 수 없는 본서 일독의 유익이다. 

그러나 아쉬운 면도 없지는 않다. 지면에 좁아서 그런지 중세나 종교개혁 시대의 성경 해석학적 특징을 싱겁게 다루고 말았다. 논지에 맞는 조각을 뜯어서 활용한 필요에 따른 인용의 흔적이 여기저기 발견된다. 그리고 '모든 성경은 문화적으로 조건지워 졌다(All scripture is culturally conditioned)'는 말과 그리스도 신성론도 문화적으로 조건지워 졌고 이신칭의 교리도 문화적으로 조건화된 결과'라는 말은 보다 충분한 부연설명 없이는 위험한 발언이다(p.128). 자칫 성경과 그것의 가르침을 문화의 산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약속과 성취라는 역사 전체의 한 시점을 문화로 간주하는 라이트의 신중한 표현이 없지는 않지만 인간의 역사적 문맥과 단절적인 진리의 계시가 성경에 등장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도록 안전을 위한 언사가 전혀 없었다는 점은 라이트 자신도 그런 부분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들게 한다. 

그리고 성경의 개인적인 해석 권한에 대한 퓨리탄의 강조가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주인이며 자기 영혼의 선장이라 주장하는 18세기 합리주의 사상으로 진입하는 길을 닦았다는 주장도 보다 정밀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라 사려된다(p.80). 하나님의 왕국 성취와 관련된 성경의 권위 이해가 과거에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라이트의 과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라이트와 같이 하나님의 왕국이란 개념에 성경해석 전체를 위탁한 경우는 드물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의 언약과 왕국이 차지하는 중요성은 어거스틴, 아퀴나스, 칼빈, 코케이우스, 오웬, 퍼킨스 등의 인물들 안에서도 얼마든지 발견되기 때문이다. 

라이트를 읽을수록 느끼는 것은 라이트의 글이 어떤 특정한 신학적 입장을 겨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신론과 이단들과 보수적인 신학과 자유주의 신학과 경향화된 신학들 모두를 두루두루 의식하며 글을 쓰기 때문에 그런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그의 글쓰기 스타일을 고려할 때에 개혁주의 신학의 엄밀성에 비추어 그 경계선을 벗어난 부분에 냉혹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그리 합당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독자와 무관하게 진리를 왜곡하고 그것이 성도들의 판단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는 부분까지 침묵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동시에 유명하고 잘 나가는 분일수록 그 자리에 걸맞은 비판의 강도가 사방에서 가해지는 것은 당한 것이라고 여기며 각오하는 것이 저자 자신의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향력이 크면 그에 따르는 견제도 그것에 버금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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