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7일 일요일

실천하는 원수사랑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 왔도다 (시35:13)

시인은 자신을 공격하기 위해 부당한 증언을 내뱉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사실 그들은 터무니 없는 주장과 질문으로 시인을 곤경에 빠뜨렸고 선을 악으로 갚아 시인의 영혼을 외롭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한 증인들이 투병할 때에 슬픔의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자신의 영혼을 괴롭게 하였다고 한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런 원수들을 자신의 친구와 형제에게 행하는 것처럼 존대했고 그들을 위해 슬퍼함에 있어서는 마치 어머니를 곡함같이 하였다고 진술한다. 이쯤되면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시인의 넘어짐을 기뻐했고 불량배를 동원하여 시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살까지 찢기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시인은 그들을 위한 기도의 입술을 다물지 아니했다.

그들의 치졸한 하대와 경박한 조롱은 거기에서 그치지를 아니했다. 그들은 심지어 모두가 함께 기뻐하고 축복하는 잔치가 벌어지는 곳에서도 망령되이 시인을 조롱하고 위협적인 이빨을 갈았다고 한다. 이러한 끝모를 원수짓도 시인을 꺾지는 못하였다. 시인은 모든 이들이 보는 공석에서 주께 감사하며 많은 백성 가운데서 주께 찬송을 올렸다고 한다.

결국 원수를 향해 밀어낸 그 기도가 자신의 품으로 돌아 왔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이런 고백을 들으면 대개는 이렇게 적용한다. 즉 결국 나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니까 원수들을 위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복을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전반적인 진술을 보면, 그는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위해 원수를 사랑하는 척 연출을 시도한 게 아니었다.

기도의 되갚음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원수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진심으로 위하고 진심으로 그들의 복을 구하고 형제와 자매처럼 가족을 대하듯이 진심으로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 원수를 향한 우리의 모든 바램이 되돌아 오는 것은 뒤따르는 결과였다.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은 뒷전으로 미루고 잿밥에 눈이 어두우면 안되겠다.

주변에, 어쩌면 가장 가까운 가족들 중에 원수보다 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한가위를 맞아 혹 나를 가장 부당하게 하대하고 비웃고 조롱하는 이들과 대면해야 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랑과 축복의 기회으로 여기심이 합당하다. 어쩌면 그때가 바로 가식과 연출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가 먼저 인사하고 존중하고 다가가고 친절을 베풀고 사랑할 기회이다.

하나님이 다 알고 다 보고 계시니까 이 세상에는 믿는 자들에게 어떠한 억울함도 존재하지 않는다. 주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은 자에게는 그 사랑이 다 소진되고 말라버릴 정도로 큰 부당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가 수장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죄를 독생자의 죽음으로 사함을 받은 자에게는 그런 주의 선하심을 따라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극단적인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시인에게 한 수 배웠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내용의 옳고그름 싸움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천하는 삶이라는 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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