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0일 수요일

하나님께 영광을 세세토록!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롬11:36)

하나님께 영영토록 영광을 돌리는 게 모든 것의 종착지다. 바울의 사유와 언어와 삶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지향했다. 그것을 지향하지 않으면 사유도 틀어지고 언어도 부실하고 삶도 불안하게 된다. 그것에 이르기 전까지는 생각도 온전하지 않고 언어도 온전하지 않고 삶도 온전하지 못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는 애초에 그렇게 지어졌다.

로마서 전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겨냥하고 있다. 어떤 구절은 마치 독립적인 언술인 양 단절적인 느낌을 주지만 독립된 의미를 부여하면 안되겠고 하나님께 세세토록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염원과 더불어 해석해야 한다. 그렇게 해석될 때 모든 구절은 의미론적 제자리를 찾아간다. 인간의 단절적인 의식으로 성경의 통일된 유기적 의미를 절단하면 안되겠다.

우리가 영원토록 영광을 돌려야 마땅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신성과 능력은 지으신 모든 만물에 분명히 알려지게 하셨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치도 않고 영화롭게 하지도 않은 인간의 타락과 부패에 대한 언급도, 율법에 대한 언급도, 하나님의 또 다른 의에 대한 언급도, 그리스도 예수의 영속적인 사랑에 대한 언급도, 예정론도 다 그 영광을 지향한다.

인생도 또한 전체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을 지향함이 마땅하다. 에베소서 1장도 밝히기를,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의 찬미가 되는 것은 만세 전부터 작정하신 것의 결론이라 한다.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거룩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만드시는 모든 구원의 서정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격에 합당한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세부적인 섭리이다.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 엉뚱하게 설정된 목표를 향해 이슬처럼 삽시간에 사라질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온 나날들이 적지 아니함을 확인한다. 선악의 분별이 다 그런 목표에 매달린다. 생의 희로애락 일체가 그런 목표에의 근접성을 근거로 출렁이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하나님의 눈에는 얼마나 애처롭고 안타깝게 여겨졌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기독교 진리의 가장 체계적인 진술을 제공하는 로마서의 교리론 끝자락에 '그에게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 것이라'는 고백이 등장하는 것이 나에게는 나의 사적인 일대기와 역사 전체와 모든 만물이 마땅히 지향하고 필히 지향하게 되는 목표가 무엇임을 모든 지력과 통찰을 다 동원하여 설파하고 싶어하는 바울의 본심으로 읽혀진다. 사도들의 공유된 본심이라 생각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세세토록 지향하는 것, 최상의 균형과 조화와 진실과 경건과 완전이 담보되는 생의 방향이다. 이러한 방향이 설정되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산제물로 내 몸을 드리고자 할지라도 마땅히 드러야 할 영적 예배와는 무관하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내 삶의 품격은 '하나님께 세세토록 영광이 있을 것이라'는 멘트에 힘써 맡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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