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4일 일요일

종교개혁에 대한 단상

종교개혁 기념하는 시기가 다가온다. 곳곳에서 펼쳐질 종교개혁 행사들이 기대된다.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 그 모든 결실들이 협력하여 주님의 교회에 은혜롭고 따끔한 선지자적 목소리가 들려지길 소원한다. 짧은 단상을 정리한다.

1. 종교개혁 신학은 교리 몇 조각의 수정이 아니라 종교 일체의 변화였다. 물론 표면상 구원론을 둘러싼 일이지만 보다 본질적인 면에서는 신본주의 v.s. 인본주의 사이의 대립과 교체였다. 종교개혁 필요성이 고조되는 상황이란 대체로 사소한 겉모양을 취하지만 이면에는 기독교 진리의 본질을 훼손하는 속임수가 도사리고 있다.

2. 종교개혁 신학은 교회 안에서의 개혁만이 아니었다. 중세의 유럽은 대부분의 국가가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았기에 교회의 개혁은 범국가적 변화에 영향력을 발휘했고 때때로 현저한 변화까지 수반했다. 이로 보건대, 16세기의 개혁은 교회의 물리적인 울타리를 넘어 온 세상의 회복까지 의식한 개혁의 시도였다.

3. 종교개혁 운동을 지나간 과거의 사건으로 추억하는 것은 종교개혁 정신의 현재적인 역동성을 제거하는 태도이다. 종교개혁 운동을 과거의 시간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무의식적 오류이다. 특정한 시대에 국한된 단회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 역사적인 접근법일 수는 있겠으나 종교개혁 사상의 핵심이 반영된 이해는 아니다.

4. 종교개혁 사상의 핵심 슬로건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제대로 온전히 개혁된 교회가 있었는가?" 만약 지금까지 제대로 온전히 개혁된 교회가 없다면 우리는 이 슬로건의 앞부분도 구현되지 않은 교회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직시해야 한다.

5. 이 슬로건은 진행형 개혁을 요청하고 있다. 먼저는 최소한 종교개혁 시대에 이루어진 개혁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렇게 개혁된 교회는 보다 성경에 가깝도록 이후로도 지속적인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이처럼 완료형이 아니라 진행형이 개혁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개혁에 있어서는 어떠한 지점에 이르러도 "다 이루었다" 탄성은 불가하다.

6. 개혁은 지금부터 시작해야 하고 나부터 시작해야 하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자신이 선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하나님의 진리 한 조각이 나의 인격에, 나의 생각에, 나의 행동에, 나의 삶에 새겨져 보다 온전한 증인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동원된 사람들의 머릿수가 개혁의 크기를 좌우하지 않고 구호를 외치고 떠들썩한 행사를 벌인다고 개혁이 미소를 보내는 건 아니다.

7. 개혁의 성패를 외부의 반응에서 찾으려는 태도는 반드시 개혁의 본질을 벗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긍정적인 추임새를 넣는다는 것이 교회의 올바르고 온전한 개혁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혁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의 개혁이다. 종교개혁 시대에는 자신의 목이 달아나는 개혁을 시도했고 개혁을 이루었다. 이단으로 정죄되는 길이었다.

8. 개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사람의 소원과 사람의 노력과 사람의 인내와 사람의 협력으로 산출하는 인위적인 결과물이 아니다. 주께서 한 시대에 부으시는 은혜의 결과이고 누군가가 그 개혁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의 무한한 은혜이다. 물론 교회의 회개와 정직과 겸손이 대체로 가까운 원인으로 동원되는 모양새를 취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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