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1일 수요일

정의 행하기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잠21:7)

악인은 정의를 싫어한다. 정의를 행하는 것은 더더욱 싫어한다. 그들의 범법은 정의 혐오자의 삶이요 일상이다. 그들의 범법으로 말미암은 피해의 일차적인 대상은 타인이다. 그러나 지혜자는 악인의 강포가 자기의 소멸을 낳는다고 가르친다. 범법은 자기 학대라는 이야기다. 그들은 범법으로 자멸을 자초한다. 정의의 불이행과 악인의 강포와 자신의 소멸은 이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정의를 사랑하고 정의 행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자기를 보존하는 첩경이다. 자기를 보호하는 것은 탈취로 부를 축적하고 주먹으로 원수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정의를 사랑하고 법을 준행하면 된다. 여기서 정의는 하나님의 판단이고 법은 하나님의 질서이다. 창조자가 내리는 판단과 설정해 놓은 질서는 나 자신의 보존만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해 주어진 복이다.

복을 복으로 알지 못하는 자들은 복이 아닌 복처럼 보이는 것에 가볍게 이끌린다. 복이 아닌 것을 추구하면 그게 불법이다. 그 불법을 좋아해서 이루어진 모든 행실도 불법이다. 그래서 복을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고 그 복을 추구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 복은 추구하지 않아도 문제이고 알아보지 못해도 문제이다. 다시 말하지만, 복은 하나님의 정의이고 그 정의를 추할 때에 우리에게 복이 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 유익이다.

사회는 물론이고 교회에도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훼손하고 내리신 판단을 거북하게 여기는 일들이 교회 곳곳에서 자행된다. 성도의 머릿수에 집착하고 헌금의 액수에 연연하고 교회의 성공적인 모양을 연출하고 하나님의 나라보다 교회의 건물 축조에 집착하고 사람의 부패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혼탁하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정의를 추구함과 무관하다. 그런데도 집단으로 앞다투어 매달린다.

교회를 위한다고 생각하며 실행했던 것들이 자멸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불법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이 그렇게도 시급하고 바르게 이해된 의를 준행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다. 악인의 강포는 겉으로 드러난 과격함 이전에 정의 행하기를 싫어함의 결실임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싫어함의 해법은 좋아함에 있다. 하나님의 정의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야 한다.

교회를 참으로 사랑하고 보존하여 세상의 영속적인 빛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이 내리신 판단과 정하신 질서로서 정의 행하기를 좋아하고 소원하고 실제로 실행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위해 신학한다. 인간적인 의의 세속적인 개념이 아니라 신적인 의의 성경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익히고 실행하기 위해서 신학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자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이 본분에 충실하지 않은 모든 행실은 악인의 강포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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