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종교개혁, 현대적 의미

개혁주의신학연구소: 종교개혁 세미나 특강 (2015.10.13)

종교개혁, 그 현대적 의미 (김영규 목사)에 대한 한병수의 개인적인 요약

1. 종교개혁 운동은 성경으로 돌아가되 성경 텍스트로 돌아가는 운동이 아니라 성경 안에서, 성경과 더불어, 성경을 통하여 자연과 인간의 진정한 본질과 자유 그리고 진정한 나 자신을 알아가는 "진실의 회복"을 추구했다. 성경 텍스트의 문헌적인 회복으로 좁혀서 종교개혁 운동을 이해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리고 "오직은혜" 및 "오직믿음" 개념도 종교개혁 운동의 고유한 공헌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어거스틴 신학의 회복으로 봄이 더 타당하다. 이는 "오직은혜" 및 "오직믿음" 사상의 공로를 종교개혁 인물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경건한 교부에게 돌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2. 루터는 종교개혁 깃발로 여겨지는 95개조 반박문 안에서도 밝혔고 자신의 저작들 전집의 서문에서 또 다시 강조했던 것으로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마치 종교개혁 정신의 결산처럼 강조했다. 이는 지식이 없고 명예가 없고 권력이 없고 재물이 없다는 이유로 제한과 압박과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그런 진정한 자유의 회복에 대한 외침이다. 루터의 이런 가르침을 따라 무지한 자의 배움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연약한 자의 치유를 위해 병원을 세우고, 가난한 자들의 생존을 위해 복지관을 세우는 일들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이것은 단순히 인간의 본성적인 공동체 의식의 발로가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는 올바른 내용으로 그 시대에 이루어진 일들이다.

3. 르네상스 운동에 대한 현대적인 이해의 문제점은 그 운동을 고대의 희랍 사상으로 돌아간 운동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사실 르네상스 운동의 발흥은 1277년으로 소급될 수 있다. 그리고 14세기에 잘 정립된 근대 과학의 DNA에 해당되는 실험정신 및 운동 개념들은 희랍철학 안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들이며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한계를 허물고 오류를 제거하고 극복하는 르네상스 운동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다시 말하면, 어거스틴 사상에 의한 희랍사상 극복이 바로 르네상스 운동의 요체라는 것이다. 물론 15세기 말렵과 16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원전으로 돌아가자"(ad fontes)는 구호는 고전의 문헌적인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대로의 사상적인 회귀는 아니었다.

4. 종교개혁 사상은 잘못 이해된 르네상스 운동의 극복이 아니었다. 자연의 있는 그대로를 조금 더 발견하고 인간의 본질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각성을 보다 진지하게 시도하고 자유의 본질에 대한 이해의 신장을 성경 안에서 성경과 더불어 성경을 통하여 선언했고 구현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의 르네상스 사상과 종교개혁 사상은 대립이나 대체의 관계가 아니라 운동의 결이 유사하다. 다만 종교개혁 사상은 르네상스 운동보다 성경의 보다 깊은 비밀을 발견하여 드러냈고 이로써 자연과 인간과 사회의 진실을 보다 부요하게 확증하고 실현했다.

5. 루터는 종교개혁 초기에 1) 자신은 열렬한 교황주의 학자였고, 2) 교황 자체를 싫어하고 부정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3) 오히려 교황을 높이면서 면죄부에 대한 오용을 지적했고, 4) 이웃에 대한 사랑에 더 강조점을 두고 붓길을 옮겼다는 점을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 고백했다. "관습은 저항하지 않으면 필연성이 된다"(consuetudo, si ei non resistitur, fit necessitas)는 어거스틴 문구처럼 극복하기 어려운 오랜 습관에 의한 오류들과 싸우되 홀로 싸웠으며, 그런 맥락에서 "신적인 법에 의거하여 교황은 교회의 머리일 수 없다"(papam non esse iure divino caput ecclesiae)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출처가 하나님이 아니면 마귀일 수밖에 없다는 필연"(quod enim ex Deo non est, necesse est ex diabolo esse)을 알면서도 오래동안 교황을 마귀에게 속했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였다. 루터 자신은 평화를 열망했고 임종의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실 것이라는 섭리론을 붙들었다.

6. 칼빈의 종교개혁 정신과 개혁주의 신학도 상당부분 루터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1530년을 기점으로 신학적 입장의 차이가 선명하게 확인되자 개혁주의 내에서 다양한 고백서가 작성되기 시작했다. 개혁주의 신학의 의미는 대체로 루터를 수용하되 루터가 이룬 자연과 인간과 자유와 자아에 대한 진실의 높이와 깊이와 길이와 넒이를 성경에 대한 보다 엄밀한 의존성과 더불어 더욱 진전시켜 나갔다는 것에 있다.

7. 종교개혁, 그 현대적인 의미는 종교의 개혁은 단순히 종교계 내부의 변혁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성경의 해석학적 신장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제도적인 관습의 철폐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과 인간과 사회와 온 인류에 성경이 말하는 보다 근원적인 진실을 부요하게 드러내고 누리고 구현하고 증거한 종교개혁 인물들의 행보가 우리의 시대에 우리의 행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 안에서 성경과 더불어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실을 탐구하고 발굴하고 정립하고 살아내고 드러내고 증언하는 것이 종교개혁 기념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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