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다 불쌍하다
곁으로는 멀쩡하게 보이고 행복하게 보이고 강하게 보이고 편하게 보이고 느긎하게 보여도 차마 발설할 수도 내색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프고 곤고한 사연들로 충만하다.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아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에 근거함이 타당하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 5번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구절이 갈등의 종지부를 찍는다. 이것은 조건문이 아니다. '긍흉히 여기는' 행위가 충족되면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말이다. 동일한 내용의 반복이다. 행위와 보상이 아니라 상태와 실상이란 구조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그 자체가 복이다. 긍휼 배후에는 인간의 불쌍함과 그런 실상을 인정하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긍휼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최적의 상태와 태도이다. 나아가 온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속성이 발휘되는 현장이다.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불쌍하다. 예외가 없다. 그러니 모두를 긍휼히 여기는 게 마땅하다. 쌈박질은 금물이다. 보복의 주먹을 펴서 화해의 악수를 청하라. 누구든지...언제든지...어디서나...
긍휼로 정의마저 덮는 거 아니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일리도 있다. 그건 다음에 생각하지...내 맘이니까 ㅎㅎㅎ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