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제자들은 요한이 그의 제자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처럼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먼저 두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답합니다. 첫째,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인간의 시선이 집중되는 곳에서 기도하는 가식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구제할 때에도 사람에게 들켜 인간적인 영광을 취하려고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 앞에서 행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 간구의 은밀한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면, 기도의 목소리가 타인의 귀로 들어가면 나도 모르는 본성적인 가식의 발동이 틈탑니다. 사람에게 보이도록 드러내고 사람에게 들리도록 기도하면 결국 마음의 순수한 동기에는 미세한 왜곡이 가해지고 하나님과 스스로를 속이는 '무의식적' 결과도 낳습니다.
기도는 경건한 삶을 증명하고 공표하는 공증서가 아닙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으시고 은밀한 중에 행하시고 갚으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일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중심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지극히 은밀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다른 어떠한 요소도 틈타거나 간격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창조자와 피조물이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도는 사람들의 눈과 귀에 노출되지 않도록 문닫힌 골방에서 가장 깊고 은밀하게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저도 늘 소리를 내어 사람에게 보이고 들리는 기도의 문화가 익숙한데 예수님이 제자에게 교훈하신 기도법에 의하면 변화가 필요할 듯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뿌듯함이 사람들의 눈에 관찰되는 방식으로 확인될 때 비로소 스믈스믈 차오름을 경험상 모르지는 않습니다.
강하게 부르짖는 합심기도 문화가 한국교회 성장의 중요한 요소요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에 변경을 가한다는 것이 교회에 위기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가진 분들이 계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 합심기도 사례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한국식 기도가 성경적 토대에 견고히 세워져 있다고 확신하는 분들도 아마 많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과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듣고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신다는 말씀도 합심기도 문화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선명하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해야 할 대목은 집단적인 기도가 기도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신 기도법은 골방에서 은밀하게 기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제 눈에는 한국교회 기도가 이 부분에서 다소 취약해 보입니다.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 앞에서 개개인의 신앙과 관계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뭉쳐서 기도하면 충분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이상한 포만감과 뿌듯한 군중심리 때문에 뒤따라야 할 개인의 신앙과 삶에서의 적극적인 성화의 의지와 실현이 희석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기도가 언어 현상에만 머무는 경향은 개인기도 문화에도 동일한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생활했던 미국 교회에는 집단적인 기도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에 개인적인 기도가 주된 문화로 굳어져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의 강한 신앙적 역동성을 느끼기가 쉽지는 않지만 성도 개개인의 삶에서는 기독인의 실천적인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기도를 언어만이 아니라 삶으로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과의 은밀한 개인적 관계성이 그들의 삶으로 결실하고 표출된 것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배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집단적인 기도와 개인적인 기도는 병행해야 하겠고, 개인적인 기도는 은밀한 골방에서 은밀한 중에 듣고 갚으시는 하나님께 올리되 개개인의 실천적인 삶이라는 보이는 기도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께 간구의 은밀한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면, 기도의 목소리가 타인의 귀로 들어가면 나도 모르는 본성적인 가식의 발동이 틈탑니다. 사람에게 보이도록 드러내고 사람에게 들리도록 기도하면 결국 마음의 순수한 동기에는 미세한 왜곡이 가해지고 하나님과 스스로를 속이는 '무의식적' 결과도 낳습니다.
기도는 경건한 삶을 증명하고 공표하는 공증서가 아닙니다. 기도는 보이지 않으시고 은밀한 중에 행하시고 갚으시는 하나님 앞에서의 일입니다. 하나님과 나의 중심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지극히 은밀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다른 어떠한 요소도 틈타거나 간격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입니다. 창조자와 피조물이 신비로운 연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기도는 사람들의 눈과 귀에 노출되지 않도록 문닫힌 골방에서 가장 깊고 은밀하게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저도 늘 소리를 내어 사람에게 보이고 들리는 기도의 문화가 익숙한데 예수님이 제자에게 교훈하신 기도법에 의하면 변화가 필요할 듯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뿌듯함이 사람들의 눈에 관찰되는 방식으로 확인될 때 비로소 스믈스믈 차오름을 경험상 모르지는 않습니다.
강하게 부르짖는 합심기도 문화가 한국교회 성장의 중요한 요소요 버팀목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문화에 변경을 가한다는 것이 교회에 위기를 초래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가진 분들이 계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 합심기도 사례가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한국식 기도가 성경적 토대에 견고히 세워져 있다고 확신하는 분들도 아마 많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과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이 하늘에서 듣고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신다는 말씀도 합심기도 문화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선명하게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해야 할 대목은 집단적인 기도가 기도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신 기도법은 골방에서 은밀하게 기도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제 눈에는 한국교회 기도가 이 부분에서 다소 취약해 보입니다.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면 하나님 앞에서 개개인의 신앙과 관계성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뭉쳐서 기도하면 충분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이상한 포만감과 뿌듯한 군중심리 때문에 뒤따라야 할 개인의 신앙과 삶에서의 적극적인 성화의 의지와 실현이 희석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기도가 언어 현상에만 머무는 경향은 개인기도 문화에도 동일한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생활했던 미국 교회에는 집단적인 기도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에 개인적인 기도가 주된 문화로 굳어져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의 강한 신앙적 역동성을 느끼기가 쉽지는 않지만 성도 개개인의 삶에서는 기독인의 실천적인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기도를 언어만이 아니라 삶으로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과의 은밀한 개인적 관계성이 그들의 삶으로 결실하고 표출된 것입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배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집단적인 기도와 개인적인 기도는 병행해야 하겠고, 개인적인 기도는 은밀한 골방에서 은밀한 중에 듣고 갚으시는 하나님께 올리되 개개인의 실천적인 삶이라는 보이는 기도도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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