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박물관에 마련된 고대 이스라엘 가정집>
누가복음 2장 7절에는 여관에(ἐν τῷ καταλύματι) 방이 없어서 아기 예수를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대부분의 영역본 성경(NIV, NASB, NRSB, ESV, NET)이 KJV를 따라 헬라어 원어(κατάλυμα)를 여관(inn)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카탈루마"는 "여관"이 아니라 일반 가정집이 방문객을 맞이하는 "객실"(guest room)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마가복음 14장 14절에서 예수님도 집 주인에게 자신이 제자들과 함께 식사할 객실을 언급할 때 "카탈루마" 단어를 쓰셨다.
그리고 누가 자신도 선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를 기술하며 거반 죽게 된 사람들을 데리고 간 여관을 표현할 때 "카탈루마"가 아니라 "판도케이온"(πανδοχεῖον)을 사용한다. 물론 다른 단어를 썼다고 해서 가리키는 실체가 다르다는 필연성은 없지만 개연성은 높다.
신약의 고대 아랍과 시리아 역본들을 깊이 연구한 케네스 베일리는 "카탈루마"가 중동의 맥락을 따라서는 "여관"으로 번역된 적이 없고 한 가정집의 "객실"을 뜻한다고 주장하며 영역본이 "여관"으로 번역한 것은 "서구적 관습의 산물"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1세기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계층별로 사이즈와 격이 달랐지만 짐승들의 공간, 집주인의 공간, 손님이 거하는 객실로 구분되어 있었다. 객실의 사이즈는 집의 1/3이나 차지한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환대가 읽어지는 대목이다.
사실 환대는 이미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야기가 잘 암시하고 있듯이 이스라엘 백성의 고귀한 문화였다. 그리고 애굽에서 오랜 나그네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이방 나그네를 환대해야 한다는 것은 모세의 시대에 심지어 율법으로 성문화된 법이었다.
마리아와 요셉은 여관에 기거할 곳이 없어서 마굿간의 구유에 예수님을 뉘이지 않았고 한 집에서 환대를 해 주었지만 이미 객실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차지되어 결국 짐승이 기거하는 마굿간에 가게 되었고 아기 예수는 구유에 뉘어질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의 마굿간 출산의 이유는 누가에 따르면 집주인이 마리아와 요셉을 박대하고 무시한 것이 아니라 "객실"에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이사 아구스도 시대에 이루어진 인구조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작은 베들레헴 도시에도 몰려 든 상황이라 충분히 이해된다.
이상은 오늘 칼빈의 라일 비어마 교수님의 아들 네이튼이 짧게 나눈 이야기에 조금 덧붙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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