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관에 아름다운 것으로 비치는 모든 것은...지성을 통해서, 감관의 중개를 거쳐서 물체들의 미가 파악되고 판단된다. 그런데 (아름다와 보이는 사물이 갖춘) 저 균등과 통일성은 공간 안에 분산되거나 시간 안에 변천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들은 단일하고 불변하는 균등의 척도에 의해서 판단되고 있다. 사각형의 광장이든 사각의 돌이든 사각형 책상이나 조그마한 사각의 보석이든 그밖의 무슨 물건이든 간에 그것이 사각형인 한, 우리는 사각형의 법칙에 준해서 판단한다. 이와 동일하게 부지런히 달려가는 개미의 걸음폭을 비례의 법칙에 의거해서 판단을 하듯이 점잖게 걸어가는 코끼리의 걸음폭도 우리는 동일한 비례의 법칙에 의거해서 판단한다. 그렇다면... 이 법칙, 모든
예술에 적용되는 이 법칙은 불변하는 것이다. 다만 그 법칙을 직관할 수 있도록 허용된
인간 지성은 오류의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예술의 척도가 되는 이) 법칙은
우리의 지성을 초월하는 것임이 분명하며, 이 법칙을 일컬어 진리(眞理)라고 한다." De vera religione, xxx.56.
우리 육체가 자리잡는 공간에 그것(단일성 혹은 진리 혹은 규범)이 자리잡고 있다면, 저 동방에서 물체들에 관해서 우리와 똑같은 식으로 판단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공간에 내포되는 것이 아니다. 판단을 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항상 거기에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것은 공간을 통해서는 그 어디에도 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능성을 통해서는 없는 곳이 없다”(nusquam est per spatia locorum et per potentiam nusquam non est). De vera religione,xxxii.60.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성과 진리 사이에, 인식 주체와 인식대상 사이에 설정되는 공간을 부인함과 아울러, 인간 지성과 진리 사이에 어떠한 매개체도 거부하고 “진리는 어떤 사물을 인식케 만드는 내면의 빛"(veritatem, id est lucem interiorem, per quam illum intellegimus)이라고 한 선언에서 그 의미를 더잘 드러낸다.
인간의 "추론이 이 진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오직 발견할 따름이다(non enim ratiocinatio talia facit, sed invenit).그러므로 [진리는] 발견되기 전에도 스스로 존재한다." De vera religione, xxxix.73.
우리 육체가 자리잡는 공간에 그것(단일성 혹은 진리 혹은 규범)이 자리잡고 있다면, 저 동방에서 물체들에 관해서 우리와 똑같은 식으로 판단을 하는 사람은 그것을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공간에 내포되는 것이 아니다. 판단을 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면 항상 거기에 함께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것은 공간을 통해서는 그 어디에도 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가능성을 통해서는 없는 곳이 없다”(nusquam est per spatia locorum et per potentiam nusquam non est). De vera religione,xxxii.60.
여기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성과 진리 사이에, 인식 주체와 인식대상 사이에 설정되는 공간을 부인함과 아울러, 인간 지성과 진리 사이에 어떠한 매개체도 거부하고 “진리는 어떤 사물을 인식케 만드는 내면의 빛"(veritatem, id est lucem interiorem, per quam illum intellegimus)이라고 한 선언에서 그 의미를 더잘 드러낸다.
인간의 "추론이 이 진리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고 오직 발견할 따름이다(non enim ratiocinatio talia facit, sed invenit).그러므로 [진리는] 발견되기 전에도 스스로 존재한다." De vera religione, xxxix.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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