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서 한 천사가 나타났을 때에 사가랴는 천사를 응시하며 놀라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천사는 사가랴의 두려움을 달래 주었고 그는 아들을 가지게 될 것인데 사가랴 자신이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부르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의 경우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가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를 찾아가 특이한 인사말을 건내었고 이에 마리아는 혼돈을 느끼며 인사말의 의미를 궁구했다. 이에 천사는 사가랴를 대하듯이 두려워 말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르라(καλέσεις)고 말하였다. 누가가 2인칭 단수 능동 미래형 동사를 썼다는 사실에서 누가복음 안에서는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가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명명하는 주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 1장에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나온다. 마리아를 중심으로 기록된 누가복음 본문과는 달리 여기서는 요셉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의로운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다. 정혼에 대해서는 히브리적 결혼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혼은 두 사람의 부모들에 의해 준비되고 약정이 맺어진다. 약혼이 성사되면 그때부터 남녀는 남편과 아내라는 법적인 관계가 생기지만 더불어 살지는 않고 각자의 가정에서 1년동안 생활한다. 이것은 서로의 순결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1년 안에 아내가 임신을 한다면 이는 필히 불법적인 관계를 맺었고 불결한 여자라는 증거이다.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을 했다는 말은 서로의 순결을 검증하는 기간 중에 있다는 말이겠다. 그런데 요셉은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불결한 여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배신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저렇게 부정한 여자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다윗의 자손인 요셉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의로웠고 신중했다. 아내에게 공적인 모독을 주지 않으면서 조용히 끊고자 하였다.
이러한 생각에 몰입되어 있는 그에게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 말라'는 말부터 꺼내었고, 마리아가 수태한 아들은 성령의 일이며, 아들을 낳으면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르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예수의 이름을 명명하는 주체가 요셉이다. 이는 아버지의 적법성이 보여준다.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은 이사야 7장 14절에 등장한다. 이 예언에 따르면, 여인이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녀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원문(קָרָאת)과 70인경(καλέσεις) 모두에서 "임마누엘" 이름을 부르는 주체는 여인이다.
그런데 마태는 임마누엘 이름을 "그들이 부를 것이다"(καλέσουσιν)고 기술한다. 즉 불특정 다수가 예수님을 임마누엘로 명명하는 주체로 묘사되고 있다. 마태가 의도한 "그들"은 누구일까? 바스마 교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뜻한다고 말한다.
누가는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πατὴρ)로 표현했고 마리아도 요셉에 대해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여전히 요셉과 마리아가 모두 예수님의 명명자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와 동일한 사람의 자녀이되 구별되신 분임을 확인하게 된다.
마태와 마가에 의하면, 예수라는 이름의 작명권은 요셉과 마리아가 동시에 가진다. 예수님이 동정녀 출생이란 점과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자녀라는 점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복음서 기록자의 신중함이 돋보인다. 동시에 임마누엘 이름은 모든 백성의 입술에 허락된다.
임마누엘(Immanu-el, 우리와 함께-하나님), 단어 자체에 이미 이 이름을 명명하는 자가 "우리"라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이사야의 문맥에선 "다윗의 집"(בֵּ֣ית דָּוִ֑ד)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일컫는다.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
예수님의 경우는 양상이 조금 다르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가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를 찾아가 특이한 인사말을 건내었고 이에 마리아는 혼돈을 느끼며 인사말의 의미를 궁구했다. 이에 천사는 사가랴를 대하듯이 두려워 말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마리아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르라(καλέσεις)고 말하였다. 누가가 2인칭 단수 능동 미래형 동사를 썼다는 사실에서 누가복음 안에서는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가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명명하는 주체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 1장에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나온다. 마리아를 중심으로 기록된 누가복음 본문과는 달리 여기서는 요셉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전개한다. 의로운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다. 정혼에 대해서는 히브리적 결혼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혼은 두 사람의 부모들에 의해 준비되고 약정이 맺어진다. 약혼이 성사되면 그때부터 남녀는 남편과 아내라는 법적인 관계가 생기지만 더불어 살지는 않고 각자의 가정에서 1년동안 생활한다. 이것은 서로의 순결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1년 안에 아내가 임신을 한다면 이는 필히 불법적인 관계를 맺었고 불결한 여자라는 증거이다. 요셉과 마리아가 정혼을 했다는 말은 서로의 순결을 검증하는 기간 중에 있다는 말이겠다. 그런데 요셉은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불결한 여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배신감에 휩싸였을 것이다. 저렇게 부정한 여자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다윗의 자손인 요셉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의로웠고 신중했다. 아내에게 공적인 모독을 주지 않으면서 조용히 끊고자 하였다.
이러한 생각에 몰입되어 있는 그에게 천사가 나타나, '두려워 말라'는 말부터 꺼내었고, 마리아가 수태한 아들은 성령의 일이며, 아들을 낳으면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부르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예수의 이름을 명명하는 주체가 요셉이다. 이는 아버지의 적법성이 보여준다.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은 이사야 7장 14절에 등장한다. 이 예언에 따르면, 여인이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녀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라고 하였다. 히브리어 원문(קָרָאת)과 70인경(καλέσεις) 모두에서 "임마누엘" 이름을 부르는 주체는 여인이다.
그런데 마태는 임마누엘 이름을 "그들이 부를 것이다"(καλέσουσιν)고 기술한다. 즉 불특정 다수가 예수님을 임마누엘로 명명하는 주체로 묘사되고 있다. 마태가 의도한 "그들"은 누구일까? 바스마 교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에 국한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을 뜻한다고 말한다.
누가는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πατὴρ)로 표현했고 마리아도 요셉에 대해 동일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여전히 요셉과 마리아가 모두 예수님의 명명자로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와 동일한 사람의 자녀이되 구별되신 분임을 확인하게 된다.
마태와 마가에 의하면, 예수라는 이름의 작명권은 요셉과 마리아가 동시에 가진다. 예수님이 동정녀 출생이란 점과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자녀라는 점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복음서 기록자의 신중함이 돋보인다. 동시에 임마누엘 이름은 모든 백성의 입술에 허락된다.
임마누엘(Immanu-el, 우리와 함께-하나님), 단어 자체에 이미 이 이름을 명명하는 자가 "우리"라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이사야의 문맥에선 "다윗의 집"(בֵּ֣ית דָּוִ֑ד)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일컫는다.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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