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시49:20)
깨달음이 존귀도 무용하게 만든다. 깨달음이 없으면 존엄한 인간도 멸망의 짐승과 같아진다. 여기서 깨달음은 구속과 관계된 것이다. 시인은 생명을 구속하는 비용이 너무도 막대하여 충분히 지불할 위인이 아무도 없다고 단언한다.
구속의 무한한 고비용 때문에 자신의 부를 의지하고 부요함을 자랑하는 자들도 자신들의 형제를 구속하지 못함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구속도 해결하지 못한다. 이러한 깨달음이 없으면 짐승의 운명과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시인은 사람들이 부를 축적하고 명예가 하늘까지 치솟아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진술한다. 인간이 아무리 부하고 영예를 블랙홀 수준으로 흡입한다 할지라도 구속과는 무관한 죽음으로 생이 종결되기 때문이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로 인해 온 세상이 통째로 수장되는 댓가를 지불해도 여전히 마음의 도모하는 바가 어릴 때부터 악하다는 인간의 죄성은 제거되지 아니했다. 이는 구속의 고비용을 얼추 짐작할 수 있는 가장 장엄한 비극이다.
땅에서는 어떠한 수단과 방편을 동원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획득하지 못하는 구속의 비밀을 깨닫지 못한다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아진다. 그렇다고 우리는 복음을 믿었고 구속을 받았으니 안심해도 되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구속을 받았다고 믿는 분들이 부를 축적하고 명예를 추구하는 범부들의 패턴을 선망하고 그 궤도에 삶을 안착시킨 경우가 적지 아니하다. 사는 동안에 자기를 복되게 하고 자기를 노래하고 스스로를 선대하는 생의 허망함에 무지하다.
구속의 존귀에 이른 이후에도 멸망하는 짐승과 같아지는 길을 걸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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