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0일 토요일

적당한 무지의 제맛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잠20:24)

이 문구는 '사람의 걸음이 주께로 말미암는 것'이라는 말 이후에 등장한다. 즉 사람의 행보 혹은 인생이 하나님에 의해 규정되고 있기에 자신의 미래가 사람에게 맡겨지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지식도 인간에게 속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일대기는 인간을 비롯한 어떤 피조물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으며, 땅에 기초한 미래사의 올바른 예측은 가능하지 않다. 이게 성경이 가르치는 인생에 대한 이해의 기본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이해의 정도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정도와 비례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하나님이 배제된 어떠한 삶의 뜻풀이도 헛소리 내지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사실 헛소리와 속임수는 지성적인 고상함의 격 갖추는 일에 민첩하고 꼼꼼하고 성실하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매끄러운 논리력과 치밀한 꼼꼼함과 감미로운 설득력을 구비했다 할지라도 회칠한 무덤의 수준을 넘어가지 못한다.

지혜자는 인생이 신적인 섭리의 손아귀에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인생길을 하나님이 계시하신 섭리만큼 알고 적당히 무지한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에 대한 무지에 머물라는 것도 아니고 그 무지에 정당화나 면죄부를 발부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점궤나 사술의 신공을 맹렬히 발휘하는 '영험한' 이들에게 두툼한 복채를 투척하며 인생의 판도라 상자를 개봉해 달라고 매달릴 것을 주문하는 것도 아니다.

위에 언급된 본문의 의도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으라는 것이다. 인생의 근원이요 보존자요 주관자요 심판자인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캄캄한 무지 속에서 막막한 인생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무지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갈증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깊을수록 인생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장래사에 대해서도 그만큼의 깊은 평강과 위로를 얻는다. 하나님과 밀착되면 될수룩 인생의 윤택과 부요함도 그만큼 증대된다.

사람의 길이 가리워져 있음은 하나님의 심술이 아니라 자비로운 섭리이다. 무지는 수치와 두려움의 근거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밀착에의 초청이다.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에게 부분적인 앎과 희미한 지식이 주어진 것도 이러한 섭리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지식과 논쟁의 세계가 아니라 경외와 경탄의 자리로 인도한다. 나는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 오히려 여호와 경외를 위해 미래는 적당한 무지의 베일에 가리워져 있어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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