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안수에 즈음하여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궤변들과 모든 오만한 것들을 다 파하며 모든 마음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예수께 복종하게 한다"(고후10:5).

처음 목회자의 길로 접어들 무렵 나의 정신세계 전반을 꿰뚫은 말씀이다. 학창시절, 철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경제학과 법학과 의학과 신문방송학과 정치학을 조금 배우면서 관심의 촉수는 언제나 제반 학문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느냐의 여부를 더듬었다. 물론 '여기가 좋사오니' 탄성을 지르면서 안주하고 싶은 일반학문 내에서의 매혹적인 주제들에 홀린 것도 그 수효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분야든 우주 전체와 지극히 미세한 구석까지 두루 아우르는 하나님의 속성과 절대적 주권에 대해 감히 입을 다물어 침묵하는 학문은 하나도 없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심지어 악한 것들도 악한 날에 적당히 지으셔서 아름답게 하셨다는 지혜자의 기록처럼 직접적인 방식이든 간접적인 방식이든 하나님의 속성과 행하시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 선포되고 결코 가리워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하나님 아는 지식을 대적하는 교묘하고 은밀하고 능란한 거짓과 속임수의 온갖 원흉들이 모든 분야에서 우매자의 영혼을 삼키려고 끈적한 군침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도 감지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 거짓과 속임수는 늘상 높아지려 하고 이미 드높아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다른 대체물이 없다.

목회자의 길에 대한 결정의 기로에 서 있던 나에게 판단의 목덜미를 당기며 가장 집요하게 저지한 망설임의 주범은 참과 거짓의 문제였다. 대상과 주체의 진실성을 추구하고 싶었다. 지금 내뱉은 말은 시공간이 변하면서 얼마든지 거짓과 오류로 간주될 가능성에 늘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과 땅의 체질이 녹아져 없어진다 할지라도 시공간적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대상의 진실성은 말씀만이 보증한다.

물론 인간 주체의 진실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확보되지 못한다. 만물보다 심히 부패하고 거짓된 인간의 마음은 수리나 치료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 차원은 일찍이 첫 조상의 불순종에 의해 벗어났다. 자신을 응시하면 할수록 탄식과 좌절만 증폭된다. 그냥 죽고 거듭나야 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 예수와의 연합만이 주체의 진실성을 보증하는 유일한 소망이다.

하나님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권세와 신분과 계층과 지식과 관습과 전통과 성향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앞에 복종의 무릎을 꿇게 하겠다는 목회적 다짐은 인간의 능력과 결단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바울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달린 문제다. 우리가 규정한 대적과, 우리가 마련한 방식과, 우리가 결정한 시점과, 우리가 결의한 인간적인 힘의 합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길을 실컷 질주하다 때가 이르러 주님께로 돌아가면 좋겠다는 소망으로 안수의 날을 맞이한다. 이렇게도 못나고 부족하고 연약하고 무지하고 비천한 자를 부르시는 자비의 하나님께 진실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나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주변에서 묵묵히 사랑으로 포용해 준 아내와 아이들과 지인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