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22일 월요일

창조의 메시지

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도다 (시113:4)

비행기를 타고 고공으로 올라갈 때마다 놀이기구 타는 즐거움이 아니라 높은 곳은 사람이 머물 곳이 아니라는 낯선 느낌과 마주친다. 하나님은 우리 몸의 일부로서 발을 지으셨다. 발의 창조는 인간이 접지하여 살아가는 존재라는 암시이다. 이는 인간이 높을수록 불안하고 아찔하며, 낮은 곳일수록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과도 하모니를 이룬다. 이것이 발의 목소리다.

창조는 하나님의 첫번째 계시이다. 시인이 신묘막측 범주로 분류한 인간의 지으심은 그 자체가 이미 메시지다. 시인과 유사한 맥락에서 바울도 지어진 모든 만물이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전하는 메시지의 보고라고 지적한다. 나아가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읽어내지 못하고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는 인간의 미련함과 우매함도 꼬집는다.

모든 만물과 역사가 전하는 메시지는 어떤 식으로 읽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여호와가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도다'는 싯구는 우리에게 '비교급 인식론'을 제안한다. 즉, 역사와 문명이 아무리 화려하고 지고해도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높으시며 하늘이 제 아무리 끝없이 높더라도 그것을 지으신 분은 그것보다 더 높으시다.

그래서 하나님과 같이 높은 곳에 앉으신 이가 없다고 시인은 선언한다. 그러나 만물과 역사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그것들과 하나님 사이에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격차에서 종결되지 않는다. 메시지의 방점은 그러한 격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세우시고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세우시는" 분이라는 사실에 있다.

역사와 만물은 땅의 어떠한 것으로도 표상할 수 없도록 지고한 하나님의 실체(essentia)에 대한 지식도 증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곳에서 언제나 만물과 역사를 붙드시며 신실한 개입으로 주도하사 지고한 가치를 산출하는 계기와 수단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역사(opera)에 대한 지식도 증거한다. 자연과 성경이 계시하는 내용이 다르지가 않다던 바빙크의 지적은 감미롭다.

일평생 보아도 보지 못하고 무시로 들어도 듣지 못하고 항상 마음으로 생각해도 깨닫지를 못하는 이들에게 시인의 노래는 엄중한 책망과 애틋한 도전이다. 지고한 분이시나 천지에 충만하사 늘 거기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알고 감사하며 영화롭게 하는지도 돌아보는 이 아침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한 만물과 역사의 부지런한 외침에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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