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24일 화요일

증인의 영광스런 직무

내 증인이 되리라 (행1:8)

증인은 영광스런 소명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증인을 증인으로 말미암아 증거되는 주체의 불유쾌한 들러리 정도로만 생각한다. 이는 통념의 올가미에 걸린 분들의 삐딱한 발상이다. 증인의 개념에 들러리의 요소가 없지는 않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긍의 고개를 급하게 끄덕인다. 그러나 의미의 부분이 전부로 과장되는 순간 증인의 본의는 멀어지고 흐려진다. 증인은 그로 말미암아 증거되는 내용이 고귀하고 장엄하고 거룩하고 영원하고 공의롭고 클수록 그에 버금가는 유익의 수혜자다.

증인은 분명 보고 들으며 경험한 내용을 전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도들은 그런 증인이다. 당시 사도들의 대표격인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관원들 앞에서 표명했다. 여기에서 나는 증인에 대해 싫어하는 사도들의 내색을 감지하지 못하겠다. 오히려 그들은 증인의 직무에 필연성과 당위성을 부여한다. 자신의 존재감을 증인의 직무와 결부시켜 이해한다. 그래서 당시 예수의 이름을 발설하면 죽음의 위협이 가해지던 상황 속에서도 증인이길 중단하지 아니했다.

바울도 그런 증인이다. 바울에 대한 아니니아 증언에 의하면,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의 뜻을 알리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라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고 한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의 목격자다. 바울도 다른 사도들과 같이 증인의 사명에 부득불 할 일이라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엄중한 의무감에 떠밀린 비자발적 증인됨이 아니었다. 자신의 증인됨은 "자의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나아가 바울은 자발적인 증인됨을 넘어 이 사명을 완수함에 있어서는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를 아니했다. 자신의 전부를 증인의 직무에 걸었다는 이야기다. 이는 증인의 본의를 제대로 파악한 자의 비장한 모습이다. 증인이 된 자에게는 자신의 생물학적 목숨보다 증인의 직무가 더 소중하다. 그냥 사는 것보다 죽더라도 증인이 되는 것이 더 유익하다.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도 수단으로 상대화될 정도라면 증인의 직무가 보상하는 유익 그 이상을 제공하는 것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세상에 보여주는 의미와 가치의 분량만큼 대우를 받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회적인 몸값을 높이려고 돈도 벌고 지식도 축적하고 노하우도 정리하고 다양한 경험도 확보하고 인맥도 확대하고 기발한 통찰도 발굴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기껏해야 인간문맥 안에서의 도토리 키재기다. 하지만 주님의 증인이 되면 문맥이 달라진다. 우리가 주님을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서 하나님의 속성과 영광과 위엄과 뜻과 계획과 섭리가 세상에 펼쳐지는 게 증인의 모습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면 열방이 그들에게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라 여길 것이라고 했다. 아브라함 경우에는 열국의 왕들이 그에게 동맹의 손을 뻗으며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는 이유를 밝혔다. 이삭의 경우도 동일했다. 열국이 그에게 찾아와 화친을 청한 이유도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다. 요셉이 받은 보디발의 총애와 간수장의 은총도 그에게서 하나님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증인의 삶이 이러했다.

우리를 통하여 우리가 드러나지 않고 하나님이 증거되실 때가 우리에게 가장 큰 영광과 유익이 제공되는 때다.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증거하는 일에 죽도록 수고해야 한다는 마냥 희생적인 뉘앙스가 없다.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가장 큰 영광과 유익이 주어지는 상태와 방식을 귀띔하신 듯하다. 우리의 인생에서 주님이 증거되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구현하고 더 큰 의미를 산출하는 다른 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타나면 날수록 우리에게 영광이고 유익이다.

그러므로 증인의 직무를 중단하는 것은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는 바울의 고백은 과장이 아니겠다.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나에게서 복음이 증거되는 경우 "복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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