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6일 월요일

성경의 경제학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잠15:6)

"소득"이란 어떤 것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이전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나아가 이로 말미암은 능력과 자유의 확대로도 해석된다. 우리에게 어떤 것이 주어지면 혹은 취득되면 유쾌함이 정상인데 악인은 그렇지가 않다고 지혜자는 주장한다. 일반 사람의 생각에 소득과 고통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의 조합이다. 하지만 악인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다. 이는 선한 자들의 상황과는 심히 대비된다. 선한 자에게는 능력과 부와 지혜와 지식이 자랄수록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도 더욱 크게 기뻐하고 환영한다. 그러나 악인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지식에 있어서 자유가 확대되면 될수록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그들에게 가해지는 위협은 증대된다.

지혜자는 우리에게 소득 자체의 증감보다 취득자의 상태가 더 중요함을 교훈한다. 우리는 대체로 우리의 선악 상태보다 소득의 유무에 더 예민하다. 지혜자는 지금 우리의 그러한 일그러진 관점과 우선순위 상태를 교정하려 한다. 악할수록 부가 고통이고 선할수록 부의 유무에 좌우되지 않는다. 마음의 선악이 선행하고 삶의 빈부가 뒤따른다. 이것이 뒤바뀌면 가치는 왜곡되고 질서는 전도되고 도모와 삶과 행실의 방향은 역행한다. 어떤 이에게는 빈곤이 유익이고 무지가 유익이고 중지가 유익이다. 그러나 다른 이에게는 부가 유익이고 지식이 유익이고 활동이 유익이다. 동일한 사람의 경우에도 어떤 때에는 부가 유익하고 어떤 때에는 빈곤이 유익이다.

본문은 우리가 악인이 아니라는 착각에 우리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중생자라 할지라도 때에 따라서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에게 주어진 지혜와 교훈의 말씀이다. 우리는 삶 속에서 과분한 소득과 부당한 손실을 골고루 경험한다. 소득이 기쁨인 것만도 아니고 손실이 고통인 것만도 아니다. 우리가 선할 때로는 소득이 우리와 다른 모두에게 유익이며, 악할 때에는 소득이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고통이다. 악할 때에는 소득보다 손실이 고통의 제거이며 스스로를 성찰하게 만들기에 유익이고 기쁨이다. 소득이 고통이지 않으려면 선한 됨됨이가 우선이다. 악한 자에게는 소득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의 경제학적 원리이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재화나 화폐의 흐름보다 인간의 됨됨이가 기준이다. 하나님의 경제학은 시장경제 개념과는 판이하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경제활동 주체로 시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거기에 어떠한 강제성도 부과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시는 경제의 주체시다. 사람이 마음과 행위로 경제의 흐름을 결정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인간의 됨됨이를 향한 경제의 본질은 하나님이 정하신다. 하나님이 보시는 화폐와 재화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인간에게 궁극적인 유익을 제공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수단은 언제나 수단적인 기능 이후에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상이다.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최상의 기능이다. 우리가 악할 때에는 손실이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경제적인 후퇴지만 속으로는 됨됨이의 진전이다. 하나님의 뜻은 이처럼 경제적 흥망이 좌우하지 못한다. 오히려 어떠한 경제적인 상황도 하나님의 뜻에 이바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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