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0일 월요일

니체 [선악의 저편]을 읽고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무진장 잼나게 읽었다. 때때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생각의 소유자와 대면할 필요가 있다. 니체가 대단히 그런 인물이다. 정말 솔직하고 대담하고 거칠며 잘난척이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하나님 '죽은' 인생의 실상을 글로 고스란히 배설한 인물이 바로 니체라고 생각된다.

그의 [선악의 저편]은 선악의 개념보다 더 '본질적인' 인간의 본성 '저편'을 과격한 언사로 묘사하되 시어의 음율을 가미한 책이다. 그는 '모든 생명을 위한 더 높고 근본적인 가치는 가상에, 기만에의 의지에, 이기심에, 욕망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미화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경건을 비롯하여 '인간은 얼마나 기묘한 단순화와 위조 속에서 살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모든 가상들을 제거하면 인간의 고귀한 영혼이 나오는데 그것은 '힘에의 강하고 이기적인 의지'란다.

그리고 강하고 독립되고 특이하고 지배적인 그 고귀한 영혼을 소유해야 할 '유럽 종족의 열등화'를 초래한 주범으로 기독교를 지목한다. '강한 사람을 부서지게 만들고 커다란 욕망을 병들게 하고 아름다운 행복에 의문을 품게 하고 모든 자기 주권적인 것, 남성적인 것, 정복적인 것, 지배에 대한 갈망, 최고로 성공한 유형이라 할 인간의 모든 고유한 본능을 불활실성, 양심의 궁핍, 자기 파괴로 꺽이게 하는 것, 지상적인 것에 대한 지배욕을 지상적인 것에 대한 증오로 역전시킨' 원흉이 바로 교회라고 주장한다.

'신 앞에서의 평등'이란 사상적 탈선이 유럽의 운명을 지배해 왔다는 사실을 개탄하며, 니체는 '인간의 새로운 위대함'을 찾아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새로운 미답의 길'을 떠나잔다. 위대함의 개념은 '고귀한 것, 독자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지, 달리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홀로 선다는 독립성,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자율성' 등이라고 역설한다. 하여 '천박한 평등'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사상적 굴레 속에 있는 유럽 문명에서 가능한 한 '가장 고독한 자, 가장 은폐된 자, 가장 격리된 자, 선악의 저편에 있는 인간, 자신의 덕의 주인, 의지로 충만한 자가 가장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은 너무도 탁월하고 잘난 인간이란 민망한 소리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뻔뻔하게 쏟아낸다.

그가 생각하는 철학자의 시급하고 궁극적인 과제는 '자연적 인간(homo natura)이라는 저 영원한 근본 텍스트 위에 서툴게 써넣고 그려놓은 공허하고 몽상적인 많은 해석과 부차적인 의미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여성이 새로운 권리를 자기 것으로 취하고 '주인'이 되고자 하고 '여성의 진보를 자신들의 깃발에 적고 있는 동안 놀라울 만큼 명확하게 반대의 일' 즉 여성의 퇴보가 진행되는 셈이라고 주장한다.

이것 외에도 [선악의 저편]에는 다양한 분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불편한 언술들로 충만하다. 너무 좋아하는 책을 보며 유사한 생각과 주장만 접하다 보면 세상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습성에 빠진다. 성경도 그렇게만 본다. 하여 이따금씩 귀에 거슬리는 험하고 거친 목소리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난 후에 성경을 읽으면 예전에 보이지 않던 진리의 뽀얀 속살이 시야에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이런 차원에서 니체의 [선악의 저편] 일독을 권한다. 게다가 김정현의 니체 번역은 탁월하다. 원문과 대조해 보지는 않았지만, 언어선택 감각이 뛰어난 분이라 글맛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할 정도니까.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