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18일 일요일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1:14)

신앙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시금석은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텍스트와 문자와 종이로 이루어진 언어적 문헌적 현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성경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의 부재로 인해 빈공간이 마련되면 반드시 다른 인위적인 태도들이 슬그머니 그리로 잠입한다. 이로 말미암은 성경의 인간화는 필연적인 결과겠다. 어떻게 해야하나?

성경을 묘사함에 있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란 문구를 사용한다. 정확하고 정당하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성경과 그리스도 예수를 모두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성경을 대하는 태도는 그리스도 예수를 대하는 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라고 한 요한의 기록이 이를 변호하는 듯하다.

말씀의 본질과 속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다. 성경은 정보 꾸러미가 아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으며 운동력이 있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말씀 앞에서는 만물이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게 된다고도 했다. 마치 예수님을 묘사하는 듯하다. 예수님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시며, 그의 십자가 앞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실체가 영혼의 차원까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예수님을 대면하는 일과 다르지가 않다. 예수님 자신이 밝히신 것처럼, 모든 성경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성경에는 예수님과 결부되지 않은 어떠한 텍스트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의 실제시다. 문자가 아니라 영이시다. 성경을 예수님 대하듯이 읽을 때에 모든 구절의 가장 정확한 의미와 조우하게 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이며 동시에 말씀의 성취시다. 예수님을 배제하면 말씀이 우리에게 의도한 의미와 가치의 성취는 요원해질 것이다.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읽더라도 예수님이 고려되지 않으면 아무리 어원과 문법과 문맥과 시대적 맥락을 골고루 존중해도 여전히 인위적인 해석의 어중간한 중턱에서 불법적인 안식을 취하는 부작용이 불가피할 것이다.

물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과 예수님 자신은 서로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대하는 태도가 곧 하나님 자신을 대하는 태도듯이 성경을 대하는 태도는 그것이 가리키는 말씀이신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대하듯 성경을 대하면 성경의 모든 구절들이 예수님에 대해 입술을 열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렇다고 성경을 신주단지 모시듯 신령하게 여기는 '성경주의' 노선을 밟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만이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일그러진 태도와 자세를 가장 올바르게 교정하는 최고급 해법이 되신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말씀은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대해야 함을 교훈하는 성경의 가장 강력한 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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