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일 금요일

속사람의 새해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6)

본문을 둘러싼 문맥에는 다양한 대조들이 의미의 얼개를 제공한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과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경한 것"과 "중한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잠깐"과 "영원함" 등의 대조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대조들은 본문에 등장하는 겉사람의 후패와 속사람의 항구적인 혁신과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다. 즉 "어두운 데," "질그릇," "우겨쌈," "답답한 일," "박해," 거꾸러 뜨림," "죽음," "환난," "경한 것," "잠깐," 그리고 "보이는 것" 등은 겉사람과 관계하고 이러한 것들과 쌍을 이루는 나머지는 모두 속사람과 결부되어 있다. 겉사람은 어두운 곳이다. 우겨쌈과 답답한 일과 박해와 거꾸러 뜨림과 죽음과 환란을 당한다. 그러나 속사람은 우겨쌈을 당하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아니하며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망하지 않으며 예수의 생명을 나타내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으로 설레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속사람과 관계된 긍적적인 내용들이 겉사람과 결부되길 소원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다. 새해에도 겉사람은 다양한 방식으로 후패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강요하는 겉사람의 물리적인 후패를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상황적인 후패도 사람이 임의로 조절하지 못한다. 사실 새해는 겉사람을 위하지 아니한다. 겉사람 편에서는 새해가 오히려 거북한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간다. 여기서 바울은 겉사람의 후패와 속사람의 혁신 사이에 묘한 인과적 관계성을 설정하고 있는 듯하다. 즉 겉사람의 후패가 속사람의 혁신을 이룬다는 듯.

나는 실제로 그렇다고 생각한다. 겉사람의 후패가 속사람의 혁신에 기여하고 있음을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는 진술로 승인하고 있다. 이르게는 이미 다윗의 시어에서 분명히 지적된 사상이다. 그는 고난 당하였던 것이 유익인데 그 이유가 이전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몰랐으나 고난 이후에는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 하였고, 바울은 죽음도 유익임을 밝히면서 이러한 사상에 신앙적인 방점을 찍는다.

겉사람의 거듭되는 후패와 속사람의 지속적인 혁신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서 바울은 우리에게 보이는 겉사람의 후패와 보이지 않는 속사람의 혁신 중에서 택일을 촉구하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택하라고 권고한다. 그러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겉사람의 후패도 가볍고 찰라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사실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 그 자체는 그렇게 가볍지도 않고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쉽게 여겨지는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쉬게 하시고 멍에를 쉽고 가볍게 만드신 주님의 은혜 덕택이다.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당하는 환난이 잠깐이고 경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쩌면 최면이나 가상이 아니라 실상이다. 보는 눈과 듣는 귀에 근거하면 환난은 참으로 괴롭고 고단하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진정한 실상은 가볍고 일시적인 환난이다. 어디에 의존할 것인가? 보이는 환난을 눈으로 주목하면 인생은 죽는 것보다 사는 게 고단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광을 믿음으로 응시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되고 어떠한 환난도 가볍고 일시적인 것일 뿐임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눈은 하나님의 창조를 누리는 수단이지 의지의 대상은 아님을 명심하자.

해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다고 전도자는 선언한다. 새해에 걸맞은 새로움을 땅에서는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새해'라는 말은 겉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날로 새롭게 되는 속사람과 관계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항구적인 새로움이 가능하다. 이러한 속사람의 지속적인 혁신은 그리스도 예수의 온전한 형상을 닮아가는 여정을 가리킨다. 혁신의 도상에는 무수한 환난들이 등장할 것이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생명이 역사하고 증거되는 가볍고 일시적인 계기들일 뿐이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대한 갈증만 증폭시킬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새해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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