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7일 월요일

2017학년도 입학식 기도

한병수 교수 (교목/ 대학교회 담임목사)

전주대학교를 은혜와 진리로 세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사랑하는 2017년도 새내기 학우들이 캠퍼스 생활의 첫발을 내딛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캠퍼스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새내기 학우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크신 이름으로 축복하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학업에 필요한 건강과 충분한 경제적 여건을 베풀어 주옵소서. 그리고 학업을 이어가는 4년동안 사람의 사사로운 판단력을 넘어 크신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을 선물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진리와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전주대 안에서 인간의 본질과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게 해 주옵소서.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며 무엇을 위해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의 해답을 졸업의 때가 오기 전에 명확히 깨닫게 해 주옵소서. 눈을 들어서 높은 하늘을 보게 하시고 넓은 세상을 보게 하셔서 조그마한 자아에 갇힌 사람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온 세상을 품은 인격의 거인으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나 자신의 사사로운 유익에 결박되지 않고 내가 속한 공동체의 유익을, 사회와 국가의 유익을, 나아가 전 세계의 유익을 진심으로 소망하고 항상 의식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절박하게 추구하는 진정한 세계인이 되게 하옵소서. 온 세상을 만드시고 온 우주를 통치하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위해 최고의 선물을 준비하여 온 세상에 나누고 베풀고 섬기고 봉사하고 치유하는 진정한 봉사인이 되게 하옵소서.

먼저 4년치의 캠퍼스 생활 속에서 세계를 사랑의 마음으로 품은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준비되게 하옵소서. 캠퍼스 라이프의 단 한 순간도 헛되이 낭비되지 않게 하옵소서. 악하고 추하고 거짓된 것을 결단코 추구하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을 추구하고 섬김을 추구하고 그 진리와 사랑의 섬김으로 내가 속한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온 세상의 유익을 추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영원토록 칭찬과 존경을 받는 영광스런 전주인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과 진리로 온 세상을 섬기시되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섬김의 본을 보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17년 2월 23일 목요일

“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 (교직원 연수회 설교)

한병수 (전주대 교목/대학교회 담임목사)
요한복음 8:31-32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1) 우리는 진리의 전당이라 할 대학에서 동역자로 함께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캠퍼스 안에서의 섬김은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는 언어적인 명제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수도 아닙니다. 눈과 귀로 걸러진 팩트 혹은 사실이 아닙니다. 과거를 현재로 소환하는 기억도 아닙니다. 사람들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도 아닙니다. 대상과 인식 사이의 일치도 아닙니다. 진리는 지각과 관찰과 분석과 판단의 정신적인 활동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2) 오늘 성경은 진리가 무엇임을 아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예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진리라고 말합니다. 진리는 결코 다양한 것들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아닙니다. 유일한 것을 지시하는 고유명사입니다.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가 진리이십니다.

3)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결박되어 있습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돈이 자유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돈은 많을수록 관리의 짐을 우리에게 지워서 자유를 더 빼앗습니다. 지위가 자유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져야 할 일들이 우리의 자유를 더 빼앗습니다. 지식이 많다고 자유롭게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지식이 많으면 근심도 많고 책을 많이 저술하는 것이 고단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이러한 외부의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변화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몰랐다가 알게 되는 내적인 변화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진리를 아는 것에 있습니다. 진리를 알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듭니다.

4)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하십시오. 죽음의 기운이 우리를 위협해도 부활의 예수님, 부활의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아무리 심각한 질병이 있더라도 우리를 고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아무리 두려워도 이 세상보다 크신 하나님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것입니다. 보다 더 중요한 자유는 바로 죄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죽음의 절망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의 권세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궁극적인 자유는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5) 하나님의 대학교 전주대는 이곳을 출입하는 모든 분들에게 참되고 궁극적인 자유를 제공하는 진리, 그 진리를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기를 원합니다.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문구는 하버드 대학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사실 하버드 대학은 이러한 구호의 본의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전주대는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의 본뜻이 구현되는 곳입니다. 그런 곳이 되도록 교수만이 아니라 직원만이 아니라 학생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협력하는 곳이기를 바랍니다. 지방의 조그마한 고등고육 기관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가 캠퍼스를 출입하는 모든 교수님들, 직원 선생님들, 학생들, 나아가 지역 주민들도 자유롭게 만드는 진리의 참된 전당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전주대를 그렇게 만드시길 원하시고 그러한 전주대가 될 때에 하나님은 전주대를 한국에서, 나아가 온 세계에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기도: 은혜와 진리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전주대를 진리의 전당으로 세우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곳을 출입하는 모든 분들이 진리를 알고 진리가 자유롭게 하는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만이 아니라 전주지역 주민도, 대한민국 전체가 그리고 온 세상이 진리와 자유의 수혜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진리 자체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17년 2월 17일 금요일

졸업식 기도문

<전주대학교 2017년도 50회 졸업식에 참여한 2373명의 졸업생을 위한 기도문>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전주대에 입학하여 배움과 준비의 기간을 끝마치고 사회에 힘찬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학우들과, 이들을 진리의 교훈으로 가르치고 지도하신 선생님들, 그리고 이들을 사랑과 기도로 양육한 학부형들 및 친지들과 함께 영광스런 졸업식에 함께 서게 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 자리에 임하셔서 졸업식에 임하는 저희 모두를 통하여 영광을 받아 주옵소서. 그리고 특별히 졸업의 대열에 선 사랑하는 학우들의 앞길을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과 공의와 사랑으로 호위해 주옵시고, 이들의 꿈에 주님의 크신 이름으로 복을 명하여 주옵소서. 기독교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세워진 전주대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르치고 나누었던 진리와 자유와 평화의 정신이 이들의 발걸음이 머무는 곳곳에 향기와 빛을 발하게 해 주옵소서. 먼저 졸업생 학우들이 참된 진리와 진정한 자유와 내적인 평화의 수혜자가 되게 해 주옵소서.

지금 세상에는 거짓과 억압과 불화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진리와 자유와 평화의 수혈이 너무도 긴요한 때입니다. 전주대를 떠나가는 학우들이 오류가 있는 곳에는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을, 거짓으로 얼룩진 곳에는 정직을, 미움이 지배하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가득한 곳에는 치유를, 분열이 있는 곳에는 연합을, 의심이 가득한 곳에는 신뢰를, 어두움이 있는 곳에서 생명의 빛을, 슬픔이 가득한 곳에는 기쁨을 수혈하게 하옵소서.

기독교적 영성과 전인격 교육을 통하여 올바른 가치관과 섬김의 리더십을 구현하는 섬김의 실천인이 되게 하옵소서. 지성인이 구비해야 하는 기초적인 소양을 함양시켜 논리적 사고와 합리적 의사소통 능력을 지닌 학습하는 교양인이 되게 하옵소서. 지식과 학문의 체계와 통합성 교육을 통하여 유연한 사고와 창의적 전문성을 갖춘 도전하는 전문인이 되게 하옵소서. 기독교 정신의 교양과 전문성을 갖춘 섬김으로 지역사회 및 국가의 발전에 공헌하는 전인격적 인재상의 모델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졸업식에 화창한 날씨를 베푸시고 사랑하는 졸업생과 저희 모두에게 큰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17년 2월 15일 수요일

<신학의 통일성> 출간되다!


머리말: 신학의 통일성을 고대하며

오늘날의 신학은 지나친 세분화와 전문화로 말미암아 초래된 진리의 분할화와 단절화의 문제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각난 진리의 단절적인 이해는 충분한 검증도 없이 교회로 수혈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학교나 교회만의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시대적 풍조인 것 같습니다. 사물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여 사물의 마지막 단위를 추적하고 이를 위하여 사물을 쪼개고 또 쪼개는 분할의 방법으로 극미시 세계를 탐구하고 분석해야 비로소 과학적 객관성을 확보하게 되는 풍조 말입니다. 이러한 환원주의 풍조는 학문의 모든 영역에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당연한 전제처럼 군림하고 있으며 이 풍조에 순응하지 않으면 몰지각과 야만이란 비난마저 감수해야 할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교회나 신학교도 대체로 이러한 풍조에 편승하여 성경을 이해하고 기독교 진리를 탐구함에 있어서 쪼개어서 분석하는 분할 접근법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학문의 시대적인 풍조에 충실한 것이 하나님의 진리를 더욱 잘 드러내는 길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분할과 해체에 유용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가 본질상 환원주의 방식을 통해서는 온전히 드러낼 수도 없고 거기에 담아낼 수도 없다면 아무리 학문적인 대세라고 할지라도 역류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환원주의 사고와는 달리, 진리는 본질상 하나이며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유기적인 통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영원하고 불변하고 보편적인 것은 분할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비록 환원주의 방식이 진리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일 수는 있겠으나 진리를 온전히 담아내는 최종적인 단계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환원주의 방식의 분석은 적정한 지점에서 전체주의 방식의 통합 혹은 종합에 그 자리를 양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실 일반학문 분야에는 작금의 분할하고 해체하는 환원주의 사상의 한계를 절감한 학자들에 의해 학문 및 사회의 분할화와 단절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통합과 융합과 통섭과 소통과 공감의 개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중에 단일하고 고립된 원인에 의해 발생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당연히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문의 각 분야들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상식의 피부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계 안에서는 이러한 통합이 절박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학자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저는 이 책을 통하여 신학적 통합의 공감대 형성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신학적 통합의 중심에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십니다. 즉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의해서 알려지는 것이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삼위일체 하나님께 이른다는 하나님 중심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통일성의 몇 가지 핵심적인 측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진리이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발견되는 모든 진리 조각들의 저자시며 시초시기 때문에 모든 진리의 조각들이 하나님 안에서만 통일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발견되는 좋고 옳고 괜찮은 모든 진선미는 하나님의 것이면서 하나님 안에서만 궁극적인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만 통일성을 얻습니다. 존재든, 언어든, 현상이든, 생각이든, 사건이든, 그 어디서든 발견되는 진정한 지혜와 지식과 명철과 총명과 예술과 분별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선 자체시고 최고의 선이시고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 이외에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할 진선미는 없습니다.

둘째, 모든 만물과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영광 및 사역의 드러냄과 무관하지 않다는 통일성이 있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것처럼 지어진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원한 신성과 능력을 드러내되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가는 사이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피조물의 존재와 보존이 다 하나님과 결부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만물이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의 뜻이 응하는 방향을 따라 역사가 흐른다는 신적인 섭리의 통일성을 뜻합니다. 우연이나 운명처럼 보이는 어떠한 현상들도 이 섭리의 통일성을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하나님의 속성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귀결되는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삼위일체 하나님은 성경의 저자며 계시의 내용이며 계시의 목적이 된다는 성경의 통일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성경이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것이라고 친히 말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는 이러한 언급을 통하여 성경의 의미가 그리스도 안에서만 통일성을 얻는다는 사실을 밝히신 것입니다. 동시에 자신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하여 스스로를 성경의 “궁극적인 의미”로 여기지를 않고 자신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이를 수 없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비추시는 은총의 빛이 없다면 누구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성부로부터 성자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계시하고 있다는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통일성 때문에, 개별적인 성경 텍스트의 궁극적인 의미는 우리가 성경 전체를 포괄하는 가장 광범위한 배경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하여서 성경 텍스트를 읽지 않는다면 결코 발견되지 않을 것입니다.

넷째, 구약과 신약이 특별히 구원론에 있어서 동일한 진리를 계시하고 있다는 신구약의 통일성 혹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통일성이 있습니다. 이는 구약의 신자들이 구원에 이르는 원리와 신약의 신자들이 구원에 이르는 원리는 서로 다르지가 않다는 뜻입니다. 적잖은 분들이 여기에 반박의 목소리를 높였으나 개혁파 인물들은 준동하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은 그 방식에 있어서 성육신의 시점을 기준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단호한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주어진 동일한 복음에 동일한 믿음으로 합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동일한 은혜의 언약으로 말미암아 동일하신 성령의 조명을 인하여 동일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동일하신 중보자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특별히 구원론은 모든 교리들이 너무나도 긴밀하게 그것과 통합되어 있어서 신학의 통일성을 다른 어떤 교리보다 더 강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다섯째,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의 신자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몸이라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교회의 통일성이 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신약의 성도들에 비해 열등하지 않습니다. 유대인 성도들이 이방인 성도들에 비해 우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에는 시공간 어디에도 우열이 없습니다. 그런 식의 분리나 분열이나 차별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사람이 제도적 인종적 지리적 심리적 계층적 교파적 분열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동일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유일한 머리로 삼은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분리되지 않습니다. 교회의 통일성은 사람에 의해 파괴되지 않고 훼손되지 않고 변질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통일성은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구원의 동일하신 하나님과 동일한 예정과 동일한 언약과 동일한 중보자와 동일한 성령의 인도와 동일한 믿음와 동일한 상급이 있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의 진리는 다양한 종류의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의 진리가 다양한 실용적 동기와 필요 때문에 여러 갈래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물질을 쪼개고 의미를 해체해야 직성이 풀리는 환원주의 시대의 전문화와 세분화 분위기에 편승한 것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할의 문화를 주도했던 서구의 학계에도 이제는 학문의 통합과 학제간의 연구가 광범위한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지식과 학문의 모든 영역에서 통합적인 사고와 제학문적 연구와 통전적인 분석과 포괄적인 진단과 종합적인 적용이 요청되고 있습니다. 학자적 관심의 촉이 부분에서 전체로, 해체에서 통합으로, 개체에서 보편으로, 각론에서 총론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사실 기독교가 주도해야 하는데 지금은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습니다. 나아가 통합의 필요성이 교회와 신학교 안에서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쪼개고 해체하는 과정이 생략될 수는 없겠지만 진리의 안식처는 결코 아닙니다. 교리적인 분할과 신구약의 문헌적인 단절과 교회사의 시대적인 불연속과 신학의 분과별 독립성은 전문적인 분석의 필요성 때문에 용인될 수는 있겠으나 거기에 정체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신학을 파괴하는 일입니다. 진리를 조각내는 일입니다. 기독교를 허무는 일입니다. 교회를 뒤흔드는 일입니다. 특정한 분야에의 전문성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실용적인 필요와 학문적인 매력과 금전적인 유익과 사회적인 품위와 학자적인 성취를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문성이 최종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순간 발생되는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문제의 최소화를 위해 보다 광범위한 고려로 객관성을 높이고 적용성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고려하는 부분이 많고 넓을수록 그렇지 않은 것보다는 학문의 객관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활용의 범위도 확대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성이 담보될 때까지 부분성을 넓혀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신학의 정의에 있어서도 특정한 부분에 대한 강조를 넘어 보다 종합적인 정의를 숙지해야 하고, 신학의 구조에 있어서도 단일한 교리의 고립적인 이해를 넘어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의 교리적 이해로 나아가야 하고, 신학의 조화에 있어서는 이론만이 아니라 실천까지 통합해서 생각해야 하고, 신학의 길이에 있어서는 시간에서 영원까지 연계시켜 이해해야 하고, 신학의 내용에 있어서는 사랑과 정의의 종합적인 문맥 속에서 사려해야 하고, 신학의 관계성에 있어서는 성경과 전통 및 신학과 학문의 통합적인 연관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신학적 작업을 수행해야 하고, 신학의 섬김에 있어서는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와 국가와 세계 전체를 의식해야 하고, 신학을 공부함에 있어서도 구약과 신약, 신학의 원리와 교리들, 창조자와 피조물, 믿음과 선행,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 작정과 실행, 그리고 신론에서 종말론에 이르도록 주석과 교리와 변증과 실천이 골고루 사려되지 않으면 부분성의 한계와 분할화의 폐해는 극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본서는 신학의 분과별 교류와 협력과 연합의 필요성과 유익이 존중되고 신학의 보다 통합적인 연구와 교육이 보다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신학의 통일성 재인식을 자극하는 소박한 촉매제로 기획한 책입니다. 본서는 하나의 주제를 설정하고 일관되게 써내려 간 연구서가 아니라 그동안 저자가 신학의 통일성 문제를 늘 의식하며 다양한 곳에 출판한 논문들과 아직 소개되지 않은 논문들을 단행본 형태로 엮은 것입니다. 첫 숟가락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신학의 통일성 주제는 너무도 광범위한 것이어서 일개의 학자가 한 권의 책에 다 담아낼 수도 없습니다. 광범위한 연대와 협력이 없이는 일시적인 불시로 그칠 것입니다. 이 책은 그저 여러 학자들과 목회자들 및 성도들의 붓끝에서 이러한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쟝르의 글들이 더 많이 발표되고 쓰여지고 읽혀지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램의 학술적인 문서화일 뿐입니다. 더 귀하고 구체적인 생각들이 곳곳에서 쏟아지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부족한 저의 생각에 단행본의 옷을 과감하게 입힙니다.
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