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7일 금요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스10:2)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 에스라는
그 이름의 의미대로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은 인물이다.

진실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칭찬과 존경을 두루 받은 분이지만
그의 행보는 왕의 수라상에 낄려고
겸상의 군침을 흘리거나
이미지 관리로 거룩한 척 하는
경건의 코스프레 따위와는 무관했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를 늘 주시했다.
단순히 관찰자나 구경꾼이 아니라
끊어질 수 없는 사랑의 운명 공동체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범죄했다.
그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엎드렸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마치 예수님의 기도문이
구약에도 있었다는 인상까지 주는 표현이다.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였고
백성의 죄는 "우리의 죄"로 여겨졌다.
사회나 교회나 개인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대체로 불똥이 튈까봐 서둘러 정죄의 손가락을 내뻗으며
죄인과 섞이지 않으려는 거리 만들기에 주력한다.

그러나 에스라는 백성을
자신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로 여겼고
그들의 죄를 우리의 죄로 품었으며
통회하는 죄인의 자리에서 엎드렸다.
그러자 많은 백성이 덩달아 크게 통곡했다.

이런 통곡은
주님의 귓가에 참으로 아름다운 멜로디다.
에스라의 리더십이 아름답다.
여호와의 도우심이 아름답다.
그런 아름다움, 지금은 너무도 희귀하다 ㅡ.ㅡ

2018년 7월 25일 수요일

땅책읽기

오늘은 유난히도 땅이 아름답다.
새벽에 두 발로 땅을 지그시 보듬으며
천잠산의 능선을 오르는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해 심지어 설레인다

땅도 글을 쓴다는
헤르만 헤세의 예리한 관찰이 뇌리를 파고든다
땅의 모든 무늬는 사연이 빼곡히 담긴 문장이다.
날마다 이루어진 산책은 발로 읽어가는 땅 독서였다

땅은 표현력이 뛰어나다
한번도 반복되지 않는 문장들이 온 땅에 수북하다
단문도 있고 복문도 있고
때로는 적절한 지점에서 마침표와 쉼표와도 마주친다

땅은 하나님의 입술이다
지면의 모든 굴곡은 그 입술에서 나온 메시지다
땅끝까지 이르러 빠짐없이 읽어내고 싶다
달리지 않고 서행하며 속독이 아니라 정독으로

지금은 전주의 땅책 읽기만도 벅차고 과분하다

전주의 하늘, 아름답다

텅빈 하늘이 완전히 달라진다
고작
손톱 사이즈의 눈썹이 하나 걸렸는데

저 하얀 눈썹이
거대한 하늘에 자그마한 무늬로 들어가는 순간
온 세상이 달라진다

아름답고 향기롭다
작은 것이 큰 것을 당당하게 좌우하는 게
하늘이 흰 눈썹의 배경으로 기꺼이 소비되는 게

투명하게 있다가
취침 전 저 허공의 중턱에 올라
살갗을 은은하게 드러내는 초승달

지역에 따라 시간차를 두고
적시에 나타나는 하늘의 눈썹,
바라보는 자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대리윙크 같다.

아이의 순수함

꼬맹이가 텅빈 예배당에 서서 운다
그 울음이 2층까지 올라와 연구실로 스며든다
하여, 내려갔다
울음이 흔건한 아이의 말은 해독이 불가하다

더 가까이 다가갔다
놀랄까봐 다가가며 최대한 밝은 미소를 유지했다
아이는 뒤로 물러서는 기색 없이 무언가를 계속 설명했다
여전히 판독불가 상태였다

그러다가 시선을 아이의 입술에서 손으로 떨구었다
끊어진 칸막이 끈을 꼬옥 붙들고 있던 그 손가락에
두려움과 긴장의 땀이 눈물만큼 흔건했다.

괜찮다며 아이를 살포시 껴안았다
아이는 안도하며 나의 가슴에 자신을 파묻는다
그래도 눈물의 흐름은 이어졌다

그래서 끊어진 끈을
그 아이의 시선 앞에서 이어주며
아이의 가슴을 아프게 한 끈의 연약함을 때찌해 주었다

아이는 울음도 멈추었고 걸음도 밝아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간다...해방의 날개를 단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