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30일 화요일

건강 세미나

3개월 전부터 앞치마를 두루고 부엌을 접수했다. 가족의 식단을 책임지는 자리에 서면 식감이 달라진다. 입맛보다 건강식을 추구하게 된다. 최근에 들었던 어떤 의사 목사님의 강연이 솔깃하다. 세미나 중에 짧게 등장하는 '치유의 하나님'에 대한 해석이 번뜩인다.


유전자 조작물(GMO)

몬산토(Monsanto)는 유전자적 조작이 가해진 음식물을 생산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와 관련된 부정적인 징후들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끔찍하다. 이는 창조된 자연의 은밀한 부위에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졌을 때에 발생하는 문제의 일부이다. 인간이 창조의 질서를 무시하면 창조의 질서가 인간을 무시하는 때가 도래한다. 이미 그 징후의 흉물스런 모습들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아래의 비디오 클립들은 그 단면을 잘 보여준다. 물욕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그 죄는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산업과 학계를 삽시간에 더럽힌다. 그렇게 만들어진 죄의 카르텔은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로 마수를 내뻗는데 한국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2015년 6월 28일 일요일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

대부분의 기독교 성직자는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다"는 바울의 기록에 근거하여 동성애를 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동일한 바울의 말에 근거하여 동성애 해석의 관점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대법원이 최고의 법정적인 권세로 결정한 동성애 합법화에 복종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다면 동성애가 죄라는 판단에 대해서도 그런 선별적인 재해석을 가하는 것이 일관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 권세자의 판단과 사도의 말 자체를 권위에 있어서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오류이다. 세상 권세자의 판단을 취사선택 한다면 사도의 말에 대해서도 취사선택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말인데 참으로 심각한 인본주의 정신에 빠진 발상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관원들의 판단이 상충했을 때에 어떠한 사도적 분별력을 보였는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에 우선이다. 공교회적 결정과 고백서와 교리보다 우선이다. 관원의 판단력은 당연히 말씀에 후순위다. 너무도 분명하게 계시된 진리를 시대의 변화상에 빗대어 해석학적 마사지를 가한다는 것은 말씀을 버리는 교묘한 방식이다.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대대적인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례하고 무분별한 대응은 금물이다.

1. 하나님의 은혜만이 시대의 정신을 다스린다. 명심하자. 2.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간구해야 한다. 게으름과 나태와 몸사림과 무관심의 조장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이러한 간구는 동성애 사안에 대한 극도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3. 세상의 타락상에 대한 교회의 책임감을 고취해야 한다. 이는 교회가 열방에 대하여 복의 근원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타락을 교회의 책임이란 관점으로 해석하고 대응해야 한다. 4. 세상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마음의 심연에서 비롯되는 사랑과 인내의 팔을 내뻗어야 한다. 주님의 길이 참으심을 앞지르는 것은 월권이며, 우리는 심판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5. 그렇다고 진리의 법적인 훼손을 좌시하는 침묵은 금물이다. 겸손하고 지혜롭게 성경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 6.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논쟁을 일삼지 말고 상대방을 끝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중하며 대화 중에라도 주님의 영광이 훼손되지 않도록, 교회에는 덕을 끼치도록, 세상에는 빛과 소금의 기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똥 묻은 개의 소리

최근에 Anglia Ruskin 대학의 지구촌보존연구소가 제시한 연구에 의하면, 2040년경에 재앙적인 식량부족 현상이 전 세계를 강타할 것이라고 한다. 물부족, 기후악화 및 불안정, 세계화의 가속화, 달아 오르는 국제정치 불안정, 인구증가, 소비증대 등의 현상들과 맞물려 범지구적 소요의 때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이미 곡물생산 부진에 대한 Lloyds of London 보고서가 내놓았던 전망과 결이 동일하다.

맨 정신으로 성실하게 살아도 감당하기 힘든 재앙들이 등판의 때를 벼르고 있고 그 수효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 앞뒤를 구분하지 못하는 반인륜적 광기가 지구촌 곳곳에서 미친듯이 발산되고 있다. 성경에 언급된 모든 해괴한 금지령이 특정한 고대의 미개한 풍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목격하는 나의 마음은 심히 씁쓸하다. 정치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종교에는 외식과 욕정이 난무하고 사회에는 온갖 느끼한 흉물들이 시선을 옥죄인다. 전적인 부패가 전 지구촌의 부패에 투영되어 있는 형국이다.

나 또한 깨끗하지 않은 죄인 중에 괴수이다. 추락하는 현실에 뾰족한 세평을 들이대는 것은 마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겠다. 비록 다 못났지만 그래도 규범의 지계표는 옮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지푸라기 붙잡는 심정으로 쓴다. 인간의 변덕은 번갯불 스피드로 바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경되지 않는다. 기준도 원리도 질서도 항상 동일하다. 그것을 사람의 바뀐 기준을 따라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기준의 붕괴는 한 개체의 붕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한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과 진보는 비례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비례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현실을 살펴보면, 신약이 기록되던 1세기의 윤리적인 수준에서 한발짝도 진보하지 않았다는 자괴감이 든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집단 성관계를 가지고 아이들을 성의 파트너로 희구하고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여자가 여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하고 심지어 짐승도 욕정의 출구로 지명되고 있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어두움의 일들이 수다하다. 여기에 다수결이 적용되면 기준이 변경된다.

그런데도 지구촌이 진멸되지 않고 멀쩡하게 보존되고 있음은 하나님의 길이 참으시는 인내와 무궁한 긍휼과 측량할 수 없는 자비의 결과임에 분명하다. 이것은 아마도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의 한 뜻인지도 모르겠다.

기사자료: Independent

2015년 6월 27일 토요일

말씀의 판단력

책을 읽다가 발견한 괜찮은 구분이다. 낮아짐과 겸손함은 구별된다. 몸의 처신은 낮아지나 속마음은 낮아짐과 무관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겸손과 내적인 겸손은 구분해야 한다. 압살롬은 누군가가 다가와 엎드려 절하려고 하면 손을 내밀어서 그를 일으켜 세우고 뺨에 입을 맞추었고, 아합은 자신의 죄악에 대한 지적을 듣고 굵은 베옷을 걸치고 금식까지 하고 힘없는 표정은 슬펐으나 그의 마음은 겸손하지 않았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깜쪽같이 둔갑하는 일에 명수이다. 우리의 눈과 귀와 생각에 근거한 판단에 안심하는 순간 보란듯이 속는다.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사를 분별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도 듣고 논리로도 하자가 없어 보이는 거짓과 속임수가 얼마든지 있다. 언론과 권력과 재력으로 조작 가능한 것들이 무수하다. 어떠한 분별에 있어서도 불변의 말씀에 판단의 닻을 내리는 게 최상의 지혜이다. 

미국 대법원의 동성애 합법화에 즈음하여

오늘 미국의 대법원 판결봉은 성경이 명백히 죄라고 금지하고 있는 동성애에 헌법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발부했다. 타인의 아내나 남편을 성적 취향에 따라 자유롭고 적법하게 성의 파트너로 삼을 수 있게 된 대한민국 법률의 타락과 결을 같이 하는 결정이다. 백악관은 기막할 환희로 물들었다.

이제 개개인의 성적 취향에 안다리를 거는 자들은 대한민국 법치를 능멸하고 미국의 최고법을 조롱한 위법자로 간주된다. 성적 취향의 과장이 여기까지 왔다. 이제 아들이 엄마와, 딸이 아빠와, 엄마가 시아버지와, 아빠가 장모와 결혼하고 싶다면 성의 그런 근친상간 취향도 제재할 법적 저지선이 무너졌다.

사람의 경계선을 넘어 짐승과의 성적 취향이 합법화의 목소리를 높이는 날도 멀지 않았다. 성의 무절제한 자유를 인권의 신장으로 간주하고 문화의 진보로 여기는 착각의 수위가 너무도 높아졌다.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면 마지막 날에 쏟아진 진노를 축적하는 것인데도 지금은 축배를 기울이는 형국이다.

교회는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는 대법원의 판단이 죄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옳은지를 판단해야 한다. 오바마는 동성애 반대자는 미국의 적이라고 했다. 이런 엄포에 주변국의 발빠른 눈치가 작용하면 동성애 합법화의 흐름은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참으로 참담하다.

2015년 6월 26일 금요일

폴라누스 교의학의 구조

지난 5월 30일에 모였던 복음주의조직신학회 발표논문 서론이다.

멀러의 연구에 의하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종교개혁 신학은 성경적, 인문학적, 실천적, 수사학적, 후험적, 그리스도 중심적인 특징을 가졌으나 종교개혁 이후의 정통주의 신학은 합리론의 철학적 영향으로 철학적, 스콜라적, 이론적, 논리적, 선험적, 예정론 중심적인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고 주장하며 둘 사이의 신학적 이질성과 단절을 강조하는 학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종교개혁 신학과 정통주의 신학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에 이르는 정통주의 신학이 방법론에 있어서는 다양하고 복잡한 변화가 있었으나 신학의 내용에 있어서는 종교개혁 신학을 계승하되 그 시대에 주어진 과제를 풀기 위한 의도로 논의의 정교화와 개념의 세분화와 구조의 체계화를 통해 밖으로는 논적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안으로는 종교개혁 신학을 계승하고 전수하여 범교회적 가르침이 교회에 머물도록 했다고 반박한다.

17세기 초반에 개혁주의 신학의 교의학적 체계를 가장 높은 차원까지 끌어올린 아만두스 폴라누스(Amandus Polanus, 1561-1610) 경우에도 신학적 이질성과 단절의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바르트(Karl Barth)는 폴라누스가 “예정론을 신학적 체계의 앞자리에 배치시켜” 예정론을 섭리론에 종속시킨 개혁주의 전통을 파괴했고 이론과 실천을 분리시켜 자신의 교의학을 이론에만 치우친 “지성적 경박”의 배설물로 만들고 말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와 유사하게 바르트적 독법으로 폴라누스 신학을 연구한 파울렌바흐(Heiner Faulenbach)는 “원인과 결과의 도식이 폴라누스 사상을 좌우하고 있으며” “이러한 합리적인 경험론은 당시 모든 학문의 형성을 주도하던 아리스토텔레스적 방법론과 더불어 그 시대의 신학적 굴종을 보여주는” 사례이며 그래서 그 시대에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인지적 능력의 몫”이었을 뿐이라고 혹평했다. 이보다 최근에는 딜(Max Eugene Deal)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신학의 방법론이 교리의 해명을 주관하는 경향에 빗대어 폴라누스 역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자신의 신학적 지식의 기초로” 삼은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폴라누스 신학의 면밀한 검토는 이러한 주장들의 증거력이 1차 문헌과 그 시대의 문맥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제공한다. 폴라누스 저작들을 상세히 읽어보면, 그가 성경의 증거(divina testimonia)와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 동의(universalis consensus omnium polulorum)와 하나님의 교회의 증거(testimonia ecclesiae Dei)와 참된 이성(rationes vera)을 존중하되 언제나 성경의 증거과 교회의 건강한 전통에 자신의 신학 전체를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지된다. 물론 이성의 적당한 학문적 용례도 발견된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신학적 결론에 영향을 주었거나 왜곡하는 정도까지 나가지는 않았다. 이는 정통주의 인물들이 종교개혁 이후 2세기에 걸쳐 활용한 신학 방법론의 전형적인 사례다. 본 논문은 폴라누스 교의학(Syntagma theologiae christianae)의 신학적 구조를 다루면서 종교개혁 신학과 종교개혁 이후의 정통주의 신학 사이에 교리적 단절과 괴리가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되 정통주의 신학의 교리적 체계화와 구조적 통합화는 종교개혁 신학과의 결별이나 이탈이 아니라 종교개혁 인물들이 확립한 계시 중심적인, 성경 의존적인 신학의 체계적인 보존과 발전적인 통합을 위한 노력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이르기 위해 먼저 폴라누스 교의학의 삼중적인 구조가 어떤 것인지를 살피되 각각의 구조는 철학이 아니라 성경 (때로는 건전한 전통)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철학의 방법론적 도구성은 어떻게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신학적 구조의 각 부분들 사이의 연관성은 기독교 진리의 정수를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탐구할 것이다.

2015년 6월 25일 목요일

김영규 교수님의 중요한 칼럼

이 칼럼은 일평생 과학을 연구하며 학자들이 풀지 못했거나 풀었다고 착각하는 블랙홀, 양자, 중력, 시간의 문제에 대한 김영규 교수님의 종합적인 견해이다.

<김영규 목사>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NYAS, AAAS, ACS 초청회원

빛의 속도는 등속을 넘어 가속을 향하여 달릴 때, 흔히 물질의 형태들이 변하고 시간도 변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빛의 등속은 아직 가속이 아니다. 블랙홀들은 중력의 힘이 이미 충분히 커서 그 중심을 향하여 등속에 있어서 빛의 속도에 도달한 세계를 표상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불랙홀이 가속으로 빛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불랙홀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론적으로 불랙홀 중에서 중력의 힘이 빛의 속도로 가속하는 불랙홀도 가능한데, 그런 불랙홀들의 경우에는 중력장의 반경이 무한대로 가능하더라도 빛의 속도 크기의 반 이하인 반경인 경우는 불가능하다.

지금의 우주가 슈퍼클러스터 별로 마지막 차가운 세계로 가속화된 세계로 여긴다면, 아직 우주의 끝의 정보가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중력의 장의 반경이 빛의 속도 크기의 반경 이하의 불랙홀이 인간에 의해서 관찰되는 일은 불가능하고, 아마 최초 우주에서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빛의 속도 크기의 반경보다 큰 무한대한 크기의 중력장의 반경을 가진 세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주 팽창에 있어서 등속이나 가속에 대한 가설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예를 들어 우리의 은하계가 우주에 있어서 아주 오래된 별로서 그 은하계의 중력장, 태양의 중력장, 지구의 중력장, 달의 중력장 등 다양한 중력의 장들이 겹치면서 어떤 질서로 있을 때, 각 중력장의 중력 상수들에 어떤 정보의 세계가 질서로 숨어 있느냐를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가속과 힘의 개념을 없애버리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로 이해하여 모두 에너지 개념으로 정리될 때, 그런 상관관계는 질서로서 정보의 세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중력의 장들이든 정보의 세계가 선행하는지, 또는 가속의 세계가 선행하는지도 알 수 없다.

우리가 생산하거나 관찰할 수 있는 힘의 세계는 대부분 질서로서 정보가 없는 힘의 세계이고 단지 힘의 직선 운동을 위상기하학적으로 외부적 질서의 운동으로 변경하는 방식으로 마치 거기에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이용할 뿐이며 그런 힘의 개념은 ‘자연’의 가속이나 힘의 본질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가정할 수 있다. 자연의 힘이나 가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정식이 정보로서 존재하는 그런 힘이나 가속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공을 던지는 가속에는 정보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인간에 의해서 재생하는 자연과 원 ‘자연’ 자체는 다른 것이라고 말해야 될 것이다.

우리가 흔히 가정하는 타임머신은 잘못된 가설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등속이든 가속이든 빛의 절대속도보다 더 큰 절대속도가 있다고 전혀 가설하지 않고 추론된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영혼이 없거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만 해도 그런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부활을 마치 양자들의 공간 이동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는 것도 자연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인간이 생성이 되고 자라며 그 생명이 유지되는데 있어서 있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유도 인자들의 신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기에 그런 허무한 상상을 하게 된다. 물론 문화에 사실을 강조하면 돈도 되지 못하고 문화도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삶에 진실을 제거하면 너무 허무한 삶으로 전락된다.

자연은 그 자체로서 아름다움이나 신비라는 무게가 있는 세계이다. 도덕이나 엄밀한 과학도 그런 진실이나 자연에 약간 가까울 뿐이다. 여하튼 중력장의 반경이 빛의 속도 크기의 반 보다 큰 반경을 가지면서 무한대로 큰 반경을 가진 불랙홀들도 수 없이 가정될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 은하계의 중심에 있는 불랙홀에는 ‘자연’이라는 어떤 질서가 있다는 점에서 고유하고 독특한 ‘본성적’ 블랙홀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즉 모든 자연적 빈 공간들도 시간으로 풀어야 할 ‘나머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간이란 것은 무엇인가? 반복하여 말하지만, 일상적인 시계에서 표상이 되어 있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주 역사의 방향을 전체적으로 운동이라고 본다면, 그 운동에 비해 영원히 정지되어 있는 부동 자체가 가상적 시간의 원형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전체 역사가 거꾸로 가지 못하는 전체 운동과 정반대로 정지되어져 있는 것이 시간이라고 한다면, 그런 시간은 데카르트 좌표 식으로 기존 차원에 직각으로 있는 새로운 차원으로 이해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주의 모든 운동 방향이 전체적으로 비가역적인 성격으로 남아 있는지가 여전히 증명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의 숨어있는 차원들이 얼마나 있는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칼럼의 글에서 소개했듯이 물질의 근원적 입자들의 경우에도 그런 가역성이나 차원들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의 음전자 혹은 더 높은 에너지대에 존재하는 양전자, 기타 힘의 입자들이 광자들로 몰락할 때 그 광자들이 빛의 속도로 몰락하는 방향에 마치 시간 자체가 숨어 있다가 풀어지는 것으로 생각할 수 없으며 그 전에 스핀을 가지고 존재하는 입자의 생성과 정 반대 방향에 가상적으로 시간이 있다고 해야 된다. 그런데 우주의 현 중력의 법칙에 따라 등속으로든 가속으로든 빛의 속도로 빛의 속도 반경보다 더 작게 수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창조의 원리 외에는 그런 입자들의 생성을 설명할 수 없는 이상, 시간의 원형은 창조자에게 있다고 해야 된다. 그렇다면 피조물의 시간여행은 더욱 더 불가능한 것이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이나 전자(電子)가 부서져서 빛을 내는 것이나 자연의 기존 질서가 몰락 할 때마다 혼돈으로 관찰이 되는 것 자체가 이미 자연 자체가 그 원형인 정보의 세계로 갈 수 없음을 증명하는 좋은 증거로 남아 있다. 더 높은 에너지 대의 힉스 입자들을 발견하였다고 해서 잃어버린 힉스의 장에 있는 ‘자연적 정보’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좀 더 지속적인 핵융합 발전기를 개발하기 위해서도 이 차이를 간과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쉬울 것이다.

창조 세계 속에는 그것이 거꾸로 가지 못한다는 면에서 혼돈만이 발견이 되는 것이다. 반면 하나님께서 항상 주시는 자로 계시기 때문에 항상 질서가 발견이 되는 것이다.

자료출처: 기독교개혁신보

2015년 6월 24일 수요일

언어와 신학과 설교

넷바이블(Net Bible), 성경공부 하기에 참 좋습니다. 원어로도 볼 수 있고 원문의 단어들이 갖는 의미들도 곧장 확인할 수 있으며 각 구절과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아티클을 소개하고 있어서 입체적인 공부가 가능한 곳입니다...

Net Bible Study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독일어, 불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화란어을 비롯한 48개 언어들을 배울 수 있는 곳입니다. 언어의 보강이 필요하신 분들은 무료로 과감하게 덤비세요~~

48 Languages Online

예전에도 소개했던 곳이지만 M.div 레벨에서 이루어진 참으로 다양한 신학 강좌들이 오디오와 강의노트 전체가 제공되는 커버넌트 신학교 자료실입니다. 자신의 미진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곳입니다. 강의노트 대조하며 들으면 영어 듣기에도 많은 연습이 된다네요...

Resources in Covenant Theological Seminary

괜찮은 개혁주의 설교 사이트가 있었네요. 저자별, 최근설교, 주제별, 시리즈별 분류가 너무도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상황과 입맛에 맞는 설교 듣기가 가능한 곳이네요. 궁금한 주제가 하나 있으면 수백개를 참조하여 배움을 얻을 수도 있겠네요....

Reformed Sermons

2015년 6월 23일 화요일

빚, 이제서야 훌훌

오늘에야 미국생활 10년치의 빚을 청산했다. 그 댓가로 글빚들이 산더미를 이루지만 이자나 패널티 요금이 추가되지 않으니 대응이 훨씬 용이하고 부담도 전무하다. 기한만 넘기지 않으면 독촉장 수령의 부담감도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에 와서 1년이 채 못되어서 빚청산의 과업을 이룬다는 건 주님의 전적인 은혜요 기적이다. 빚이 청산되기 이전에는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것도 지지 말아야 한다는 평소의 신앙적인 소신에도 금이 갔었는데 오늘에야 다시 원래의 지점으로 귀환했다. 참으로 은혜로다.

대개 미국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의 적잖은 비율이 빚으로 연명한다. 작년에는 박사학위 취득을 했었어도 학교에 빚이 있었기에 학위기를 오래동안 수령하지 못했었다. 그게 손아귀에 들어온 때는 지난 12월 말이었다. 그때서야 학교에 밀린 방값을 모두 지불했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에도 은행에도 빚이 사라졌다. 유학의 삶이 이제서야 종결된 느낌이다. 앞으로는 부하지도 않고 빈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로만 수입이 있고 전 생애가 주님과 교회와 세상 앞에 가치만 생산하는 나날이길 소원한다.

가난에 처할 줄도 알고 부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바울의 권고와, 부하지도 빈하지도 않게 해 달라던 지혜자의 간구가 뇌리에서 교차한다. 적정선을 벗어나면 늘 유혹과 소문으로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나는 바울의 권고와 지혜자의 간구를 최고의 가치에 집중할 최적의 환경 추구로 이해한다. 주께서 늘 그러한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한다. 학자의 영과 학자의 귀와 혀를 주셔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사상과 생각을 파하고 그리스도 앞에 복종케 하는 가치의 산출이 삶의 내용이길 소원한다. 

2015년 6월 20일 토요일

처음으로 주례사를..

오늘은 처음으로 결혼식 주례석에 올랐다. 참으로 아름다운 두 사람 이승준과 이다솔의 성혼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경외 속에서 피차 복종해야 한다"는 주례사를 전달했다. 복종의 양태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차이가 있다. 요약하면, 남편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모든 일에 교회가 머리되신 그리스도 예수께 순종하듯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부가 가장 아름다운 가정일 때는 가정이 교회다울 때라고 강조했다. 바울이 말한 비밀에 빚대어서 엄선한 강조였다. 사람의 뜻과 능력과 혈기로는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지 못한다.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뼈 중에 뼈처럼 살 중에 살처럼 사랑했던 유일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그리스도 경외함이 없이는 피차 복종하며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주님의 영광과 거룩과 의로움이 그들의 앞뒤를 호위하는 부부의 삶이기를 기도한다.

2015년 6월 16일 화요일

메르스 자력구제

이쯤 되면 방역이 뚫렸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아마 한국에서 메르스는 크게 한번 유행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방역이 뚫리면 그다음은 개인위생과 치료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1차, 2차, 3차까지 진행되었고, 4차 감염자부터는 감염원 확인조차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최악의 사태를 대비해야하는 시점이라고 저는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나름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메르스는 얼마전 유행했던 사스와 사촌간인 바이러스입니다. RNA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보다 돌연변이 일어날 확률이 1,000배 이상 높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출현하는 것입니다. 사스도 그랬고, 메르스도 그런 경우입니다.

메르스는 열이난 이후에 바이러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비교적 방역이 쉬운 바이러스입니다. 또한 대응하는데도 용이한 편입니다. 방역당국도 이러한 정보 때문에 해이했던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는 사스때의 우리나라 방역당국의 실력을 알고있기에 방역으로 막아줄 것으로 짐작했었습니다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40%로 알려져있는데요, 치료를 잘 할 경우에는 낮아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치사율이 높다는 것은 확실해보입니다.

방역이 뚫렸다고 가정하고, 즉, 개인위생과 환자치료에 의해서 방어를 해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가정하고 몇가지 행동지침을 말씀드립니다.

1. 열이 나는 사람과는 만나지 말아야합니다. 그리고 열이 나는 사람은 스스로를 격리해야합니다. 빨리 병원에 가시고 격리병동에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아마 격리병실이 모두 차버리면 병원 측에서 나름의 노력을 해줄 것입니다. 참고로 격리병실은 공기가 병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음압이 걸려 있고, 이 병실에서 나가는 공기는 모두 태워서 내보냅니다.

2. 잘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외출을 줄이십시오. 꼭 외출을 해야할 경우에는 손을 매우 자주 씻는 것이 좋습니다. 외출시에는 비누나 소독제를 갖고다니시기를 권장합니다. 또한 외출시에는 마스크를 하십시오. 도움이 됩니다. 마스크는 집에오자마자 바로 세탁하십시오.

3. 비타민 씨를 매일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2그램, 저녁에 2그램씩 드십시오. 시중에는 1그램짜리 알약이 판매됩니다. 좀 넉넉하게 사두시고 매일 4알씩 드십시오. 좀 더 안심하고 싶으신 경우에는 점심에도 두알을 드시기 바랍니다. 만일 이렇게 드시기 시작하는데 설사가 나면 줄이십시오. 그러나 며칠 후에는 다시 올려서 하루 적어도 4그람 이상은 드시기 바랍니다. 메르스가 완전히 물러갈 때까지입니다. 30킬로그램 이하의 어린이는 몸무게나누기 30킬로그램을 계산해서 거기에 4그램을 곱해서 먹이십시오. 메르스는 어린이에서는 잘 안걸린다고 알려져있기는 하지만 역시 경우의 수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냥 믿다가 큰일 당하는 것보다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비타민 씨는 감염초기에 효과를 발휘합니다. 거의 모든 감염증에서 효과를 발휘합니다. 열이 나는 감염 초기에 효과를 발휘하고 예방효과도 강합니다. 그러나 감염후기에 가면 별로 효과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현재로서 개인이 할 수있는 일은 이정도라고 생각됩니다.

동국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 김익중 드림

2015년도 봄학기 종강

2015년도 봄학기의 모든 과목들을 오늘 종강했다. 1학기동안 주께서 의탁하신 학우들을 말씀으로 얼마나 제대로 섬겼는지 모르겠다. 말씀에의 열망과 신학적 역량과 사고의 깊이와 삶의 변화와 소명의 강화에 일말의 진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매주 임하였다. 최소한 나에게는 졸부의 열강을 통해 가르치고 학우들의 경청을 통해 배웠던 한 학기였다. 어제는 조직신학 분과의 풍성하고 알찬 콜로키움 모임도 있었다. 두 분의 Ph.D. candidate가 흥미로운 논문들을 발표했다. 푸른 도전정신 가지고 참석한 영어강좌 학우들과 거인들의 문헌들을 징검다리 삼아 사유의 진일보를 시도한 독서토론 학우들과 주께서 눈동자로 여기며 아끼시는 교회를 주님처럼 사랑하며 알아가려 한 교회론 학우들께 감사하다. 이번 학기도 선하게 인도하신 주님께 모든 감사를 돌린다.


2015년 6월 13일 토요일

항암투병 일지 2

육종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래서 관련 서적들과 논문들을 탐독했다. 육종에 걸린 사람들의 평균 생존기간, 72개월이다. 육종 암세포를 제거하는 확증된 항암제가 없다. 당연히 항암치료 효과가 약하단다. 그렇다고 가만히 두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육종 암세포는 번식력이 대단히 왕성하고 재발 가능성도 높은 사나운 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는 즉각적인 항암치료 시작을 권하였다. 지금 시작하면 5년동안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나 시작하지 않으면 전이가 일어나고 4기로 곧장 치달으며 그때 시작하면 단순한 연장과 진통을 겨냥하여 치료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지인들의 조언을 받아 결국 항암치료 6회를 받기로 결정했다.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는 것의 어려움이 일상처럼 반복된다. 날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담담하다. 아이들도 알아야만 했다. 그래서 소집했다. 엄마의 암판정을 얘기했다. 아이들의 여린 귀에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다들 암을 암으로 인정하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귀로는 들었으나 가슴에는 그 소식이 도달되지 않아 정형화된 반응이 조성되지 못하였다. 눈물도 나고 슬프기도 한데 감이 오지를 않아서다. 사태의 심각성이 조금씩 감지하자 곧장 엄마를 위로하는 멘트들을 쏟아냈다. 기특했다. 가정예배 드릴 때마다 가슴을 쏟아 엄마의 치유를 기도하며 주님의 긍휼을 구하며 주의 선하신 뜻과 영광이 이 투병의 결과이게 대해 달라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아셔야만 했다. 아내가 수화기를 들었다. 무거운 입술을 열어 암진단 상태를 알려 드렸다. 아버님은 아내의 안정을 위해 과민한 반응이나 극도의 슬픔을 보이지 않으려고 침착한 어조로 치료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아내를 위로해 주셨다. 한국에서 출석하는 교회에도 알렸고 미국에서 다니던 교회에도 알렸고 내가 가르치는 학교에도 알렸다. 주변에 사랑과 기도의 동역자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했다. 특별히 함께 가르치는 친구 교수들과 교회의 지인들이 밑반찬을 만들어 배달해 주셨고 어떤 분들은 항암에 좋다는 약재들도 보내셨다. 어떤 항암치료 선배는 항암치료 과정과 효력과 후유증과 대처법과 대안의 노하우를 꼼꼼하게 전수해 주기도 했다.

나의 일상에는 적잖은 변화가 일어났다. 반찬을 만들고 밥을 하고 설겆이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의 등하교를 전담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한다. 아침과 저녁으로 아내와 함께 산책길에 올라 산림욕을 즐긴다. 항암에 좋은 음식들만 먹는다. 다양한 일정들을 취소했다. 생활의 단순화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하루하루 기력이 약해진다. 입맛도 사라졌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조만간 머리카락도 빠질 것이라고 한다. 이 기간이 헛되지 않기를 날마다 기도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기도한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아내가 거뜬히 회복되어 우리를 통해 주께서 계획하신 일들을 이루어 가시기를 기도한다. 

항암투병 일지 1

암판정은 아무도 예기치 않았었다. 의사들도 가족들도 놀라움에 휩싸였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부정할 수 없다. 이 사실이 모든 걸 바꾸었다. 아내는 곧장 중증환자 리스트에 올랐다. 나는 중증환자 보호자가 되어 거기에 맞추어진 삶이 이제 나의 일상이다.

한달 전이었다. 아내가 자궁의 혹을 제거하기 위해 병원으로 갔다. 양평에 있는 개인 병원이다. 초음파를 보던 의사는 고가의 기구를 바닦에 떨어뜨릴 정도로 놀랐다. 생전 처음으로 보는 거대한 사이즈의 혹이었기 때문이다. 대뜸 그 의사는 아내에게 "만약 이게 암이면 당신은 3개월, 길어야 6개월이 남은 것"이라는 사형선고 같은 소견을 내뱉었다. 다열질 의사분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고 진중하지 못한 반응에 신뢰도 가지 않아 종합병원 진료를 결정하게 되었다. 차병원에 갔다.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담당한 의사가 고참 의사를 불러서 자문을 구하였다. 혹의 사이즈가 커서 초음파에 다 잡히지를 않아 보다 정밀도가 높은 검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초음파를 본 의사의 소견은 자궁의 혹은 근종이지 암은 아닌 듯하다고 했다.

아내의 친구가 신촌 세브란스 병원을 추천했다. 나와 아내는 그곳으로 옮기자고 했다. 거기에는 김영태 교수님이 이 분야의 전문가다. 초음파 검사를 하고 보다 정밀한 판독을 위해 CT를 찍어야 했다. 검사한 결과, 여기서의 소견도 육종이 아니라 근종이다. 혹의 상태와 사이즈 때문에 자궁적출 이외에는 다른 해법이 없었다. 이 혹을 제거하면 빈혈도 없어지고 빈혈이 해결되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의사들의 일관된 설명이 아내의 떨리는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 혹과 주변 장기들의 유착 때문에 출혈이 심하였고 대량의 수혈을 받아야만 했다. 간단하지 않았다. 집도한 의사는 가장 난해한 수술들 중의 하나라고 할 정도였다. 나는 적출된 혹의 외관과 단면도를 보았다. 모양도 흉칙하고 사이즈도 거대했다. 그러나 육안으로 보기에 암은 아니었다. 김영태 교수님도 나의 판단과 동일했다. 아내는 수술 후 3일만에 퇴원했다.

10여일 정도가 지나서 우리는 혹의 조직검사 결과도 듣고 의사에게 감사도 표하려고 병원으로 갔다. 아내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김영태 교수님도 반가운 얼굴로 맞이해 주었다. 그러나 조직검사 결과가 적힌 모디터를 보던 교수님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영어로 된 결과문을 읽으면 우리를 쳐다본다. 악종이다. 암이었다. 정확히는 자궁 평활근 육종이다. 암은 암종과 육종으로 구분된다. 위암이나 간암이나 폐암은 암종으로 분류되고 근육이나 뼈에서 발생한 암은 육종으로 분류된다. 적출된 아내의 혹은 근종이 아니었다. 근육에서 발생한 암이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양평에서 진료한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3-6개월 시한부 인생일 것이라는.

수술을 할 때에 암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림프절을 제거하지 않았다. 림프절은 주로 암이 제일 용이하게 전이되는 곳이었다. 일단 암의 전이상태 확인을 위해 긴급하게 PET와 MRI 촬영에 들어갔다. 검사한 결과, 전이는 없었으나 폐에 결절들이 여러 개 있었다. 전이된 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CT를 찍어야 한다고 해서 다시 검사했다. 폐결절의 경우, 폐렴, 결핵, 곰팡이 감염, 과오종, 폐암, 전이암 가능성이 있지만 CT를 촬영해야 정확히 규명된다. 그러나 검사한 결과 폐결절은 명백히 무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 전이된 암이 아니었다. 이로써 아내는 자궁 평활근 육종 1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곧장 항암치료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암이라는 사실을 수용하는 것도 어려웠던 우리는 앞으로의 치료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아 권고한 입원일을 몇 일 미루었다. 면역력을 높이는 자연적인 치유냐 아니면 항암제를 투약하는 치료냐를 두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다양한 조언과 가능성을 다 종합하여 항암치료 받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3주 간격으로 여섯번의 치료를 받는 것이었다. 겨우 1기인데 굳이 항암치료 들어가야 하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의사는 아내의 육종이 희귀하고 대단히 사나운 놈이어서 전이 가능성이 대단히 높아 빨리 제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림프절도 떼어내지 않아 치료를 빠를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그래도 우리는 망설였다. 

2015년 6월 6일 토요일

메르스의 정체(군사 의료원장)

권혁수 집사님이 보내주신 내용

군산의료원장이 깔끔하게 정리한 메르스의 정체

1. 메르스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입니다
2. 코로나 바이러스는 포유류와 조류에 감기를 비롯한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RNA 바이러스입니다.
3.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 중에서 무척 유명한 녀석이 바로 사스입니다.
4.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이를 아주 빠르게 합니다.
5. 이런 특징으로 인해서 정확한 백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6. 당연히 메르스의 백신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7. 여기까지의 사실 때문에 메르스의 공포심이 극대화됩니다.
- 백신이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것이 마치 치료약이 없는 불치의 병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8. 백신은 치료약이 아니라 예방약입니다.
9. 메르스의 치료법이 없지 않습니다. 당연히 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사람의 몸에 나타나는 증상을 치료해주는 치료약과 치료법이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하면 메르스 바이러스를 직접 치료하는 약은 없습니다만, 증상을 치료해서 결국 이겨내도록 하는 약과 치료법이 있다는 겁니다.)
10. 메르스에 감염되면 사람은 호흡기 질병(감기), 심부전 이상, 소화기 이상을 호소하는데 모든 증상을 치료가 가능합니다.
11. 메르스의 치사율이 높은 것은 위 증상 중 심부전 이상과 호흡기 질환이 취약환자 (노인과 아이)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고, 이 질병이 널리 퍼진 곳이 중동이기 때문입니다.(노약자에 대한 처우가 그리 좋지 못한 지역입니다.)
12. 한국에서 메르스 환자의 사망이 제법 빨리 발생한 이유는 환자들이 감염된 곳이 병원이었고, 그 환자들이 모두 호흡기가 좋지 못한 취약 환자였기 때문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메르스가 트리거(방아쇠)가 된 것이지 꼭 메르스 때문에 죽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13.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메르스에 감염되고도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2주 안에 완치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첫 환자가 발생되었고, 정확히 10일 만에 완전 치유되어 퇴원했습니다.
14. 다시 말하지만 백신이 없다는 것이지 치료법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물론 걸리면 고생은 합니다. 폐렴에 설사에 몸살이 같이 오는데 좋을 리가 있겠습니까?)
15. 메르스의 예방법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예방법은 감기 예방법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는 수준으로 노력하면 걸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반적인 독감 (인플루엔자)보다 전염력이 훨씬 떨어집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이 공기 중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16. 손을 자주 씻으세요. 가글 또는 양치를 자주 하세요. 면역력을 높이는 음식을 잘 드시고, 적당한 운동을 하세요.
17.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하는 노력을 한다면 별 문제 없이 넘기실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메르스가 이렇게 사회적인 공포를 일으킬 정도로 커진 것은 다른 거 없습니다. 정부 관련부처의 대응이 미숙했던 것입니다. 처음부터 위험지역에 방문하고 온 환자에 대해서 따로 격리해서 치료했으면 미국처럼 아무 문제없이 해결했을 것을 우왕좌왕하다가 이 꼴 난 겁니다. 초기에 현명하게 판단해서 대처했으면 됐을 걸 말이죠.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군산의료원장 김영진 드림.

2015년도 2학기

학부생을 대상으로 "라틴어"(Latin Language)를 개설하고
"A Glance of Christian Doctrines"를 영어로 가르치고
MA 학생들을 대상으로 "로마서로 신학하기"(Doing Theology with Romans) 과목을 개설하고
석박사 학생들을 대상으로 "통합신학"(Integrative Theology) 과목을 개설하고
Mdiv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De Deo)를 가르친다.
지금은 학기를 정리하며 새학기 준비로 분주하다.
대상이 참으로 다양하다. 그래서 더더욱 만남이 기대된다.

2015년 6월 4일 목요일

생사의 기로에 서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동일한 말씀을 읽더라도 읽는 시점에 따라 의미의 경중이 달라진다. 고통의 자리, 인생의 부수적인 요소들이 대부분 제거되는 생사의 기로에서 주님의 말씀을 읽으면 참으로 놀랍게도 "영이요 생명"이라 하신 말씀이 좌우에 날 선 어떠한 검보다도 더 예리하게 와닿는다.

말씀의 의미는 육신의 세계를 겨냥하지 않고 인간의 보다 궁극적인 본질과 결부되어 있다. 거기가 말씀의 정밀한 운동력과 본질적인 진가가 발휘되는 현장이다. 그래서 그 본질의 뽀얀 속살을 드러내는 고난은 무익하지 않고 죽음도 유익이 된다. 이는 선지자들 및 사도들의 일관된 고백이다. 그들은 복음 때문에 사선을 무시로 출입했던 분들이다. 어쩌면 생사의 기로는 선지자들 및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신구약의 역사적 배경이다. 말씀을 영과 생명으로 보는 시점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그런 배경이다.

2015년 6월 3일 수요일

김영규 교수님의 물연구

김영규 교수님은 오래동안 물의 자유 에너지에 대해 연구해 오시었다. 논지는 물에 자유로운 에너지(free energy)가 있다는 것이다. 물의 가시적인 형태는 액체지만 실상은 산소와 수소가 엉겨 고정되어 있지 않고 1.5피코초 단위로 계속해서 엄청나게 운동하고 있다고 교수님은 주장한다. 엄청나게 많이 빠르게 운동하고 있는 상태가 바로 액체의 실상이다. 그 운동 에너지를 사용하면 좋겠다는 것이 교수님의 제안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4-6 정도의 옹스트롬 세계에 물을 가두어 두면 물분자가 가진 운동의 성격이 제대로 확인된다.

이 에너지는 막대하다. 그리고 말 그대로 자유 에너지다. 이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 전기의 발생을 위해 외부에서 에너지를 주입할 필요가 없다는 게 놀라운 포인트다. 창조 당시에는 빛의 속도로 움직이게 하셨다가 어떤 입자와의 결합을 통해 묶여 있는 상태가 액체라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액체라는 포장지 속에서는 막대하고 자유로운 에너지가 이용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화석 에너지의 고갈이 가하는 세계의 경제적인 압박이 목까지 차오른 세대에 이 자유 에너지는 과히 대체 에너지로 적격이다.

선생님의 연구에 동의하는 학자들이 희귀하나 나는 강력한 동의와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음울한 메르스 소식으로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마음의 한 귀퉁이에 온 세상이 역사상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물의 자유 에너지 시대가 대한민국, 그것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선배이자 스승이신 김영규 교수님의 수고로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는 건 간접적인 위기 타개책의 하나겠다.

Research in RIBRT

믿음의 동지들, 있다

주변에 믿음의 동지들이 있으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능히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형제들의 동거함, 심히 아름답다. 그 자체가 심히 아름다운 복이다. 수단성 인맥이 아닌 복 자체이다. 참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