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질은 지식이 기초하는 사실의 지속성 혹은 항존성이 관건이다. 일시적인 사실과 결부된 지식은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고 당연히 단명할 수밖에 없다. 참되고 유익한 지식은 영원한 것과 관계한다. 여호와 경외를 지식의 근본으로 본 지혜자의 높은 진단이 큰 감동으로 밀려오는 아침이다. 대체로 귀의 일시적인 입맛을 달래는 잡다한 일회용 지식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분류도 하고 정리도 해야겠다. 영원한 사실에 뿌리를 둔 지식의 분량을 확대해야 되겠다.
2013년 8월 17일 토요일
사랑은 진리와 더불어~~~
사랑은 진리와 더불어 기뻐한다. 사랑은 진리와 분리되지 않고 늘 병행한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진리에 도달하지 못하며 사랑의 분량은 진리의 지식과 비례한다. 아무리 달콤한 진리를 홍수처럼 쏟아내도 십자가의 사랑이 보이지 않으면 따르지 말 것이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사랑의 화신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진리와 더불어 있지 않으면 경계함이 합당하다. 그런데 쉽게 넘어간다. 세상이 사랑도 메마르고 진리에도 굶주렸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의 유사품만 등장해도 따르고 추앙한다. 사랑과 진리가 조화로운 사람의 출현이 갈급하다. 그런 사람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변별력을 제공한다. 그런 분들이 한 시대에 소수만 계셔도 바랄 게 없겠다. 물론 은혜로만 가능한 일이겠다.
2013년 8월 16일 금요일
관계성의 열쇠
인생의 현실적인 문제는 대부분 꼬인 관계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관계성의 문제는 어떤 목적을 두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어떤 욕망을 충족할 목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때로는 상대방에 대해 두려움이 생기고, 때로는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때로는 욕정의 침을 흘리고, 때로는 멸시의 뻣뻣한 고개를 들고, 때로는 간사한 목소리로 발화하고, 때로는 사곡한 언술을 쏟아내고, 때로는 비굴한 웃음을 남발하게 된다.
사람을 대하되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했던 고귀한 하나님의 피조물로 여기며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올바른 관계성 형성의 유일한 비결이며 꼬이고 일그러진 관계성을 반듯하게 정상으로 되돌리는 첩경이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기쁘고 설레이고 기대되고 즐겁게 되는 비책이 여기에 있다. 심판자와 사용자가 아니라 구원자 되신 주님처럼 생명으로 모든 사람들을 섬기려는 자세에 달인이 되시라.
사람을 대하되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했던 고귀한 하나님의 피조물로 여기며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는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올바른 관계성 형성의 유일한 비결이며 꼬이고 일그러진 관계성을 반듯하게 정상으로 되돌리는 첩경이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기쁘고 설레이고 기대되고 즐겁게 되는 비책이 여기에 있다. 심판자와 사용자가 아니라 구원자 되신 주님처럼 생명으로 모든 사람들을 섬기려는 자세에 달인이 되시라.
하나님이 찾으시는 진실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신에게 최소한 하나라도 유익이 있어야 진리로 승인하고 선택하는 한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중생된 이후에도 이런 한계선 넘어로 걸음을 내딛는 일이 드물다. 현실에 대한 아첨과 진리를 현실에 구현하는 것 사이의 경계선이 늘 애매하다. 아무리 진실했다 할지라도 우리가 생산한 진실은 참으로 연약하다. 아첨을 명분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주님께서 보시는 진실의 높은 기준에 적응되지 않으면 안되겠다. 나의 진실은 과장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2013년 8월 14일 수요일
방문을 접는다.
세월의 심술인가? 행복한 시간은 화살처럼 보다 빠르게 지나간다. 상대성 이론은 복잡해도 이렇게 늘상 경험된다. 벌써 이륙의 시간이 코 앞이다. 고국에서 보낸 여러 일정들이 마지막 아침에 기억의 아쉬운 형체를 내민다. 기간은 짧았는데 여운은 오래 지속될 소중한 만남들이 많았다. 감사하다. 이제 곧 미국행 비행물체 속에 몸을 싣겠지만 마음은 늘 고국의 지표에 접지해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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