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8일 월요일

자녀교육 단상

자녀교육 황금률은 사랑이다. 인생에 시시비비 판결로 종결되는 문제는 없다. 행위의 경계선을 긋고 구분하고 분리해도 임시방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원래 인간은 외적인 규범을 제시하고 위협을 가하는 식으로는 통제되지 않는 존재이다. 율법의 표면적인 기능처럼 위법이나 범법을 확인하는 정도이고 외적인 표출의 저지가 고작이다.

인생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는 것이라고 한 베드로의 통찰과 인간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온갖 문제들의 궁극적인 종식이 용서를 비롯한 모든 시도들 위에 사랑을 더하는 것으로 완결되는 것이라고 한 바울의 통찰이 깊다. 비약으로 보일 정도이다.

터지는 문제마다 무작정 사랑부터 들이대는 관성적인 진단과 처방에 식상하신 분들이 많고 나도 이따끔씩 불쾌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처방이 비성경적 만능열쇠 취급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에서 다 이룬다는 예수님 자신과 사도들의 율법 해석학 때문이다.

성경의 어떤 구절을 읽더라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귀결되지 않았다면 아직 하나도 읽지 않은 것이라는 대표적인 교부 어거스틴 해석학의 핵심도 이와 상통한다. 물론 율법에는 하나님 사랑이든 이웃 사랑이든 비약이나 과도한 추론 없이는 사랑과 연결되기 어려운 조항들이 대단히 많다. 그게 우리의 눈에는 일반적인 상식이다.

그러나 율법의 저자이신 성자께서 동시에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사랑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는 모든 율법과 사랑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뚜렷하게 확인한다. 율법과 사랑의 연결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나님이 되시는 그리스도 자신이 원래 우리의 상식에는 모순이다.

우리의 머리에는 모순인데 실제로는 부인할 수 없는 진리임을 자녀교육 속에서 발견한다. 자녀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어떠한 거짓말을 하고 아무리 영악한 생각과 의도를 가졌다 할지라도 해법의 마침표는 역시나 사랑이다. 자녀의 모든 문제는 사랑으로 해결되고 종결된다. 하지만 옳고그름 따지는 것은 해법의 첫걸음일 뿐인데 거기에만 매달린다.

유혹이고 함정이고 속임수다. 사랑이 더해지지 않았는데 문제가 다 해결된 것처럼 여겨지는 경우보다 더 달콤한 유혹과 더 완벽한 함정과 더 기막힌 속임수가 있을까? 사랑까지 이르러야 문제가 종결된다. 자녀들의 거짓과 일탈과 완악은 사랑의 빈곤에 대한 신음이고 사랑의 충족을 위한 절규이다. 정말 쌩뚱맞은 비약이나 역설적인 진실이다.

자녀교육 승부수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만큼 자녀는 배우고 자라난다. 자녀들의 인격과 신앙과 삶의 크기도 사랑의 섭취량과 비례한다. 자녀의 모든 것들이 사랑과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부재와 빈곤과 왜곡이 자녀의 전부를 파괴한다. 자녀와의 문제가 풀어지지 않았다면 주님의 사랑이 전인격에 새겨질 때까지 십자가를 응시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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