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2일 금요일

나른한 일상의 가치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행17:25)

사물의 가치는 대체로 희소성에 의존한다. 적으면 귀하게 여겨진다. 보석들이 그러하다. 자체의 가치는 고작 무생물일 뿐인데 인간문맥 속에서는 그것을 취하려고 달려드는 사람들에 의해 인간의 목숨과 존엄성을 걸 정도의 가치로 비대하게 과장된다.

패션에 있어서도 가능하면 사람들은 누구도 가지지 못한 자기만의 고유한 수제품 복장, 이 세상 어디서도 반복될 수 없는 디자인을 선호한다. 기계를 돌려 찍어낸 동일한 디자인이 나에게도 발견되고 다른 이에게도 발견되는 것, 견디지를 못한다. 그러나...

인간에겐 동등성과 고유성이 공존한다. 이 세상에 동일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고유성이 있고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동등성이 있다. 의식주의 문제는 비본질적 요소인데 거기에 희귀성 문제를 들이대고 일희일비 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대체로 늘상 반복되고 항상 관찰되는 것은 그 존재감도 쉬이 사라진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현상이다. 생명은 우리가 죽어보지 않아서 생명과 단 한 순간도 결별한 적이 없을 정도로 친숙하다. 주변에서 부고가 들려오면 그제서야 잠깐 그 존재감을 얻다가 곧장 망각된다.

산소 마시기를 한번도 중단한 적이 없어서 호흡의 소중함도 가볍게 무시된다. 언제든지 어디에도 값없이 마련되어 있을 정도로 흔하여서 산소의 가치에 반응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희귀하다. 코 주변에 운집한 한 줌의 산소가 없으면 생이 종결될 수 있는데도 은근히 유린한다.

만물과 떨어져서 지낸 본 경험이 없어서 사람들은 만물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하고 있으며 어떻게 주어지고 있는지를 모른다. 설명이 불가능한 신비로운 균형과 질서가 만물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에는 관심도 없다. 돈벌이와 향락의 수단 정도로만 인식한다.

전혀 희귀하지 않고 전혀 고귀하지 않아 보이는 것은 대체로 희소성의 부재 때문에 빚어진 인상이다. 그러나 그 가치가 인지되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있고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동행하고 있다는 것은 그렇게 가깝고 분리되지 않아야 할 정도로 가치가 크다는 증거이다.

너무나도 쉽게 그 존재감이 사라지고 가치가 망각되고 필연성이 무시되는 생명과 호흡과 만물이란 선물을 주신 하나님은 보이지도 않으셔서 그분의 존재와 고귀함과 필연성은 더 쉽게 망각되고 무시되고 지워진다. 그분을 그분답게 인정하고 감사하는 자가 희박하다.

하나님은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시다. 이 선물들은 모든 사람에게 너무나도 흔하고 익숙한 것이어서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주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은 더더욱 모르는 것들이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가 무궁하신 분이시다.

숨쉬는 거, 기적이다. 살아있음, 기적이다. 보행하고 기동하는 거, 기적이다. 자연의 질서, 기적이다. 눈의 깜빡임, 기적이다. 앉고 일어섬, 기적이다. 누워 자고 깨어남, 기적이다. 웃음과 울음, 기적이다. 공감과 소통, 기적이다. 말과 생각, 기적이다. 해석과 이해, 기적이다.

일상이 기적이다. 일상은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에 어디서든 경험하고 언제든지 관찰된다. 지루한 반복 느낌이 일상의 가치를 제거하지 못하도록 주신 수여자를 늘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범사에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도록 일상을 선물로 주시었다.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것은 생명처럼 호흡처럼 만물처럼 한 순간도 인간과 분리될 수 없고 분리되는 순간 자멸하는 그런 결코 떠나서는 안되고 망각하지 말아야 할 분이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주어지고 싶으셔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방식이다.

참으로 사람의 조잡한 측량을 불허하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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