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30일 목요일

아굴의 잠언

야게의 아들 아굴의 잠언은 우리에게 영속적인 화두를 던진다.

이는 하늘과 바람과 물과 땅의 기묘한 지식에 도전하는 최첨단 과학과 지성이 간과한 부분을 수천년 전부터 꼬집은 사안이다. 즉 하늘을 출입하는 자가 누구며, 바람을 장중에 모으는 자가 누구며, 물에 옷을 입히는 자가 누구며, 땅의 끝을 정한 자가 누구며 그 이름이 뭐냐는 것이다.

창조의 모든 것들이 창조자의 계시라는 사상을 가졌다면 당연히 그리고 마땅히 던져야 할 물음이다. 이런 의식의 바탕을 점거한 후, 아굴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라는 경고와 더불어 크고 작은 자연 현상들을 증인으로 소환하며 각자에게 부여된 저자의 의도 풀어내는 일에 열중한다. 증언을 듣고 있노라면, 주님은 반역한 죄인들이 혹 더듬어 찾으실 수 있도록 언제나 너무도 가까운 은혜와 긍휼의 거리를 유지하신 것에 감사가 복받친다.

난 잠언 30장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홍천 이모님댁 방문

이모님댁 방문차 홍천으로 떴다. 강원도의 정직한 기운을 그대로 맛볼 수 있는 곳이라 자부한다. 정말 상쾌/통쾌/유쾌 그 자체였다. 오대산 아래로 흐르는 냇물에는 문명의 찌끼라곤 찾아볼 수 없도록 맑았다. 반양장 차림에도 불구하고 황급한 변신 후 아그들과 곧장 투신했다. 해발 800미터 개울의 고도에 어울리는 냉기가 살을 에이는 듯하였다. 허나 나도 아이들도 나올 맘 엄써따. 시골의 전형적인 밥상과의 재회도 오랜 여운이 예상된다.

돌아오는 길은 금요일 저녁의 서울교통 혼잡으로 후회가 막급하다. 

2012년 8월 23일 목요일

김영민의 [공부론]

구로구립 도서관에 갔었다. 김영민의 [공부론(2010)]이 눈길을 끌었다. 그의 박학과 달필은 여전하다. 일상과 철학의 화합, 앎과 삶의 통합을 추구하던 열정도 그대로다. 읽으면서, 그가 책의 해득을 위해 마땅히 지불해야 할 정신의 비용 지불에 인색한 작금의 지식계에 토하는 불평에 완전 공감한다. 난 책의 백미를 김영민이 주장하고 몰입하고 있는 '일상과 공부의 합일'에서 찾았다. 독자마다 다르겠지. 

인문학적 소양의 부재 혹은 결핍은 신학의 도상을 질주하는 학도들의 지적 목덜미를 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학교에서 가르치는 친구들을 통해 듣는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은 김영민의 인문학 [공부론] 일독으로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일독 강추!

신원하 교수님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

신원하 교수님의 [죽음에 이르는 7가지 죄]는 신학교 교재로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잘 쓰여진 책이다. 오래동안 쌓인 윤리 신학자의 원숙한 내공이 골고루 배어있다. 내용도 깊고 좋지만 시대를 넘나들며 학자들과 대화하는 저자의 '화술'이 대단히 돋보인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개인의 영적상태 진단은 물론 가정과 사회가 신음하고 있는 문제와 상처 및 이에 대한 처방까지 제공하는 알짜배기 저작이다. 게다가 단백한 문체에 더하여 두께가 얇아서도 좋다. 강추!

2012년 8월 20일 월요일

니체 [선악의 저편]을 읽고

니체의 [선악의 저편]을 무진장 잼나게 읽었다. 때때로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생각의 소유자와 대면할 필요가 있다. 니체가 대단히 그런 인물이다. 정말 솔직하고 대담하고 거칠며 잘난척이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하나님 '죽은' 인생의 실상을 글로 고스란히 배설한 인물이 바로 니체라고 생각된다.

그의 [선악의 저편]은 선악의 개념보다 더 '본질적인' 인간의 본성 '저편'을 과격한 언사로 묘사하되 시어의 음율을 가미한 책이다. 그는 '모든 생명을 위한 더 높고 근본적인 가치는 가상에, 기만에의 의지에, 이기심에, 욕망에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 미화의 가장 강력한 수단'인 경건을 비롯하여 '인간은 얼마나 기묘한 단순화와 위조 속에서 살고 있는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 모든 가상들을 제거하면 인간의 고귀한 영혼이 나오는데 그것은 '힘에의 강하고 이기적인 의지'란다.

그리고 강하고 독립되고 특이하고 지배적인 그 고귀한 영혼을 소유해야 할 '유럽 종족의 열등화'를 초래한 주범으로 기독교를 지목한다. '강한 사람을 부서지게 만들고 커다란 욕망을 병들게 하고 아름다운 행복에 의문을 품게 하고 모든 자기 주권적인 것, 남성적인 것, 정복적인 것, 지배에 대한 갈망, 최고로 성공한 유형이라 할 인간의 모든 고유한 본능을 불활실성, 양심의 궁핍, 자기 파괴로 꺽이게 하는 것, 지상적인 것에 대한 지배욕을 지상적인 것에 대한 증오로 역전시킨' 원흉이 바로 교회라고 주장한다.

'신 앞에서의 평등'이란 사상적 탈선이 유럽의 운명을 지배해 왔다는 사실을 개탄하며, 니체는 '인간의 새로운 위대함'을 찾아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새로운 미답의 길'을 떠나잔다. 위대함의 개념은 '고귀한 것, 독자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지, 달리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 홀로 선다는 독립성,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는 자율성' 등이라고 역설한다. 하여 '천박한 평등'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사상적 굴레 속에 있는 유럽 문명에서 가능한 한 '가장 고독한 자, 가장 은폐된 자, 가장 격리된 자, 선악의 저편에 있는 인간, 자신의 덕의 주인, 의지로 충만한 자가 가장 위대한 인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은 너무도 탁월하고 잘난 인간이란 민망한 소리를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뻔뻔하게 쏟아낸다.

그가 생각하는 철학자의 시급하고 궁극적인 과제는 '자연적 인간(homo natura)이라는 저 영원한 근본 텍스트 위에 서툴게 써넣고 그려놓은 공허하고 몽상적인 많은 해석과 부차적인 의미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여성이 새로운 권리를 자기 것으로 취하고 '주인'이 되고자 하고 '여성의 진보를 자신들의 깃발에 적고 있는 동안 놀라울 만큼 명확하게 반대의 일' 즉 여성의 퇴보가 진행되는 셈이라고 주장한다.

이것 외에도 [선악의 저편]에는 다양한 분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불편한 언술들로 충만하다. 너무 좋아하는 책을 보며 유사한 생각과 주장만 접하다 보면 세상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습성에 빠진다. 성경도 그렇게만 본다. 하여 이따금씩 귀에 거슬리는 험하고 거친 목소리를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러고 난 후에 성경을 읽으면 예전에 보이지 않던 진리의 뽀얀 속살이 시야에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이런 차원에서 니체의 [선악의 저편] 일독을 권한다. 게다가 김정현의 니체 번역은 탁월하다. 원문과 대조해 보지는 않았지만, 언어선택 감각이 뛰어난 분이라 글맛이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할 정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