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3일 화요일

신론적 사유

지혜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않는 자를
거만한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잠13:1).

꾸지람은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에게 유익하고
자신을 유쾌하게 하지 않는 것들은
하나님의 진리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진리를 현상에 종속시킨 경우
본질에 대한 실존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경우인 듯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천하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선악을 정교하게 가를 정도로
예리한 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심기가
영혼의 차원까지 불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불편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꾸지람과 불편인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과 슬픔과 아픔과 재앙도
그런 자비로운 꾸지람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섭리적 의미에 도달하는 접근법인 것 같습니다.
이성의 꼭지가 180도 돌아갈 일이라는 거 모르지 않습니다.
나타난 것의 원인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바울의 인식론은 우리에게 거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론의 대체물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신론 중심적인 사고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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