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9일 목요일

잡다한 생각

들뢰즈: 욕망은 어떤 것의 결핍이 아니라 스스로 끊임없이 창조하고 생산하는 힘이다.
한병수: 결핍인 동시에 생산력.

마르셀 푸르스트: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1) 다양한 자아가 있다.

편집증: 하나의 자아가 다른 자아들을 대신하는 증세.
분열증: 그때그때 상황에 상응하는 자아가 등장하는 증세.

2) 동요 가운데 나를 기쁘게 하는 무언가가 생기면 비로소 새로운 자아가 형성된다. 새로운 자아는 언제나 혼돈의 틈새를 파고든다.

3) 오데트를 찾는 게 아니라 기쁨을 느끼게 하고 사랑할 만한 준비가 되도록 내가 혼돈과 흔들림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일으킨 원인이 무엇인가? 마르셀은 바로 그것을 찾으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은 누군가의 증인으로 살아간다. 자신도 포함된다.
전도라는 말보다 증인이란 표현을 선호한다.
(정보의 전달자가 아니라 인격으로 하나님을 보여주는 자가 증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반응을 하면 내가 보여진다. 나의 모든 행실은 내가 밖으로 보여지는 출구이다. 우리의 행위와 말에서 내가 증거된다. 어떠한 사안이든 나는 내가 보여질 때까지 말하고 행동한다. 어떤 문제의 해답이 제시될 때까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충분히 밖으로 표출될 때까지다. 인간은 그렇게 지독하고 집요하다. 누군가를 만나 대화하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선명하게 확인된다. 어떤 주제로 만나도 그 주제가 아니라 만나는 그 사람을 경험한다. 마음에 쌓아둔 것이 어떤 계기를 만나면 표출된다. 그게 대화이고 만남이다. 주제가 바뀌면 자아의 다른 부위가 드러날 뿐이다.

내 안에서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사신다면 나의 행위와 말에서 주님이 증거된다. 사신다는 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내 안의 내장 어딘가에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전인격이 나의 영혼이 주님의 거처요 주님의 전이라는 이야기다.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촉매가 질문이다. 질문보다 강한 촉매는 명령이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촉매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안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사다. '명령'이란 교사는 밖으로 표출되기 이전에 내 안에 무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