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7일 금요일

아비의 영광스런 길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고전4:15)

그리스도 안에서 아비가 많아야 한다는 교훈과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는 책망이 교차하는 구절이다. 그리스도 안에는 아비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암담한 현실의 진단인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이 서신을 읽는 자들만은 그런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부성애의 길을 가라는 아비로의 초청이다. 현실의 암담함에 대한 이해는 절망의 근거가 아니라 그런 현실을 바꾸는 소망참의 주역이 되라는 초청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그렇게 이해한다. 아무리 엄격한 명령도 우리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른 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려는 마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했다. 이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무리 엄중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서도 절망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과 설레임의 태도로 대함이 마땅하다. 이는 문장의 준엄한 표정이 아니라 주어의 인자한 미소를 응시하는 자의 특권이다.

아비가 없다는 진단과 아비가 되라는 도전를 투척한 바울 자신은 아내와 자녀가 없기에 혈육의 아비 경험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바울은 단호한 목소리로 믿음의 아비로서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비의 생물학적 무경험자 입장이 아니라 영적인 아비의 유경험자 입장에서 교훈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모진 경험담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아비가 된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사도적 소명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볼거리가 되었다"고 진술한다. 이 진술은 아비의 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에게 언제라도 하나님에 의해 존재의 바닦에 내동댕이 쳐질 각오를 촉구한다. 세상에는 멸시와 조롱의 탄알이 늘 장전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람다운 아비가 되고자 한다면, 총알받이 신세는 우리의 일상이다. 세상에 대하여 우리는 심심풀이 볼거리에 불과하다. 물론 우리를 존재의 미말에 두어 구경거리 상황으로 내몰고 굶주린 사자가 사방에서 삼킬 자를 찾으며 끈적한 군침을 흘리고 있는 상황의 직접적인 연출자는 사탄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태가 이러한데 전혀 관여를 안하시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사탄의 교활하고 광포한 난동을 쓰시기로 작정하신 듯한 인상까지 받는다. 이게 지금 바울의 심정이다. 마치 하나님은 자신을 "죽이기로 작정하신 자"처럼 여겨진다. 당연히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도 현실은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하신 분"처럼 느껴진다. 그게 아비의 마음을 품은 사도의 길이다.

구경거리 신세의 신앙적 극복이나 초탈이 아비의 행보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이어서 고백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며,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다? 무슨 말인가? 자녀에게 생명이 역사하기 위한 사망의 역사를 아비는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비에게 요구되는 희생이다. 아비가 되려면 자녀를 잉태하고 해산해야 하는데 거기에 따르는 고통은 죽음이다. 바울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가 되었다"고 술회한다. 아비의 길은 그래서 '죽으려고 작정하는 길'이다. 그런데도 가야 하고 가고 싶은 길이라는 사실이 신비롭다. 생명을 수단으로 삼아 죽기까지 전진해야 하는 길인데도 그 길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의 영광이란 역설 때문이다. 생명은 타인에게 역사하고 죽음은 자기에게 역사하면 억울하고 비통해야 마땅한데 거기에서 영광의 향기가 진동한다.

바울은 아비의 길을 고집한 사도였다. 최소한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는 그러했다. 자신의 입술로도 그것을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걸어간 생명과 죽음의 역사가 교차하는 아비의 길을 추천한다.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이는 고린도 교회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들 모두에게 주어진 도전이요 영광의 초청이다. 아비의 길은 분명 목회자의 길이다. 성도에게 생명을 꽃피우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거름으로 내어주는 사망의 역사를 각오해야 하는 게 목회자다. 그러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인자의 영광이듯 목회자의 길에는 영광이 뒤따른다. 세상에 대하여는 제사장 나라인 하나님의 사람들 모두가 품어야 할 사명이요 취해야 할 영광이다. 가정이든 교회이든 아비의 길을 가지는 못할망정, 아비의 길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아비의 행새에는 놀랍도록 민첩하여 세상은 엄두도 못낼 악취를 발하는 지경까지 가서는 안되겠다. 그런 악취는 이단들이 충분히 뿜어내고 있다. 그런 악취 겨루기는 신경을 끊으시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를 자신의 죽음으로 내뿜는 자들이다. 신비이고 역설인데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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