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19일 목요일

짐 지시는 하나님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로다 (시68:19)

시인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한다. 경건의 촉이 신적인 섭리의 심오한 지점까지 접지되어 있다는 증거로 나는 이해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과 불순종의 행위에 반응하는 피동적인 주님이 아니시다. 우리가 무언가를 알고 말하고 행하기도 이전에 무의식의 광야에 측량할 수 없는 식탁을 풍성하게 마련해 주시는 참으로 적극적인 분이시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가장 긴요한 지점에 우리의 필요를 이미 예비해 두시고 잔치를 배설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날마다 축제를 방불한다. 이것을 인지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겠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우리의 모든 짐을 날마다 지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의식하는 부분은 대체로 빙산의 일각 수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과 길이 참으심과 자비와 긍휼과 선하심을 경험하고 찬양하는 모든 계기들은 다 측량할 수 없는 항구적인 은혜의 조그마한 조각과 관계한다. 불치의 병이 치료되고 해결의 가능성이 제로였던 문제가 해결되면 그 은혜를 조금 감지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전부를 낱낱이 다 알도록 일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당신을 적당히 가리신다.

그러나 때때로 희미한 이정표 수준의 흔적을 남기시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인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시려는 의도 때문이다. 그 흔적은 바로 광활한 바다와 같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협착한 진입로로 작용한다. 그래서 비인격적 강요가 아니라 자율성을 존중하는 초청이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자가발견 학습이다. 자신이 탐구의 주체가 되어 취득한 깨달음은 그의 인격과 삶에 보다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님의 배려 때문에 우리는 이따금씩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님의 등짝을 목격한다.

그런 목격의 경험이 한번 주어질 때마다 우리는 울어야 한다. 아니 울음이 저절로 터진다. 이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묵묵히 우리의 짐을 지시되 감사치도 않고 영화롭게 하지도 않는 우리의 무지와 무례를 끊임없이 참으시는 주님께서 참다가 참다가 도저히 안되셔서 신기척을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경험하면 감격하고 찬양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좋은 일이 생기면 누구나 그렇게 좋아하고 기뻐한다. 주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대체로 그런 맥락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을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님"으로 노래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대하는 우리에게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 수면에 떠오른 은혜만이 아니라 수면 아래의 본격적인 은혜를 주목하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날마다 지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멀쩡하게 살아가는 삶의 배후에는 그런 하나님의 짐 지시는 은혜가 있다는 이야기다. 주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무슨 말인가? 우리가 견디고 극복할 수 있는 시험만 주신다는 것이 일차적인 뜻이지만 행간에는 우리가 견디고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의 짐을 지시는 누군가가 계시다는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하나님의 짐 지시는 은혜가 없다면 어떠한 시험에도 우리는 필히 좌초하고 만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사실 아무리 작고 가벼운 시험도 너끈히 통과할 수 있는 실력자가 아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짐은 가볍고 멍에는 쉬우니라." 이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지고 오면 가볍게 해 주신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의식하든 안하든 늘 도우시고 계시며 짐을 지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다. 구원은 무의식 중에라도 은혜로 주어지고 있다. 싯구에서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과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은 동격이다. 우리의 구원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폐하여질 수도 실패할 수도 없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짐을 지금도 날마다 지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자신이 우리의 구원이다. 구원의 완주는 우리에게 맡겨지지 않았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아귀에 있다. 나는 성도의 견인도 여기에서 확인한다. 구원이 비록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싸움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이 되시기에 마지막 날까지 구원이 소멸되지 않고 취소되지 않는거다.

오늘도 하루가 멀쩡하다. 앞으로도 멀쩡한 하루가 지속될 것이다. 이는 주님께서 오늘도 나의 짐을 지시기 때문이며 앞으로도 그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님,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 나도 그 하나님을 종일토록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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