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1일 금요일

헤르보른 신학자 Johann Heinrich Alsted (1588-1638)

헤르보른 신학자 Johann Heinrich Alsted (1588-1638)

그는 16세기 초반에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을
학문의 전영역을 포괄하는 방식으로 확장하되
선배들과 동료들이 다각도로 시도한
고백화, 조직화, 체계화 및 교육화 작업을 정리하고
그것들을 하나의 거대한 체계 속에 통합한
Encyclpaedia septem tomis distincta (1630), 즉
가장 완성도가 높은 체계들의 체계를 산출해낸
개혁주의 신학자다. 수상한 천년주의 주장으로
신학적 경계령이 내려진 분이기도 하다...ㅡ.ㅡ

지금은 박사학위 작업을 잠시 보류하고
2주일간 알스테드 연구차 학문적 외도에 들어간다.
그의 글을 읽을수록 그가 얼마나 거대한 사유의 세계를
학문적 교구로 삼아 활동하고 누비며 교회를 섬겼는지
그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
지금까지 가방끈을 붙들고 있으면서 고작 도달하여
지금의 내가 선 자리를 보니 천금의 부끄럼이 짓누른다.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하워드 핫숀이 실토한 것처럼 그를 연구함에 있어서
두 가지의 난해함이 섵부른 탐구의 시도를 저지한다.
하나는 워낙 다양한 인물과 문헌들을 취합했기 때문에
알스테드 자신의 고유한 생각의 경계선 찾기가 곤란하고,
비록 이 문제가 그런대로 극복된 경우라 할지라도
그가 다루는 학문의 방대함과 포괄성이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난관으로 등장한다.

1630년에 출간된 이 방대한 분량의 학문 백과사전,
Encyclopaedia는 총 37개 학문연구 분야를 다루되
전체 5000페이지에 달하는 논의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과 동일하게 방대한 책인 신학 백과사전
Methodus theologiae (1614-1622)도 함께 연구한다.

신학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훈련과 체득과 결실을
추구하는 곳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분 자신과
그분이 행하신 일들로 구성되고 세상의 어떠한 곳도
역사의 어떠한 순간도 하나님 없이는 사유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에 모든 것을 다 취급하게 되는 곳이다.
이는 지식의 통일성을 추구한 알스테드 신학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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