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2일 금요일

자랑해도, 된다!

"너는 내일에 대하여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1)

"내일"은 미래와 가능과 설렘과 희망의 언어다. 지혜자는 그런 내일에 대하여 자랑하지 말란다. 내일에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자랑은 확고한 실현에 근거한 행위이다. 그러나 "내일"은 우리에게 아직 실현되지 않았고 실현의 여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랑의 입술을 연다면, 자랑의 발은 구름을 내딛는 격이겠다. 이는 현상에 기초한 생각의 실타래다.

자랑의 주체인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면, 우리는 내일의 확정자도 아니고 구현자도 아니기에 당연히 예지자도 아니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내일에 대해 자랑하지 말라는 지혜자의 권고는 그런 인간에게 주어졌다. 우리처럼 유한한 자에게는 내일에 대한 자랑이 합당하지 않고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합당하지 않은 것에 눈길을 돌려서는 안되겠다. 우리는 자랑이 불가능한 인간의 자리에 서 있다.

그렇다면 "내일"과 우리는 무관한가? 그렇지는 않다. 그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지혜자의 모든 금언들은 여호와 경외를 지향한다. "내일에 대하여 자랑하지 말라"는 것은 자랑의 근거가 우리에게 없다는 의미이다. 즉 우리는 "내일"을 통제하고 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랑의 적격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내일을 작정하고 예지하고 다스리고 통제하고 구현하는 하나님 편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랑에 대한 신구약의 다른 구절들,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1:31),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하라 즉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렘9:24)는 말씀에서 우리는 자랑이 주 안에서는 가능하고 자랑의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과 아는 사이라는 것과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임을 확인한다.

자랑해도,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리고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이 이 땅에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는 이 사실은 변경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랑의 주체를 따라서는 자랑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리스도 안"이라는 자랑의 근거와 "하나님과 그의 행하시는 일"이라는 자랑의 내용을 따라서는 자랑해도 된다.

이러한 자랑의 근거와 내용은 염려에 대해서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즉 "내일의 일을 염려하지 말라"(마 6:34)는 예수님의 염려 금지령도 염려의 주체인 우리에게 근거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나 우리가 성취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예만 있기에 염려하지 말아야 하고 하나님 자신과 그의 행하시는 일들로서 사랑과 공의와 정의의 필연적인 실현성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내일의 일들에 대해 자랑하지 말자. 그러나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분변적인 사랑과 공의와 정의의 필연적인 실현에 대해서는 실컷 자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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