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5일 토요일

교부들의 유익

때때로 교부들이 일상의 예화들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그들은 성경 구절들의 조합에 가까운 글쓰기를 구사한다. 즉 이해나 설득 차원에서 지나가는 정도로 모두가 공감하는 사안을 언급하긴 하지만 진리의 부요함과 엄밀성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다. 그것은 대체로 성경이 성경을 푸는 방식으로 수행되기 때문이다.

교부 문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게 교부의 글인지 아니면 성경구절 인용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경적 표현들로 충만하다. 하여 주님께서 교부들의 글 속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듯한 인상과도 이따금씩 마주친다. 깊은 경건과 정제된 표현과 진리의 본질에 충실한 태도가 어우러져 빚어낸 것으로 사료된다.

사도들의 시대와 가까운 그 만큼, 삐딱선을 타면 심각한 이단으로 교회의 전 역사에 걸쳐 정죄되고 정통의 길에 머무르면 '교회의 아버지' 호칭과 더불어 경건의 긴 가문을 형성한다. 아마도 진리인식 문화가 종합과 통일성을 추구하고 있어서 어떤 방향으로 가든 그 영향력이 막대했던 것은 아닐까.

분할된 전문성이 모든 분야에서 추앙을 받는 작금의 현실에 비록 다 파악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누구나 뭔가는 잘못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그런 가려진 문제를 푸는 열쇠 중 탁월한 해명 가능성을 보이는 후보가 있다면 교부들의 문헌이 아닌가 싶다.

교부 문헌들을 부지런히 펼치고 읽어야 할 때다. 아기자기, 알콩달콩 신학도 좋지만 그것으론 문제의 등만 긁어주고 문제의 본질은 외면하기 일쑤다. 교부들에 대한 독서, 시대를 역행하는 퇴보적 발상 아니다. 오히려 본질로 소급하여 보다 먼 미래로 보다 안전하게 도약하는 수천년 동안 검증된 방식이다.

문화와 진리의 혼합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자들이 의롭고 객관적인 판단력을 소유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서 살았지만 영원토록 동일한 진리의 고백들을 산출한 교부들 같은 인물들의 글을 읽으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것이다. 내 방식이 아니라 그들의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해 보는 것이다.

난 매일 교부들의 글을 한편씩 읽는다. 좋은 교훈과 안목이 많이 발견되고 내 안에 조금씩 축적되고 있음을 느낀다. 한글이나 영어로 번역된 교부 문헌들이 많다. 아무리 낮추어 생각해도 최소한 번역될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가진 것들이다. 아무거나 잡고 읽으시면 된다. 많지도 않으니까 고르는 수고도 필요치 않다. 닥치는 대로 읽어도 된다. 물론 어거스틴 문헌은 단연 일순위다.

결코 망각되지 말아야 할 단서는, 모든 문헌들이 그렇듯이 말씀의 저울질은 필수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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