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26일 수요일

마음이 비추이는 것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췬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지으셨다. 서로의 마음이 서로 비취도록.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나와 타인의 마음 사각지대 부분을 보도록 하셨다는 말이다. 레비나스 철학이 잠언의 지혜로운 문구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통찰력은 인간문맥 일반에서 발견되기 어려운 차원까지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성을 끌어올린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타인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논리가 탈력을 받는 시대란 인간이 구현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이요 미덕이 발휘되는 시대라고 하겠다. 마치 예수님이 이웃을 친구로 간주하고 친구를 위해 목숨 버리는 것을 최고의 사랑으로 규정하신 것과 의미의 맥락이 얼추 포개진다. 

사람들과 더불어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제어하는 묘한 관계의 자기장이 형성된다. 단순히 눈치에서 발생한 자기관리 차원만은 아닌 것이 감지된다. 서로의 좋은 모습만 보이고 부끄럽고 추한 것은 가려 자신의 몸값을 관리하는 측면이 왜 없겠는가! 그건 너무도 분명하다. 그러나 너무도 분명한 이유가 보다 깊은 은밀하고 본질적인 촉발의 이유를 못보도록 가리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인과의 짝이 선명해도 만물을 만드시고 다스리고 그 본질과 목적을 주관하고 계신 하나님 인식까지 나아가지 않은 분석과 해석은 아직도 실체의 어정쩡한 그림자만 더듬었을 뿐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영혼을 지으셨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것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라는 의미 되겠다. 나아가 사람들 사이에 서로의 마음이 비치도록 지으셨다. 서로가 서로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도록 소통의 근본적인 장치를 마련해 두셨다는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소통의 오가는 외적 수단들이 없어도, 마음이 통하다는 건 창조의 원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하나님이 태초부터 그렇게 의도하신 현상이다. 난 마음의 비추임을 '사람의 향기'라고 부른다. 아무리 코를 막고 눈을 가리고 귀를 덮어도 각 사람의 영혼은 서로의 향기를 감지하는 마음의 코가 있어서 서로를 안다는 점에서. 게다가 주님은 인간이 서로를 더 사랑하면 할수록 서로를 더 잘 알도록 지으셨다. 

오늘도 안면이 마주치는 사람들의 마음은 내 마음의 거울이 비추어질 것이다. 감지된 정보를 악한 의도로 활용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심사를 관찰하는 이유는 그분들을 예리하게 정죄할 장비를 준비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 모든 배후의 움직임을 다 읽더라도 그들을 용서하고 품고 사랑으로 진실하게 대우하는 마음의 준비를 위해서다. 잘 몰라서 괜찮아 보이니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악하고 부패한 본성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사랑이 성도에게 요구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날카로운 분석과 야박한 비판을 한다 할지라도 그 방향은 그를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준비로서 사람들을 깊이 탐구해야 한다. 이것이 창조적 차원에서 서로의 마음까지 비취게 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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