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7일 월요일

뇌물의 유혹?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뇌물의 유혹은 그걸 활용하면 형통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그러니 보석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실상도 이를 두둔한다. 뇌물의 달인들이 권력과 재력을 장악하는 현실 말이다. 그래서 유혹이다. 돌떵이로 보인다면 뇌물에 어리석은 지문을 찍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혹은 달콤하고 탐스럽고 유익하게 보여야 유혹이다. 세상은 그런 유혹으로 충만하다.

아담과 하와는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아질 것이라는 마귀의 유혹에 타협의 손을 내밀었다. 죄와 무관했던 첫조상도 무너졌다. 놀랍게도 마귀의 유혹은 거짓이 아닌 듯하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눈도 밝아지고 하나님도 그들이 '우리와 같이' 되었다고 하셨다. 눈 앞에 펼쳐지는 객관적인 사실이 수단으로 동원되는 유혹은 그만큼 은밀함도 깊고 달콤함도 짙은 법이다.

유혹은 대체로 그런 속성을 가졌다. 세상에는 잘못을 저질러도 뒷탈이 수반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두둑한 임상적 증험들이 거룩한 법에서의 탈선을 부추긴다. 게다가 주님의 길이 참으심 때문에 즉각적인 징계가 없어 보이므로 하나님도 행악에 동조하는 것처럼,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분인 것처럼 여길 정도다. 이 정도면 양심도 적당히 설득되어 고발의 기능도 쉬 마비된다. 법과 제도도 이를 두둔하는 방향으로 정비되는 건 자연스런 수순이다.

그런 게 세상이다. 이런 세상의 혼탁에 답답해 할 필요 없다. 해아래 세상의 정상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다만 소금과 빛의 필요성이 교회를 응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작금의 교회가 그런 혼탁의 원흉이나 되지는 말라는 질타만 면해도 좋겠다는 하한선 희망에도 부응하지 못할까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무엇보다 '뇌물'로 인한 형통이 그림자도 얼신거릴 수 없도록 교회가 먼저 정화의 스텝을 내디뎌야 하겠다. 지금의 시대만 그런 게 아니다. 개혁된 교회의 항상적인 개혁(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정신은 모든 시대의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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