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6일 토요일

창조는 계시다

창조 자체가 계시의 행위요 이후에 뒤따르는 모든 계시의 시작과 원리라는 입장에 근거하여 바빙크는 동물들도 인간의 도덕과 부도덕을 상징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개는 충성의 상을, 거미는 산업의 상을, 사자는 용기의 상을, 양은 양순의 상을, 비둘기는 순결의 상, 곧 하나님을 갈구하는 영혼의 마음을 그려주고, 여우는 계교의 상을, 벌레는 빈곤의 상을, 호랑이는 잔인의 상을, 돼지는 비열의 상을, 뱀은 사악한 속임의 상을 그려주고, 인간의 형상과 가장 가까운 원숭이는 위로부터 온 영이 없는 육체적 기관의 독특성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원숭이를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의 풍자를 직관하게 된단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근원이 성경 밖에서 과학적 추론과 근거를 통해서는 증명될 수 없으며 인간 본연의 고유한 가치도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세상의 사색이 지쳤을 때 겨우 내리는 결론은, 그따위 근원은 없으며 원래 세상이 영원하며 진화 혹은 변화의 꼬리를 물고 또 물어서 오늘날의 세상이 되었다는 맹랑한 공상이다. 하나님은 존재의 태양이고 모든 피조물은 그 전체가 하나님의 지나가는 섬광일 뿐이라는 사유는 세상에서 기대할 수 없는 진리이다. 주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인간의 공로가 일인치도 개입할 수 없는 전적인 은혜다. 그런 하나님을 아는데도, 그를 경외함과 감사함과 순종함도 없다면 그 불경함이 얼마나 큰 것일까? 혹 진멸되지 않고 있다면 그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기 때문이란 사실만 증거하고 있다고 봄이 옳다. 창조가 하나님의 계시인 이상 세상의 어떠한 사람도 예외일 수 없는 진리라 하겠다.

2012년 6월 15일 금요일

삼손의 교훈

오늘 새벽에는 삼손을 재해석한 설교를 들었다.

거두절미...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구한다는 거창한 간판을 걸고서도
뒤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분출할 수 있고
가장 합당하게 널리 승인된 수단들과 방법들도
동일한 욕망이 출고되는 방편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전두엽 안에 잔뜩 꼬여있는 간사한 이성에
계엄령을 발효하는 듯하였다.

이른 아침에 테니스 벽치기로 흘린 비지땀과 더불어
내 마음과 머리에 누적된 욕망의 찌꺼기도 밖으로 떠밀었다.
허나 나 자신이 분류한 욕망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보다 은밀하게 바닦에 저자세로 납짝 엎드린 우두머리 욕망은
감지될 리도 만무하고 제거될 리는 전무한 일이겠다.

사람의 깨달음과 결단은 수명이 짧고 쉬 만족한다.
돌이키고 이룬 것도 없는데 정체 모를 포만감이 급습하여
실질적인 돌이킴과 성화의 신경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은혜 앞에 엎드리는 것 외에 다른 묘책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인간의 구린 내면에 정직하면 할수록
은혜의 효용과 절박성은 고개를 든다. 이게 인생이다...

2012년 6월 14일 목요일

십자가의 한 의미

사람은 간사하다.
피를 보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대중적인 목적이면 그것도 헛수고다.
나 자신에게 명시적인 유익과 직결되지 않으면
아무리 감동적인 희생 스토리도
삽시간에 사라지는 물거품일 뿐이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인간의 간악함을 극도로 보이면서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은 한이 없으심을 드러낸다.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합당한 복음증거

시편 50편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하나님이 악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나님은 입술이 악하고 혀에 궤사가 출입하는 사람들로
하나님의 법도와 언약이 증거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복음 증거하는 일에 전무하기 전 반드시 물어야 할 물음이다.
내 입술은 여호와의 언약 증거에 합당한지 말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의 태도와 올바른 행실로 준비된 자에게
주님은 당신의 구원을 보이시고 증인의 소명을 주신다.
복음증거 수단은 입술이 아니라 인품과 삶이라는 얘기도 되겠다.

오하이오 찍고

오하이오 찍고 왔다. 온 가족이 함께...
지난 주에 휘청거린 남편과 아버지를
홀로 보내지 못해 내린 가족들의 애틋한 결정이다.

그래서 아내와 아들이 듣는 설교가 되고 말았다.
나의 부족함과 속사정을 낱낱이 아는 식구의 귀에
복음의 정직한 증거로 들렸을지... 궁금하다.

설교단에 설 때마다 주님은 언제나 듣고 계시겠지.
가족보다 마음의 속살까지 더 은밀히 아시는 주님 앞에서
복음을 정직하게 증거하는 설교자가 될 수 있을까?
오가는 6시간 운전보다 더 힘겨운 물음을 가지고 온 셈이다.

설교자의 길은 만만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너무도 지장한 표정으로 다가온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