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2)
오늘 인턴 목회자가 선택한 첫설교 본문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즐거될 것이라는 선언의 가시적 첫걸음을 뗀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란 혁명이 발생하긴 했으나 곧장 예수님의 부재가 남긴 공백이 주었을 기독교의 종말에 준하는 공허함에 역동적인 반전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태초에 생명을 일으켰던 생기의 교회론적 부활을 경험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독 이 사건과 이 시점을 추억하며 흠모한다.
그러나 오늘 설교자는 그런 열렬한 흠모의 눈길을 성령강림 이후에 전개된 사도시대 교회의 일상적인 관습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관습의 구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사도들이 가르친 것을 열심히 공부했다. 2) 삶의 희로애락 전반을 공유했다. 3) 더불어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그리스도 예수를 기념했다. 4) 전심으로 기도에 힘썼다. 감정적 흥분은 휘발성이 강하여 쉽게 살아진다. 그래서 흥분 직후에 네 가지의 실천으로 구성된 초대교회 관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설교에 새롭고 기발한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설교를 들으면서 성령강림 전후의 상황이 종교개혁 및 정통주의 시대의 상황과 미묘하게 중첩되는 것을 느꼈다. 종교개혁, 생각만 해도 맥박이 곱배기로 빨라진다. 기독교가 질주하던 복음의 지리적 확장 일변도에 질적 갱신의 고삐를 제대로 당겼던 그 시대를 모두가 흠모하며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는 거룩한 말씀의 인간적인 왜곡과 교회에 군살처럼 박힌 다듬어진 행습과의 결별을 선언한 개신교의 결연한 정신 때문이다.
종교개혁 운동의 역동적인 발발이 그저 흥분의 뜬구름만 부여잡고 거기에 도취되어 있었다면 실패의 도랑으로 곤두박질 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를 않았다. 기독교의 획기적인 종교개혁 직후에 진리의 고백화, 체계화, 교육화, 조직화, 제도화가 뒤따랐다. 중세의 어두운 부패와의 온전한 결별은 구호의 선언이나 혁신의 흥분을 넘어 보다 꼼꼼한 후속적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종교개혁 시대로의 복귀에 대한 흔모와 열정을 정통주의 시대에도 돌리는 게 마땅하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가 20세기 후반에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하고 이후로 지속적인 확대와 후속적인 조치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성령강림 및 종교개혁 자체에 여전히 흥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대적인 혁신의 절박한 필요성이 대두될 정도로 한국교회 부패의 수위가 높다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는 개혁의 격정과 더불어 흥분의 거품을 제거하는 적절한 후속 조치들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동시에 묶어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실제로 이러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가 한국 신학계에 잔잔한 미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빠르고 넓고 꼼꼼하게 확대되면 좋겠다.
오늘 인턴 목회자가 선택한 첫설교 본문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즐거될 것이라는 선언의 가시적 첫걸음을 뗀 사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란 혁명이 발생하긴 했으나 곧장 예수님의 부재가 남긴 공백이 주었을 기독교의 종말에 준하는 공허함에 역동적인 반전이 발생했다. 사람들은 태초에 생명을 일으켰던 생기의 교회론적 부활을 경험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유독 이 사건과 이 시점을 추억하며 흠모한다.
그러나 오늘 설교자는 그런 열렬한 흠모의 눈길을 성령강림 이후에 전개된 사도시대 교회의 일상적인 관습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관습의 구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사도들이 가르친 것을 열심히 공부했다. 2) 삶의 희로애락 전반을 공유했다. 3) 더불어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그리스도 예수를 기념했다. 4) 전심으로 기도에 힘썼다. 감정적 흥분은 휘발성이 강하여 쉽게 살아진다. 그래서 흥분 직후에 네 가지의 실천으로 구성된 초대교회 관습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겠다.
설교에 새롭고 기발한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설교를 들으면서 성령강림 전후의 상황이 종교개혁 및 정통주의 시대의 상황과 미묘하게 중첩되는 것을 느꼈다. 종교개혁, 생각만 해도 맥박이 곱배기로 빨라진다. 기독교가 질주하던 복음의 지리적 확장 일변도에 질적 갱신의 고삐를 제대로 당겼던 그 시대를 모두가 흠모하며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는 거룩한 말씀의 인간적인 왜곡과 교회에 군살처럼 박힌 다듬어진 행습과의 결별을 선언한 개신교의 결연한 정신 때문이다.
종교개혁 운동의 역동적인 발발이 그저 흥분의 뜬구름만 부여잡고 거기에 도취되어 있었다면 실패의 도랑으로 곤두박질 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를 않았다. 기독교의 획기적인 종교개혁 직후에 진리의 고백화, 체계화, 교육화, 조직화, 제도화가 뒤따랐다. 중세의 어두운 부패와의 온전한 결별은 구호의 선언이나 혁신의 흥분을 넘어 보다 꼼꼼한 후속적 조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종교개혁 시대로의 복귀에 대한 흔모와 열정을 정통주의 시대에도 돌리는 게 마땅하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가 20세기 후반에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하고 이후로 지속적인 확대와 후속적인 조치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성령강림 및 종교개혁 자체에 여전히 흥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대적인 혁신의 절박한 필요성이 대두될 정도로 한국교회 부패의 수위가 높다는 현실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는 개혁의 격정과 더불어 흥분의 거품을 제거하는 적절한 후속 조치들에 대해서도 간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동시에 묶어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실제로 이러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시도가 한국 신학계에 잔잔한 미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소식이다. 빠르고 넓고 꼼꼼하게 확대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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