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3일 수요일

성경의 침묵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3:11)

이 말씀은 계시의 정도와 분량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다고 증거한다. 또한 인간에게 적정한 무지가 있음은 하나님의 의도라는 선언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 추구욕은 이러한 사실이 거북하다. 사람의 머리에는 어느 정도 알면 더 이상 지식을 추구하지 않는 만족의 적정선이 있다. 거기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호기심의 촉수가 미친듯이 운신한다.

그런데도 성경은 인간의 굶주린 호기심을 만족시킬 만큼의 지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인간사에 대한 신적인 개입의 처음과 끝을 측량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게 성경의 분명한 입장이다. 그래서 선택해야 한다. 호기심을 따를 것인지, 성경이 호기심의 중지를 요구하는 지점에 머물 것인지를 말이다.

성경은 인간의 의문이 다 풀리도록 모든 것을 시원하고 후련하게 다 밝히지는 않는다. 그래서 지식이 얼굴을 대면하는 수준의 전체성과 명료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알고 희미하게 안다. 어떠한 주제를 잡더라도 이러한 지식의 뿌연 부분성과 마주친다. 최고급 지성을 동원해도 그런 무지의 그늘은 제거되지 않는다. 늘 그 이유가 궁금했다.

과거를 파헤쳤다. 믿음의 선배들은 출입을 불허하는 지식의 경계선에 대해 맹렬한 호기심 발동이 아니라 경외와 경탄의 태도를 취하였다. 주께서 당시의 행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신 것은 전도자의 기록처럼 그의 행하시는 모든 일들이 사람들의 어떠한 훼방이나 조작도 없이 영원토록 보존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정하신 것과 정한대로 행하신 모든 것들은 어떠한 피조물에 의해서도 더함이나 덜함도 없게 하셨다고 전도자는 기록한다. 이렇게 행하심의 의도에 대해 전도자는 "사람들이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 알았다"고 진술한다. 그렇다. 지식과 무지 사이에 적정한 경계선이 그어진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결부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뜻이 성경에 계시된 만큼도 모르는 무지는 패망을 가져온다. 그러나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무지의 영역은 모르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모르는 무지에 머물라는 게 아니다. 성경이 그어놓은 침묵의 경계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여호와 경외와 경탄까지 이르러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에 경외의 탄성을 지른 바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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